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계생/매창(梅窓)
본문 바로가기
사랑/여인천하

계량/계생/매창(梅窓)

by 깨알석사 2015. 1. 10.
728x90
반응형

 

 

매창(梅窓)과 유희경(劉希慶)에 얽힌 이야기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성황산 서림공원입구에 매창시비(梅窓詩錍)가 있다. 이 비는 1974년 4월27일 매창기념사업회에서다시 세운 것이다.

시비의 주인공 매창은 선조 6년 1573년 부안현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소실에게서 태어났다. 그해가 계유년이라서 계생(癸生) 또는 계랑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본인은 스스로 매창이라고 이름지었다. 매창은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시인이다. 어려서 부친께 한문을 배웠고 시문과 거문고를 익혀 기생이 됐다. 아마도 어머니가 기생이 아니었나 싶다.


 

조선시대 여자들은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매창은 이름과 자(字),호(號)까지 가진 기생이었다. 기생신분인 매창에게 수많은 남자들이 찝적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았으며 겁없이 앙탈부리는 남자들을 멋진 시구절로 물리쳤다. 매창은 죽은 후 부안읍 남쪽 봉덕리 공동묘지에 분신처럼 아꼈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언덕을 지금도 ‘매창이 뜸’이라 부른다. 그녀가 죽은지 45년이 지나 후세사람들이 무덤에 비석을 세웠고 그후 13년이 흘른후 매창의 시 수백편을 모아 고을 사람들이 목판을 깎아 ‘매창집’이라 이름짓고 인근사찰 개암사에서 시집을 간행했다. 전세계 어느나라를 둘러봐도 일개 여인, 그것도 화류계에 몸담았던 여성의 글을 단행본으로 발간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이시집이 나오자 너무 많은 주문이 몰려 발행처 개암사의 재원이 바닥날 정도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1917년  부안시인 모임인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높이 4척의 비석을 세웠다. 지금도 음력 4월이면 부안사람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다. 시조계의 대부 가람 이병기(李秉岐)선생은 매창의 무덤을 찾아 이렇게 노래했다.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 가건만
한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 않는다.

 


이화우(梨花雨)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 듯 하구나

 


비단적삼 손에 잡혀 몇 번이나 찢었으리
그리던 운우(雲雨)도 스러진 꿈이 되고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은 살아남는다.'

 

 

 

 


매창의 묘는 부안읍 사람들이 돌보기전에는 나무꾼들이 돌아가면서 벌초도 하면서 돌봤다고 한다. 또 유랑극단과 가극단이 부안에서 공연할 때는 먼저 매창의 무덤을 찾아 한바탕 신명나게 놀면서 선배 대시인의 넋을 기린다고 한다. 그녀의 묘는 1983년 지방기념물 65호로 지정됐다. 당대의 여류시인 매창이 살았을때 한 연인이 있었으니 바로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이다.


 

유희경(劉希慶)은 자를 응길(應吉), 호를 촌은(村隱)이라 하며 본관은 강화로 조선조 대시인이요 유명한 학자다. 효자로 유명했고 예(禮)와 상례(喪禮)에 밝아 국상에서부터 평민들의 장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관군을 도운 공으로 통정대부가 됐고 광해군 때는 폐모상소 올리기를 거부한 후 은거, 후학을 가르쳤다. 당대의 대시인이요 풍류객인 유희경을 흠모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기생 매창이다. 매창은 유희경의 시에 매료돼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어느날 부사 이귀(李貴)로 부터 촌은이 부안에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말 뜻하지 않은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당시 매창은 기생생활을 청산하고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 초막을 짓고 거문고와 시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창은 즉시 부안으로 달려간다. 유희경은 닷새후 부안에 도착했다. 매창을 본 유희경은 술자리에서 거문고를 재촉한다.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거문고의 음률은 50대에 접어든 유희경의 가슴속을 헤집고 다닌다. 유희경은 지긋이 눈을 감고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유희경은 시한수를 짓고 거문고를 탄다. 일찍이 남국(남쪽)의 계랑(매창의 다른이름) 이름을 들었는데 그녀의 시와 노래가 서울까지 들리더라


 

오늘 가까이서

얼굴을 대하니 선녀가 지상에 내려온 듯 하구나


나에게 신비의 선약(仙藥)이 있어


찡그린 얼굴도 고칠수 있는데 금낭속 깊이

간직한 이약을 사랑하는 네게 아낌없이 주리라

 

 

계량이 화답한다.

 

 

"내게는 오래된 거문고 하나 있다오
한번타면 온갖 정감 다투어 생기는데도
세상사람들이 이곡을 아는이 없으나
임의 피리소리에 한번 맞춰보고 싶소."


 

신기로운 선약, 금낭 속에 감춰둔 묘약은 과연 무엇일까. 쉽게 표현하면  사랑이지만 은유를 좋아하는 천재들의 표현 속에 감춘 의미는 무얼까. 한번 타면 온갖 정감이 생기고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는 거문고 소리, 계량이 말하는 그 의미는 또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연인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약, 금낭 속에 감춰둔 그 약을 요즘 의미로 섹스라고 해도 좋다. ‘세상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를 계랑 자신의 육체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헤프게 내돌리지 않은 은밀한 자신의 몸이라 생각하면 어떠랴. 임의 피리소리에 한번 맞춰보고 싶다는 것을 당신의 요구에 따르겠다는

의미로 넘겨짚어도 좋다. 무어라 해도 좋다. 이날 밤 두사람은 원앙금침에 들었다. 계랑의 나이 열아홉. 유희경은 50세. 50평생 근엄한 선비의 지조가 무너지고 오랫동안 굳게 닫쳤던 계랑의 문이 열렸다. 문풍지는 두사람의 거친 호흡에 펄럭이고 방안의 촛불은 정열의 열기에 녹아내렸다.

 

산성문인협회 글쓴이 : 죽산김정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