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전역 후 일자리 고민을 하던 날이었다. 병동 주변 탐색을 하던 중 몇 명이 그 병장 주변에 어울려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호기심 반 심심함 반 기분으로 그 쪽으로 걸어간다. 무슨 재미있는 걸 같이 하나 고개를 들어 보니 병원 도서관에 있던 묵은 신문 뭉치를 보고 있었다. 기사는 하나도 없고 글자 대신 온통 숫자와 기호만 나열 되어 있는 주식 시세 페이지였다.
지금도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신문을 보면 페이지 전체가 주식 시세로 나온다, 종목이 많다보니 펼쳤을 때 양 지면이 모두 시세로 채워진다. 신문을 보더라도 스포츠지를 주로 봤고 일간지를 보더라도 그런 시세 지면은 무조건 바로 넘겨 문자화 되어 있는 기사를 봤기에 단 한번도 신경 써서 본 적이 없는 페이지다. 뒤로 돌아서 주변 침대에 있던 참모1에게 왜 저걸 보냐고 물었더니 주식 공부 하는 것 같다고 대답을 한다
X랄들 하네, 돈 날려봐야 정신 차리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마자 비웃었다. 저걸 신문으로 배운다고 배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책으로 접해도 아쉬울 판에 여기서 무슨 역사를 만들겠다고 스터디를 하는 모양새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참모1을 보니 그 녀석도 시세 쪼가리를 얻어 한참 쳐다보고 있다.
왜? 너도 하게?
엄한 녀석이 들어와서 물을 흐린다고 생각한 나는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름 똑똑하다고 믿었던 참모 녀석도 도박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때 참모2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병실장님, 지난 번 그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수통에서 저 양반 큰 일 치루었다는거
참모2는 대뜸 시세 쪼가리를 보는 참모1 옆에 붙어 앉아 지난 번 잠깐 나눴던 병장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간호장교랑 썸이라도 탔나 싶어 같이 후송 온 상병에게 물었더니 수통에서 주식투자를 했고 그게 잘 되서 누군가의 수술비를 대신 마련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주식으로 수술비를?
눈썹을 씰룩 거리며 내가 관심을 보이자 참모2는 신났는지 자신이 들은 내막을 풀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크게 다쳐 중환자가 된 일병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군대라는 것이 이럴 때 참으로 JO같은 것이 군병원에서의 다친 군인 치료 상황을 보면 경악스러울 때가 많다. 치료라고 해봤자 후시딘 처방 수준이고 알약도 어디서 구하다 만 것 같은 이상한 약들의 조합이 많다. 물론 모든 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군의료 시스템이 건물만 멀쩡하지 체계는 낙후된 건 군대를 경험한 모든 남자들이라면 인정하는 부분이라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 할거다. 지난 에피소드를 읽었으면 알겠지만 군의료라는 건 자기가 치료 다 받겠다고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나을 때까지 입원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심각한 상태면 의무심사를 거쳐 전역시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실상 이것도 보면 형편이 안되고 치료가 부실하니 민간인으로 만들어 알아서 사제 치료를 받으라는 심보가 크다. 끝까지 책임질거면 전역하기 전에 다 치료를 해주고 군대는 무상치료니 치료가 끝나면 그 때 내보내야 하는데 수술 칼만 들었다 싶으면 의무심사를 열어 사제로 내보낸다. 의무심사를 받고 의병전역 하는 경우 완쾌가 아닌데 나오는 경우가 그래서 태반이고 그 때부터 자비로 민간병원 다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일병의 경우 꽤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나마 군의료에서 하이 클라스로 뽑히는 수통이다보니 수술을 여러 차례 잘 했고 또 치료도 꾸준히 해서 초기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중환자라는 딱지를 아직 떼지 못할 정도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수술을 여럿 했지만 민간 사제 수술과 아직 갭 차이가 나는 건 수통이라고 해도 다를 수 없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민간 병원에서 수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있던 병원에서도 약 10% 정도는 무조건 군대 밖에서 수술 하겠다고 말해서 외부수술 후 의무심사를 받는 경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담당 군의관조차 나 보다 군번이 딸리고 짬이 적다. 앞 자리 연도수 자체가 다르다. 내가 상병 짬 밖에 안됨에도 군의관이 나 보다 짬이 적은 상황이라는 건 군의관으로 경력이 무척 짧다는 걸 의미한다. 실력이 있든 없든 군의관이 몇 년차 정도는 되야 몸을 맡길텐데 갓 일병이랑 비슷한 짬이라면 군의무 경력이 무척 짧기에 내 소중한 목숨을 맡기는 건 무리수다, 병실장이라 일찍이 간호장교를 통해 군의관 경력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수술 참관은 몇 번 했어도 본인이 직접 집도하는 집도의로는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쌩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상당히 담당 군의관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군의관에게 수술 받기로 예정 되어 있었다)
일병 가족은 민간에서 추가 수술을 받길 원했다. 가족도 마찬가지, 심지어 수통에서도 그걸 바랬다고 한다. 수통에서 수술을 계속 하더라도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가족은 애통해 하며 아들 병상 옆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밖에서 하는 수술은 100% 가족이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무료로 할거면 수통에서 하고 밖에서 할거면 일반인처럼 수속 밟고 입원해서 치료 받으면 되는데 문제는 돈, 수술비가 문제였다.
