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원인과 이해 (며늘아기,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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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부부생활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갈등의 근본적인 원인과 이해 (며늘아기, 며느리)

by 깨알석사 201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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姑 (시어머니 고) 婦 (며느리 부)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한 집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으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같은 여자이고 이 집안에 같이 시집을 온 경우이기 때문에 동질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애초에 이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아니고 다른 집에서 자라 이 가문으로 시집을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융화 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시어머니도 며느리 시절이 있었음에도 며느리의 입장과 생각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지간, 자매지간, 사촌지간처럼 사이를 말할 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고부지간이 되는데 이런 고부지간에 생기는 갈등을 우리는 고부갈등이라고 부른다. 우리집이 아닌 다른 집안의 사람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 이 가족이 되기도 하는데 결혼이라는 걸 통해서 서로 다른 두 집안이 하나의 집안이 된다. 그 결실로 얻게 된 자녀 입장에서는 두 집안이 모두 혈연관계로서 같은 집안이지만 부모 각자는 여전히 상대 집안(혈연관계가 없다)이 되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친척 관계가 형성되고 부모는 각각 인척관계만 형성된다. 여기에 부모는 또 다른 누군가의 자녀이기도 하기에 그 사람의 친척이 있다. 그래서 결국 친척과 인척이 얽혀 친인척이 되는 것이다.

고부갈등이라는 것을 단순히 인간의 이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인간도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 안에서 고등 동물로서 살 뿐이기에 근본은 동물과 같다. 결국 이성보다 본능(감성)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더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의 여자는 나 (시어머니) 밖에 없다. 남편과 자녀 (며느리 이야기이니 자녀는 아들이겠지...) 사이에서 여성으로서 지위를 얻는 건 어머니 자신 뿐이다. 남편에게는 아내로서, 자녀에게는 엄마로서 (물론 시어머니도 또 다른 누군가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말이다.

이런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는 관계에서 새로운 여성이 등장하는 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닌 건 사실이다.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해도 동물적인 감각만으로는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가장 먼저 내 자식, 내 아들을 뺏겼다는 반감도 있지만 기본적인 성향이 시아버지도 며느리 편에 서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남편과 자식을 동시에 잃어버린다는 본능적인 관념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듯이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의 몫이다. 남자란 가족이 갖는 가족애가 있고 이성이 갖는 애정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 새로운 사람, 말 그대로 뉴페이스이면서 젊고 이쁘고 어리고 혈기 왕성한 새 식구, 그것도 여자가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유전 기질이라는 것 자체가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로 이어지기에 아버지와 아들은 사실상 분신과 같은 존재로서 아들이 집으로 데리고 오는 여자는 자기가 데리고 온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남자의 심리)

여기에 혈연이 아니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쓰여지기 때문에 가족애가 생기게 되는데 사위와 장모는 기본적으로 어려우면서도 가깝게 지내기도 힘든 반면에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가족애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장모와 사위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위는 듬직하고 든든한 새 사람으로서 장인, 장모가 인식하지만 며느리의 경우에는 물론 우리 집의 새 일꾼(?)의 개념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딸과 같으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일꾼이 개념이 뭐 여러가지 있겠지만 우리 집의 자손을 낳아 키워주는 것도 일이다..)

집안에 사위와 며느리가 동시에 있다해도 이 사람들을 인식하는 정도는 다르다. 사위에게 잘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위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사위에게 잘하면 내 딸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내 자녀를 데리고 간 사람이라는 본능 때문에 잘 해 줄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직장이든, 학교든, 군대 (선임이나 간부) 등, 내 자식이 어딘가에 가 있을 때 챙겨주거나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대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에 며느리는 다르다. 사위는 아무리 잘해도 남이라고 인식하지만 며느리는 우리 집 사람이기 때문에 각별함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시어머니의 본능적인 부분도 사실 그런데 처음 관계에서 가족관계의 서열과 여성으로서의 지위에 혼란을 느끼며 시어머니의 존재감에 위기를 느꼈을 때가 고부갈등의 씨앗이 되는데 이건 말 그대로 며느리 하기 나름이고 시어머니 하기 나름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신체의 변화가 크지 않다. 호르몬의 변화가 확연하게 변화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자는 일생 자체가 혼돈이다.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마법의 날은 물론 신체의 호르몬 자체가 임신과 출산, 육아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시스템화 된 인체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항상 존재한다. 여자들이 뜬금없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억지스러운 행동을 할 때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하거나 (노처녀 히스테리 ~ 도 그런 단적인 예) 노망이 들었다고 하는데 여성의 히스테민 호르몬과 여자의 그런 행동을 히스테리로 부르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히스테리적 증상은 여자의 고유 행동이자 정상적인 범주로 여자들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다. 여성 호르몬 때문이다.

