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진실 - 세 번째 살인 三度目の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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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믿고 싶은 진실 - 세 번째 살인 三度目の殺人

by 깨알석사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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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믿는다

강변(천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피해자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이었다, 해고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사장을 죽였다. 곧 변호사가 살인범의 변론을 맡는다. 사건은 단조롭게 진행이 된다. 이미 범인은 자백을 했고 형량을 얼마나 받을지만 결정하는 단계다. 

중간에 합류한 주인공 변호사는 그의 형량 조절을 위해 기본 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담당하게 된 범인을 면회하면서 사건 개요에 대해 다시 짚고 넘어간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알아야 형량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을 죽인 전과가 있는 그에게 사형 만큼은 면하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 이대로 가면 살인범은 사형이다.

그런데 살인범과 면회 심문을 하면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진술 내용이 달라지거나 번복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사건의 내용과 다른 것들이 불거진다.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살인범은 자신이 사장을 죽이지 않았다고까지 한다. 그를 믿을수도, 그를 믿지 않을수도 없는 상황. 진실은 어디에 있고 무엇이 진실일까.

"세 번째 살인". 오늘 리뷰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굉장히 정적이다. 수사물도 아니고 추리물도 아니다. 이미 범인은 잡혔고 죄에 따른 형벌만 받으면 된다. 그냥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관객 입장에서 엿 듣는 것이 전부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고 두 인물처럼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보여주는 그대로, 살인범과 살인범을 변호하는 두 인물의 가운데서 그들의 표정과 태도를 구경하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 전부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따분하지도 않다. 오히려 흡입력이 굉장히 강하다. 강하다 못해 쎄다. 대사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사람은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들고 이내 영화 속 인물과 동조화 되면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다 보고 느낀 건 대사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봐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영화를 두 친구와 함께 봤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명은 전혀 이해를 못 했다. 전혀 이해를 못한 친구는 제목부터 혼란스러워 했다. 왜냐면 영화 속에는 살인 사건이 두 번만 나오기 때문에 제목처럼 세 번째 살인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사이코패스로 오해 할 만한 행동을 하는 살인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진술 번복이 관객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학을 떼게 만든다. 분명 범인은 맞는데 뭔가 우리들을 갖고 논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사법 살인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제도가 사람을 죽이는 형태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제목조차 이해를 못 했던 내 친구의 사례처럼 이 영화는 세 번째 살인에 대해 철저하게 숨긴다. 그래서 세 번째 살인의 실체를 끝내 모르면 영화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는 그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고 둘러 표현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살인범의 살인 횟수를 카운팅하게 되지만 마지막 살인은 그가 타인에게 행하는 살인이 아닌 그 자신이 살해를 (사형) 당하는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은 남는다. 애초에 그가 범인이라고 지목된 이 사건에서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누구라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호기심이다. 

영화가 진행될 때는 잘 몰랐지만 막상 영화가 끝나면 영화의 요소요소가 태풍처럼 머리 속을 비집어 놓는다. 분명 그가 범인이고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살인범이 맞다. 마지막 변호사와 살인범의 휘몰아치는 대화를 통해서 그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지만 미묘한 그의 표정과 대사 앞에서 혹시 "싸이코패스"에 농락 당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 버린다. 

영화의 반전이라고 굳이 꼽는다면 사장 딸의 경우인데 사실 이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감독 스스로가 그건 누구나 쉽게 알아 챌 수 있게 시나리오를 포장했다. 이게 왜 나름의 반전이냐면 대부분의 관객은 무조건 낚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살인범이 천변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아니라면 사실상 남는 유력한 용의자는 피해자의 딸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조차 단독 범행이 아닌 살인범과 함께 저지른 공범이라는 형태로 식빵 부스러기를 남겼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의문이 든다면 각각 출연하는 인물들의 입장과 대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누구 하나 필요 없는 경우가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 변호사의 아버지 (전직 판사) 등장조차 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되는데 변호사 아들과 전직 판사 아버지가 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걸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그 장면이 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의 5할 일지도 모른다.