그렇게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식물인가처럼 지내던 중 그 병장이 가족에게 최대로 끌어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고 한다. 자기가 주식투자를 좀 잘 하는데 불려 줄테니 그 돈으로 밖에 나가 사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딜이었다. 그걸 믿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 사람도 없거니와 생전 모르는 사람이 돈 불려 줄테니 돈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갖다 줄 사람은 없다. 그렇게 딜이 실패하고 나서 가족 중 일부가 주변 간병인에게 그 병장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병원에 오래 있던 일부가 착한 사람이다, 주식으로 돈 번거 맞다하면서 한 번 믿어보라고 권유를 했다고 한다. 결과를 모르면 딱 사기치는 장면 같다.
수통에도 그러하겠지만 내가 있던 병원에도 민간 간병인이 일부 있다. 물론 성당이나 교회 등에서 나오는 분들이 몇 분 계시기도 하고 사비를 들여 중환자를 대신 보살펴 주는 경우도 극히 일부지만 있었는데 보통은 살롬 할머니, 살롬 아주머니로 부르기도 한다. 군병원 특성상 가족조차 병간호 뿐 아니라 면회가 쉽지 않기에 교회 등에서 나온 분들이 많이 도와주는 편인데 선교를 목적으로 오지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선교단체처럼 군병원 내부에도 성경 낭독을 해주면서 병간호를 같이 해주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환자는 바뀌어도 간호장교와 군의관이 바뀌어도 이 분들은 계속 있다보니 환자들이나 병원 돌아가는 내부 정보는 어느정도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쭉 오래 지켜봤고 봉사를 하는 분들조차 그 딜에 대해 호전적으로 말을 하다보니 그 일병 가족의 어머니가 흔들렸다. 아들 수술비 마련해 주겠다고 하니 일단 믿고 어렵게 모은 돈이 250만원 정도, 그마저도 사채를 껴서 겨우 얻었다고 한다. 사제 수술비로 당장 필요한 건 최하 1천만원, 그 이상이면 추가 수술도 가능하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게 정말 가능하나 싶어 황당함이 몰려 왔다. 아들 수술비를 마련하겠다는 어머니의 모정을 이용해 돈 몇 백만원만 구해오시오, 내가 화투를 좀 치는데 꽁지까지 제대로 올려서 금방 크게 돈을 따올테니 기다리쇼~라고 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 딜의 결론만 말하면 병장은 250만원이라는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3주 만에 천 만원 조금 넘는 돈을 마련해 결국 약속한 그대로 수술비로 주었다고 한다. 일병의 어머니는 차가운 병실 바닥에 무릎까지 꿇어가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고 하는데 일병은 그 후 사제로 일단 후송해서 민간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결과가 좋아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산소호습기를 뗄 정도로
그러나 난 여전히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원래 도박판에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려면 첫 판부터 내리 쭉 돈을 잃어주는 것이 작전의 기본이다. 내가 250만원으로 천 만원 넘게 만들었으니 다음에는 천 만원 가지고 오면 더 크게 만들어주겠다고 꼬시기 딱 좋다. 그런 작업을 위해서라면 실제 투자는 하지 않고 자기 돈으로 천 만원 채워 줄 수도 있는 법, 무엇보다 그게 정확한 팩트에 의한 실화인지도 따져야 했다. 수통 출신 상병이 참모에게 참모가 나에게 전달한 구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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