며칠 전에 이메일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면허 적성검사 기간이 초과 되었으니 빨리 받으세요~" 그리고 이메일 말고도 그 전에 내 휴대 전화로 한 통의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 "면허 적성검사 기간이 곧 종료 되오니 빨리 받으세요~"
자동차 운전면허의 적성검사 기간 도래와 적성검사 기간의 만기, 그렇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아야 할 타이밍이 다시 찾아왔다. 친절하게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가 잊지 않고 적성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도로교통공단에서는 수시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고맙다)
적성검사를 받지 않고 기간을 넘기면 면허가 "취소" 당연히 꼭 받아야 한다. 원래 기한보다 날짜를 조금 더 주는데 그 날짜까지 넘기면 골치 아프게 된다. 먹고 살기 바빠 신경을 덜 쓰고 나중에~ 나중에~ 라고 늦추다보니 촉박한 타이밍까지 되어 버렸다. 운전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면허시험장을 찾는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고 하루 그냥 날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내는게 쉽진 않다.
결국 일주일 정도 기한을 남겨두고 면허시험장을 찾았다. 면허시험장에 오면 은근 묘한 분위기가 있는데 마치 군대 훈련소처럼 약간 부류가 나누어지고 티가 안나려고 해도 티가 난다. 병아리(?)들이 시험을 보는 장소라 오랫만에 이곳을 "자가용"타고 직접 방문한 베테랑 운전자들 입장에서는 "야들아 오빠 왔다" 이런 느낌,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며 면허시험장의 수험생을 보는 눈빛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리버리한 건 베테랑 운전자도 마찬가지, 재발급 등의 민원으로 온게 아니라면 면허시험이든 적성검사든 누군가에게 평가 받으러 온 부류는 다 같이 긴장하게 되어 있다. 물론 적성검사는 시력, 청력, 신체장애 유무만 간략하게 보고 몇 분안에 완전 클리어 되는 과정이라 어렵거나 힘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햇병아리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은 여전하다.
적성검사 신청서를 작성하고 접수창구로 고고~ (여기까지는 그냥 껌) 접수대로 갔더니 접수를 하자마자 바로 옆에서 시력 검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 운전경력이 꽤 오래된 사람들이라면 적성검사를 2~3회 받은 경험이 있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대강 안다.
솔직히 형식적인 건 부정하기 힘들다. 적성검사에서 떨어지거나 문제가 되는 일도 거의 없고 나 역시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형식적이라고 또 부정할 수만 없는게 원래 운전이 가능한지만 보는게 적성검사다 보니 앉았다가 일어나 보세요~, 주먹 쥐었다폈다 해보세요~로 신체감정을 하는게 당연하고 시력과 청력에 문제가 없다면 적성검사는 쉽게 통과
그러나!!
이번에 면허시험 바뀐다고 해서 괜히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운빨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굉장히 깐깐한 검정원들을 만나서 그런 것인지 아주 식은땀 뻘뻘 내며 어렵게 통과(!) 했다. 아침 일찍 갔음에도 적성검사 대기줄이 상당했는데 줄 바로 옆에서 시력 검사 하시는 분들이 연속 3번이나 "불통!!!!" "이렇게 되면 운전 못하세요, 면허 갱신 못하세요~" 이런 말이 대기실을 울리고 있었다.
설마 나도 적성검사 통과 못하는거 아녀...시방 적성검사 통과 못했다는 야그는 단 한번도 못들었는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고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게 적성검사인데 검사장에서는 세 명이 탈락 위기에 놓여 있었다.
내가 적성검사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니다. 첫 면허를 딴 시점도 오래전이고 경력도 좀 된다. 중간에 대형면허를 추가했기에 면허에 있어서는 초짜는 아니다. 접수창구에서 접수비랑 신청서 주고 시력검사, 청력검사, 색맹(색약?)검사하고 앉았다 일어났다하고 주먹쥐고 잼잼~해주다가 도장 받고 새 면허증 발급 받으면 끝. 난 이미 깔끔하게 클리어한 경험자다.