결국 폐경에 가까운 시어머니와 이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야 할 며느리 입장에서 같은 여자여도 호르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폐경기 여성들이 겪는 여러가지 증세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표적인게 우울증) 이런 성호르몬은 여자에게 꽤 중요한데 "왜 같은 여자이면서도 여자를 이해하고 챙겨주지 못할까?" 라는 의구심은 이런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르몬이 뇌를 지배하고 뇌가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에 결국 성인군자처럼 도를 닦아서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 사소한 고부갈등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갈등이라고 표면적으로 말 할 단계는 아니라해도 언제든지 생기거나 만들어질 확률은 존재하게 된다. 

반면에 이런 고부갈등에서 항상 누구 편에 들지 못하고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남자들인데..남자들은 호르몬의 변화가 없기에 (굳이 따진다면 여자와 같은 폐경기라는 것 자체가 없고 한 달에 한번 호르몬의 왕성한 활동 따위도 없다) 그런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말 그대로 그냥 논리적인 것만 따지게 되고 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고부갈등에서도 분명 강자와 약자는 존재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기본형은 시어머니가 강자, 며느리가 약자다. 하지만 이런 강자와 약자가 확연하다면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생긴다는 건 시어머니가 절대적인 강자도, 며느리도 절대적인 약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열에서는 강자일지 모르지만 가족들의 관심과 애정은 며느리가 우선 시 될 수 밖에 없고 무엇보다도 며느리에게는 아들이자 남편이 이 둘의 관계에 거의 개입하거나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남자는 결국 어머니가 아닌 아내의 편에 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머니 편을 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론은 간단하다.

저 사람 왜 저래? 저 애는 왜 저 따위야 ?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소용도 없다. 여성이 가족관계에서 갖는 지위와 서열, 그리고 사랑의 관심도와 중요도, 더 나아가 여성 호르몬에 대한 부분까지 감안해 본다면 이건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극복해 나가야 하는 마치 학교에서 항상 내어주는 숙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숙제가 쉬울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엄청 어려운 숙제 풀기일 뿐이다.

이런 고부간의 갈등에서 의외의 해법은 엉뚱한 곳에 있을 수 있다. 사위 사랑은 장모이듯이 며느리 사랑은 ?? 시아버지.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시아버지의 아내이고 며느리는 내 아들의 아내다. 대부분 고부갈등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며느리의 남편인 아들, 어머니 편을 드느냐 아내 편을 드느냐로 시작해 당신 믿고 시집왔는데 당신이 내 편을 안 들면 아내는 뿔이 날 것이고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 낳아서 힘들게 키워 장가 보냈더니 지 마누라만 최고라면서 엄마를 배척한다며 엄청난 배신감을 얻게 된다. 사실 뻔한 문제의 뻔한 답으로 누구 편을 들던지 풍비박산이 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남편이자 아들은 결국 상황이 지나게 되면 "알아서 해!" 로 시작해 자기까지 태풍에 휘말리게 된다. 남편이자 아들이 누구 편에 서든지 답이 안 나온다는 건 문제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누구 편에 서거나 양쪽 모두의 편에 선다고 해도 문제 자체가 해결될 수 없다.

여기에 대체로 시아버지는 빠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갈등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갈등이 있다면 그걸 조절해야 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시아버지. 하지만 아들에 비해 뒤로 빠지거나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건 대부분 그런 갈등에 대처하는 능려이 서툴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자들간의 싸움에 끼는 걸 남자들은 싫어한다) 시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는 건 며느리나 아들이 아니다. 자녀가 부부라면 부모님도 부부다. 기본적인 갈등은 서열로 시작하고 서열에서는 어머니가 강자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먼저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건 당연, 그 몫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몫이다. 설득과 이해라는 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어렵지 않다. 앞서 구태여 본능적인 걸 구구절절 써가며 내려간 이유도 이 때문인데, 시어머니의 사랑은 남편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아내를 설득하고 이해시켜려고 앉혀 놓고 왈가불가 짜증내며 해설을 할 필요도 없다. 

역설적으로 고부갈등이 있거나 존재하는 집에서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사이도 그렇게 좋지 않다는 뜻이다. 히스테리적 성향의 또 다른 단면이기도 한데 남편에게서 오는 좌절감이나 불안감, 우울증, 괘씸함에 대한 분풀이 대상으로 내 가족이 아닌 (며느리를 완전히 우리집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뜻) 타인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것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젊은 연인들 중에도 여성이 마법에 걸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과 짜증을 부린다. 그 중에는 어떨땐 화풀이 대상을 찾아 상식 밖의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 범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고부갈등의 씨앗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 자체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애정 결핍이 주요 원인이다. 그 애정은 관심도 포함되어 있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들이자 남편은 여전히 어머니를 챙기는 효자이며 며느리 역시 새 식구로서 친어머니처럼 대하고 받들어 준다면 당근 갈등 따위는 있기 어렵다. 가족들이 다 잘해주면 그 사람도 가족들 모두에게 잘 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아들이나 며느리가 조금 섭섭하게 하더라도 남편과 같지 않다. 결국 아들과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남편이 잘해주지 못하면 히스테리는 언제든지 생기며 고부갈등은 1+1 제품과 같이 항상 따라 붙는 보너스다.