그 판사에게 (주인공 아버지) 보냈다는 엽서와 그 엽서 내용의 회상신조차 바로 연결되는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등장은 쉽게 넘어가면 안된다. 대화 속에만 존재하는 서른 여섯살의 살인범 딸도 마찬가지. 살인범은 자신의 딸과 행복하게 지내는 상황을 엽서에 써 보내지만 우리가 본 회상 장면은 혼란을 가중 시킨다. 엽서에 나오는 딸의 모습이 살인범의 진짜 딸이 아닌 살해 당해 죽은 사장의 딸로 나오고 그조차 주인공 변호사와 함께 나오면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이중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눈밭에서 함께 뒹굴며 노는 세 사람의 황당한 회상 씬을 이해하려면 초반에 나온 변호사의 딸 장면도 넘겨 짚으면 안된다. 사실상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전혀 필요 없는 배역이고 불필요한 장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매우 중요한 캐릭터로 영화 속 이야기를 완벽하게 꾸미는데 꼭 필요한 장치가 된다. 중간에 변호사와 변호사 딸의 전화 통화 장면도 마찬가지.

영화 속에는 딸을 가진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딸에게 해코지를 하는 아버지, 딸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싶은 아버지, 그리고 딸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 아버지, 각각의 아버지는 딸과 완전히 배치되는 전혀 다른 아버지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법 살인에 대한 것이 전부가 아닌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으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증오를 교차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누군가에는 사법 제도에 대한 불신과 문제 의식을 갖고 보게 되는 영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철저하게 가족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자식 이야기로...

살해 당한 가장의 딸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다.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의 딸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살인범이 사장 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사장 딸을 보면서 자신의 딸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딸들의 입장을 보면 상황이 다르다. 살인범의 딸은 아버지로 인해 삶이 망가졌다. 제대로 된 보살핌조차 받지 못했다. 첫 번째 살인으로 인해 30년 장기 복역을 한 아버지로 인해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혼자 크고 혼자 살아나가야 했던 것이 살인범의 딸이다.

죽은 사장의 딸도 마찬가지,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딸의 몸을 건드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학 진학) 삶이 망가진 건 매한가지. 심지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며 돈만 생각하는 엄마 앞에서 그녀는 철저하게 무너진다. 

누구나 바라던 딸과 아버지의 모습. 하지만 그건 일부분이고 그마저도 회상 속에 머물고 끝난다. 주인공 변호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나쁜 아버지는 아닐지언정 좋은 아버지라고 단언할 순 없는 건 똑같다. 살인범의 딸처럼, 살해 당한 사장의 딸처럼 그의 딸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다. 서로 만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같이 할 수 없는 건 같다. 있어도 있는 게 아니고 없어도 없는 게 아닌,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의 아버지로 상황만 다를 뿐 두 아버지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단지 사회적 비난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뿐, 딸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자격은 셋 모두 같다.

1. 해고를 당한 앙갚음을 위해 사장을 죽였습니다.
2. 보험금을 받으려고 하는 사장 부인이 사주해서 돈을 받고 대신 죽였습니다.
3. 나는 사장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살인범의 진술은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첫 번째 이야기와 연관된 장면들이 나오고 그건 진실로 그려진다. 그러나 진술 번복이 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두 번째 이야기와 연관된 장면들로 이어진다. 물론 그조차 진실로 그려진다. 하지만 마지막 진술 번복이 되면서 진짜 범인은 사라지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물론 그 세 번째 진술 번복에 따른 연관 장면들이 그려지면 세 번째 진술에 대한 진실이 다시 그려진다. 중요한 건 모든 진술에 있어 그것이 다 진실성을 갖고 사실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죽은 사장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법정에서 증언하겠다고 살인범 변호사에게 말한다. 살인 동기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돕고자 증언 하기를 스스로 자청한다. 죽은 사장의 딸 입장에서 살인범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지만 다르게 보면 (그녀의 입장을 보면) 그를 지옥에서 구해 준 구세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살인범이 살해 행위 자체를 완번 번복하면서 상황은 바뀐다. 살인범이 아니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죽은 사장의 딸 증언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다. 필요가 없어졌다. 그건 살인범이 살인을 했다는 걸 전제로 살해 동기에 대한 감형을 위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나면 가장 나쁜 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게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 연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가장 나쁘지 않은 사람이 가장 나쁘게 그려진다. 그게 사법 살인의 결말이자 이 영화의 핵심 주제다. 심판을 하는 자와 심판을 당한 자의 구도에서 심판하는 건 사법 제도이고 심판 당하는 건 살인범이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심판하는 자는 모두 나쁘게 그려진다. 이 부분이 되게 묘하다. 법으로 심판하는 자와 무기로 심판하는 자 모두 정의와 진실 편에 서 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와 실제 범인(?)을 욕하는 사람이 없다. 관객조차 말이다.