오토바이 면허도 있고 빠라라 빠라라~
1종 보통으로 가뿐히 면허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했으며
10년 이상은 수동 미션에 의지해 소형차, 중형차, 1종보통으로 운전 가능한 화물차까지 마스터~
나중에 노후 대비를 위해 대형 먼허도 따두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서
특수면허까지 고려했다가 그냥 대형먼허만 갖자 해서 대형면허까지 취득
버스랑 트럭을 좋아하니 대형 면허는 어차피 꼭 따고 싶던 아이템(!) 이기도 했다
그런 자격(?)을 갖춘 인재라고 생각한 내 눈 앞에서 시력 검정 통과를 못해 절절매는 사람들을 막상 보니 괜히 후덜덜~ 나이가 좀 드셨다면 이해할텐데 나이도 많지 않은 분들이라 신경이 쓰였다. 나도 사실 눈이 요즘 굉장히 안 좋아서 걱정이 된 부분이 있다. 운전 하면서 예전 같지 않게 이정표 글씨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다는 사실에 요즘 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신경을 쓰고 있는데 하필!! 적성검사 그 날에 안경을 쓰고 가지 않아 아주 식겁하게 되버렸다.
정말 별거 아닌데 안경 안 쓰고 온 것에 그렇게 후회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분들도 눈에 안 좋은데 왜 안경 안 쓰냐는 말에 안경을 놓고 왔다라고 하셔서 내가 더 불안..나도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 눈도 괜히 더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시력검사에서 시력이 너무 안나왔는지 그 분들에게 검정원들이 시간을 따로 주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바깥에 잠깐 나가셔서 바람 쐬고 다시 한번 오시겠어요~라며 따로 시간을 내어줬다.
형식적인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대충대충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한 명이라면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는데 줄 서서 구경하는 와중에 1명이 바람쐬러 나가고 두 번째 사람도 바람쐬러 나가고 심지어 세 번째 사람도 시력 검사에서 통과를 못해 절절매고 있던 상황이라 나는 물론 다 같이 줄 서 있던 대기자들이 다 묘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기줄에 있던 내 등 뒤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적성검사가 깐깐한거야 저 사람들이 원래 문제인거야?"
운전면허 시험 볼 때도 쫄지 않았고 대형 면허 시험때는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던 나에게 이런 모멸감(?)은 처음이다. 나를 쫄깃하게 긴장시켰다. 전에 적성검사 받을 때도 이런 걱정은 아예 없었는데 괜히 내 눈 앞에서 세 명이나 보류자로 "잠시 대기"가 되니 신경이 쓰였다. 더군다나 적성검사실은 "대기표" 없이 옛날 방식으로 직접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환경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확실히 긴장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접수 차례가 오자 접수비를 냈는데 실수가 좀 있었다. 대뜸 "대형면허"시네요? 라는 말에 그게 왜? 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더니 천원을 더 내야한다고 하며 웃으신다. 그리고 꼼꼼하게 두 번이나 살펴서 작성한 신청서에는 큼직한 빈 칸이 두 곳이나 있어 재작성을 요구 받았다. (ㅠ.ㅠ) 빠꾸 당했다는 말이다. 그게 대형면허자에게만 따로 작성해야 하는 공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별도로 직접 동그라미 표시를 해주고 그 칸을 채우라고 해서 다시 결국 신청서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다시 재작성해서 엄청난 긴 줄을 서야 하니 눈앞이 막막했다. 다행히 접수창구의 그 친절한 직원이 날 찾으며 아까 부족한 부분 마저 채운 걸 확인하고 바로 적성검사대 앞에 세워주었기에 다시 줄 서는 일은 없었다. 이제 바로 적성검사 시작 (근데 재작성 한 부분도 사실 또 틀리긴 했다. 이번에는 동그라미 표시 외 다른 부분까지 채우는 바람에 ㅠ.ㅠ)
아까 불통~했던 세 명이 내 옆에 서 계셨다. 다른 시력검정판 앞에서 별도로 시력검사를 받고 계셨다. 내가 그 네 번째 사람이 될까봐 솔직히 좀 많이 긴장했고 살짝 우측을 보니 대기줄에 있는 수십명이 전부 나만 쳐다보고 있어서 더 긴장했다..대기실에 나만 있으면 그나마 덜 할텐데 보는 눈도 많으니 쓸데없이 더 긴장.
시력검사 스타토~ 나비요, A요, 숫자2요, 우측 구멍이요, 아래보고 있는 C요, 날렵하고 센스있게 그리고 차분하게 난 시력검사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건 나만의 착각 ㅋ) 숫자 0을 보고 0이라고 했더니 다른 곳을 짚는다. 근데 자세히 보니 그 녀석도 0 같다. 그래서 0 이라고 했더니 다시 처음 0을 다시 짚는다.