아내가 며느리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감정 싸움이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 보이는 문제 자체를 해결하려면 답이 없다. 매 상황마다 해결해 줄 수도 없고 매 상황마다 정답이 있기 어렵다. 감정의 근본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찾아보면 그 근본은 둘 사이에서라기 보다는 다른데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며늘아기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누구네 엄마, 누구 엄마라고 며느리 이름 대신 부르는 호칭을 많이 쓰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보기 안 좋다. 누구네 엄마, 즉 애미(엄마)로서 애미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차라리 며늘아기, 며늘아가라고 부르는 게 훨씬 좋다. 처음부터 습관만 잘 들이고 호칭에 익숙해지면 며느리가 40대가 되고 노년이 되어도 며늘아기는 평생 아기가 된다.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 앞에서는 재롱 부리는 아기처럼 된다는데 며늘아기도 이 호칭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가족을 의미하면서도 시부모님께는 한편으로 평생 돌봐주고 챙겨야 할 자식, 아기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 팔순이 넘은 시부모가 임종을 맞을 때, 환갑을 넘긴 며느리에게 아가 ~, 며늘아가 ~ 라고 손을 꼭 잡는 풍경을 떠올려 보자.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라는 게 그렇게 살갑게 보이기 힘들지만 이런 풍경에서는 며느리도 시부모님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손주가 없을 때는 며느리로 조금 부르다가 손주가 생기면 누구네 ~ 엄마로 에둘러 부르다가 나이가 서로 들면 애야 ~ 라는 호칭으로 저기요 ~ 여기요 ~ 처럼 애매한 호칭만 남게 된다. (전화를 해도 얘야~ 나다 식으로 둘러 말하면 며느리도 시부모님이라고 짐작하는 그런 모양새들...)

호칭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불려주는 이름이나 호칭은 그 사람이 의인화 되어 그 사람이 부르는 호칭이 되어 버린다. 며느리 + 아기라는 말은 굉장히 함축적인 어르신들의 표현이다. 살림살이에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변명거리를 어르신들이 만들어 준 것도 있고 (실수를 해도 당연하다는 뜻) 항상 챙겨주고 보살피고 예뻐 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기라는 호칭이 붙은 이유 중 하나다.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아내는 시부모님의 관점이 아니다. 내가 손주가 아니고 내가 아들이자 남편이 아닌 이상 시부모는 시부모의 관점에서 불러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난 사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안든다. 며느리는 자식 개념의 딸이 아니라 배우자인 남편이나 아내처럼 생각하고 챙겨주어야 하는 게 오히려 정답에 가깝다) 딸과 며느리는 같을 수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라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들과 사위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고부갈등이 있거나 징조가 보인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시어머니인 아내에 대해 좀 더 세심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쏟고 자식이자 아들은 아내에게 하는 만큼 어머니에게도 정성과 사랑을 균형 있게 주어야 한다. 며느리는 뭘 해도 남편과 시아버지께 사랑 받게 되어 있다. 두 사람에게 쏟는 정성은 조금 줄이더라도 시어머니에게는 조금 더 해준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시부모와 자녀부부 4명이 있다면 어머니는 남편, 아들, 며느리 세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고 그 중에서 단연 아버지(남편)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아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이라면, 아들이 곧 아버지의 역할인 만큼 아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를 안다면 답을 유추하기 쉽다.

효라는 것의 근본이 사랑도 포함되지만 부부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버지가 해주지 못하는 사랑과 감정은 아들이 채워줄 수 없다. 그런 감정까지 채워주다 보면 마마보이가 된다. 아버지는 사랑을, 아들은 효를, 며느리는 관심을 주기만 하면 생각보다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다. 고부갈등은 표면적으로 여자들의 싸움이지만 그 속을 보면 두 남자가 반드시 들어가는 게임이다. 고부갈등의 씨앗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싸움 보다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되고 그 가족 안에서 자녀(아들) 양육을 전담하면서 생긴 가정 스트레스와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새 사람에게 화풀이 되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종 노릇 하듯이 잘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네 네~ 가 아니라는 것) 친정 부모님께 하듯 하면 된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옆집에서 주차 문제로 이웃끼리 대판 싸움이 났다. 넌 6동 사는데 왜 7동에 주차하냐? 뭐 이런 고차원적인 싸움...싸움 구경하다가 쓰고 다시 또 2탄 싸움이 나면서 구경하다 쓰다 보니 문맥이 이상하게 쓰였다 ㅠㅠ....귀찮으니 알아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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