영화에는 주인공 변호사와 그를 돕는 두 명의 주변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총 3명이다. 감독의 의도된 연출일 수 밖에 없는 캐릭터 구성이다. 나이 든 경력 변호사는 주인공 변호사가 초반에 보여준 그의 인물과 성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고 젊은 신참 변호사는 주인공 변호사가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된 모습의 그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 명의 변호사만 보면 주인공 변호사의 감정과 인물 성격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실제로 그를 보좌하는 두 변호사들과의 장면을 보면 쓸모 없는 장면 같아도 전부 필수적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횟집에서 회식하는 장면에서의 고참 변호사,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은 없다고 외치는 신참 변호사의 장면부터가 캐릭터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잘 보여준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움을 갖기 좋게 만든 살인 장면 회상 씬과 그것을 잘 표현한 영화 포스터. 모두 얼굴 속 핏자국 형태가 동일하다. 열린 결말이 분명 아님에도 영화는 열린 결말처럼 약간의 생각 넓히기를 유도한다.

첫 번째 살인은 30년 전 벌어졌던 사건을 말하고 그건 감옥에 있는 살인범이 과거 저질렀던 사실인 건 분명하다 (진실), 두 번째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천변에서 벌어진 강도살인은 죽은 사장의 딸 입장과 상황을 고려 했을 때 누가 범인인지 알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죽은 사장의 딸이 벌인 살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마지막 변호사와 휘몰아치듯 내 뱉는 대화와 검사는 물론 고참 변호사에게도 무죄라고 주장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범인의 윤곽은 더 확실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진실). 마지막 세 번째 변호사의 경우. 사법 제도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결국 그 역시 살인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모두 법조계라는 한 울타리 속의 "가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예시

하지만 변칙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래 포스터가 바로 그걸 보여준 또 다른 예시인데 천변에서 벌어진 사건만 갖고 따졌을 때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것이 첫 번째 살인, (실천만 하지 않았을 뿐 악의는 동일하기에), 그걸 실천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것이 두 번째 살인, 그리고 그 사건의 진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을 죽게 만든 것에 있어 사실적 살인과 다르지 않은 사법 살인을 세 번째 살인으로 규정. 결국 아래 포스터 속 세 명이 모두 살인범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각자의 얼굴 매치가 저렇게 나오게 한 것도 그런 주장에 어느 정도 실체를 부여한다고 할 순 있다.

2017년 작품,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 수상. 다음 영화 평가 기준 7점대. 내 개인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서 수로 강력 추천 작품으로 판단한다. 자백만 있는 살인 사건에서 그것이 범죄 인정이 되고 사형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일본 사법부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지만 우리나라도 사실 이런 일이 없다고 자신 할 수 없고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몇 있었기 때문에 누굴 욕하고 누굴 비난하고 할 건 아닌 것 같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표현에 있어 그걸 변호사가 말할 때와 살인범이 말할 때의 감정 교차가 크게 와 닿는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아픔만 준다는 차원에서 똑같이 한 말이지만 한 쪽은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이고 한 쪽은 나쁘다고 해서 한 말이라 어느 편에 서서 어느 감정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의 교차점이 꽤 많다. 영화가 거의 끝나기 직전 까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에 더 표를 주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스태프롤이 올라가는 순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다는 신참 변호사의 말에 표를 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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