눈치를 휘리릭 굴려....(둘 중에 하나는 0이 아니구나...젠장 ㅋㅋㅋ) 다시 정신집중, 숫자 2에서 자랑스럽게 2를 외쳤더니 조금 빠른 속도로 잽싸게 다른 곳을 가리킨다. 모양새가......2다...(ㅡ.ㅡ) 그냥 이것도 2라고 했다. 그렇게 보이는 걸 어쩔...그러자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지휘봉은 또 다른 제3지대쪽으로 향해 숫자를 가리킨다. 근데 그 녀석도 2 같다..이건 뭐징...내 눈도 삐꾸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러다 나도 옆 줄의 네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이것도 2고, 저것도 2고, 또 이것도 2로 보이세요? 라는 검정원의 한 마디에 나도 놀랬고 대기실의 사람들도 모두 쫄았다는 걸 직감했다. (적성검사 경험자는 알겠지만 이런 경험이 싫어서 대기할 때 시력판 외우는 경우도 많다) 긴장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보세요라는 직원의 말에 다시한번 천천히 봤다. 큰 숫자부터 하나씩 다시 차분하게 맞혀 나간다.
아까 봤던 2는 8이었고 5였다. 나는 20년째 안경을 쓰고 있다. 교정시력은 0.8 정도, 안경을 쓰지 않으면 0.5 정도 나온다. 안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드문데 요즘 안경에 문제가 생겨 자주 벗다보니 안경을 제 때 챙기지 않는 일이 잦았고 이번 적성검사 때도 안경을 챙기지 못했다. 야맹증이나 색맹은 없다. 야간주행에도 문제가 없다. 다만 짝눈이고 양눈 시력차가 좀 있어 난시가 있다. 안경은 난시 때문에 쓴다.
결국 난 합격! 운전면허를 새것으로 재발급 했다. 앞으로 10년 뒤에 다시 적성검사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기줄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나 보다 한참 앞에 있던 분들이고 나에게 자리를 잠깐 부탁했던 분이다. 그런데 다시 줄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직 안 하셨냐고 물으니 씨익 웃는다, 아마도 시력검사에서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대기줄에서 빠져 시력판을 외우려고 자발적으로 뒤로 빠지신 듯 하다. 그럴 필요까지 없을 것 같다고 여기겠지만 그 날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적성검사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고 시력검사는 꽤 꼼꼼했다. 적성검사 시간의 8할은 시력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더군다나 내가 다 마치고 나올 때도 앞서 시력 점수가 안 나온 세 분은 아직도 불통 판정 중이셨다. 내가 판정받은 시력 검사 결과를 보니 좌 0.8과 우 0.5로 내가 알고 있던 시력이 그대로 나왔다. 좌눈은 그럭저럭 안경 없이도 괜찮은데 우눈은 예전에 자동차 정비일을 잠깐 할 때 눈에 엔진오일이 다량으로 유입된 적이 있어 두 눈에 시력 격차가 좀 있다. 그래도 너 나쁘게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운전면허 적성검사, 예전에는 정말 이걸 왜 하나 싶을 정도로 형식적이고 무의미하다고 봤는데 그 날에는 필요성을 좀 공감했다. 대충대충 하면 무의미해도 꼼꼼하게 제대로 하면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단 한번도 적성검사에서 쫄았던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 좀 달랐다. 다른 검사도 마찬가지, 그래도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딱히 긴장할 건 없지만 의료행위 목적이 아닌 시험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면허 갱신을 두고 신체감정을 테스트 한다는 건 확실히 긴장 요소는 된다.
예전에는 미통과 없이 그냥 접수 그 자체가 면허 갱신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실제로 눈 앞에서 세 명이나 불통으로 대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적성검사는 그냥 가서 형식적으로 하는 요식행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간소화 면허 정책 이후 면허 보유자들 검증을 다시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꼼꼼하게 테스트 한다는 점은 좋은 방향 같다.
면허시험장에 오면 면허시험 구경하는 재미도 항상 있었는데 이번에 그런게 없어 아쉬웠다. 구석에서 왔다갔다 하는 현재의 면허시험은 딱히 구경할 것도 없고 거의 공터로 놀리면서 대형 면허자들 시험에만 쓰이다보니 훵하다
그건 그렇고 시력 통과 못해서 쩔쩔 매시던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본인도 꽤 당황하시던데 이런 눈으로는 운전하기 힘드세요~라는 말에 당혹해 하던 아저씨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적성검사를 깐깐하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날 수검자들이 하필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험을 해보니 내가 갔던 면허시험장은 예전보다는 깐깐했고 (난 여기서만 적성검사를 쭉 했음) 그 날 따라 유독 눈이 안 좋은 불통자가 있기는 했다. 둘 다 포함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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