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이 연상되는 첩보 영화 - 언피니시드 (The 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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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악의 평범성이 연상되는 첩보 영화 - 언피니시드 (The Debt)

by 깨알석사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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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자를 끝까지 찾아내다

이스라엘 첩보 기관 모사드 기관 요원 세 명이 과거 독일의 나치 전범자를 찾아 낸다. 그는 유대인 인종 학살을 자행하던 현장 실무자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행적과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자신들이 찾으려 했던 A급 전범자라는 걸 안 모사드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접근하기 쉽게 여성 요원 1명을 추가해 그의 환자로 투입한다. 그의 환자가 될 여성 요원 레이첼, 이 작전을 주도한 스티븐, 그리고 레이첼의 위장 남편 데이빗이 바로 모사드 요원들이다.

최종 목표는 그를 납치하여 이스라엘로 데리고 오는 것이고 이스라엘 유대인들 앞에서 그를 공개적으로 사법 처리하는 것이었다. 요원들은 결국 작전대로 그를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세 요원이 돌아오는 귀국 길에 나치 전범자는 없었다. 여성 요원의 얼굴에는 큰 상처가, 그리고 다른 두 남자 요원들 얼굴에는 깊은 수심만이 있을 뿐이다. 보는 이로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착각할 즈음, 그들을 마중 나온 정부 사람들이 그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영웅으로 대접 받는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머리가 하얗게 변한 노년이 된다. 대장 역할을 했던 스티븐과 여성 요원 레이첼은 귀국 후 부부가 되었고 지금은 그들에게 레이첼이 작전을 펼쳤을 당시 나이와 비슷한 딸이 있다. 그 딸 역시 지금은 결혼을 해서 레이첼은 손녀를 둔 할머니이기도 하다. 딸은 엄마 레이첼의 작전 이야기를 토대로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연다. 그런데 그 시간대 다른 공간에서 어느 중년의 남자가 자살을 한다. 스티븐과 약속이 잡혀있던 데이빗이었다.

자신을 만나기 직전 자살을 택한 데이빗을 보고 스티븐은 당혹스러움에 빠진다. 이후 출판 기념회가 끝나고 스티븐은 아내 레이첼에게 과거 같이 공작을 펼쳤던 데이빗의 자살 소식을 전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만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낸다. 이내 이야기를 듣던 레이첼은 작전이 있었던 당시를 회상한다. 레이첼의 얼굴에 큰 상처가 났던 이유, 그리고 전범자 없이 그들만 돌아오게 된 이유를 이제 관객도 알 수 있다.

관점에 따라 반감 되는 영화 요소

일단 이 영화는 다음 영화 기준으로 평점이 6.9점대다. 딱히 좋은 평가라 할 수 없는 낮은 점수다. 굵은 선 연기력으로 검증된 주연 배우들이 나오고 모사드라는 세계 최강의 첩보 기관과 그 요원들 이야기, 거기에 독일 나치 전범자까지 얽혀 꽤 흥미로운 소재를 갖고 있음에도 평가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스릴러나 액션 보다는 드라마 성향이 더욱 강해서 첩보 영화로 접근한 경우 실망감이 더 클 수 있는데 모사드가 등장하는 것 치고는 매우 약한 첩보 장르라서 사실 이 영화를 첩보 영화라고 보기에도 약간 무리수가 있다. 영화 메인 포스터를 보면 007이나 본 시리즈로 착각할 만도 하지만 절대적으로 이 영화는 대화와 감정이 메인이 되는 드라마고 실제로 그게 전부다.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더욱 실망했을 관객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작전 중 벌어진 큰 실수에 무척 당황하는 요원들의 모습과 감정선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저들이 세계 최강이라는 모사드 요원들인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는 작전에 실패까지 했다. A급 전범자를 잡아 납치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이후 호송 과정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되고 (호송 실패)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렵게 잡은 그를 다시 놓친다. (레이첼이 역습을 당하고 이 때 얼굴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의외로 은근 몰입감은 있지만 정작 긴장감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작전에 실패하고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도망간 박사가 평생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다시 드러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 자신들 셋 입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진실을 숨기거나 감추거나 조작할 수 있다며 진실을 은폐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되면 이 타이밍에서 한 번 더 실망한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일반 상식에서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유아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수배자가 잡혔다가 다시 살아서 도망을 갔는데 상부에는 죽었다고 보고를 한다? 그가 나중에 다른 요원이나 정부 기관에 발각 되기라도 한다면 어차피 이 거짓말은 오래 갈 수가 없다. 자신들도 찾았으면 다른 모사드 요원이 못 찾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면 무리한 발상도 아니다. 도망간 박사나 그를 잡으려고 했던 요원 자신들이나 어차피 상황이 입 막고 귀 닫고 눈 감고 살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상황의 요소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각하기에 따라, 말하기에 따라 이 작전은 실패가 아닌 성공이 될 수도 있는 찰나가 되는 건 맞다. 확실히 한 번 더 깊게 생각하면 스티븐이 주장한 말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단순하게 보면 유치한 발상이지만 나치 전범자의 신분이 드러났다는 걸 안 박사 입장을 고려한다면 요원들이 판단하기에 따라 실제로 얼마든지 가능한 작전 시나리오다.

박사가 도망가려 했고 결국 그를 다시 잡는 과정에서 죽게 되었으며 이 작전 자체가 애초에 국제법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불법 작전이었기 때문에 시신 처리를 흔적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그가 정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도망을 갔고 실제로는 살아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절대로 자기 정체를 다시 들어낼 이유가 없기에 요원들이 그가 죽었다고 하면 그는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 스티븐의 생각처럼 실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 

작전 초기 레이첼이 박사의 사진을 상부에 보내 진범이 맞는지 검증이 된 상태였고 그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호송 작전 자체는 실패했으나 총격전과 함께 사상자가 있었던 사건이 있었으며 호송 실패 후 그들의 안가에서 그를 데리고 있다가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해 계속 대기를 해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요원들이 실제로 그를 납치했고 데리고 있었다는 건 상부 입장에서는 확실히 인지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결국 요원 세 사람이 데리고 있는 전범자가 진짜냐 아니냐는 의미가 없고 정말로 죽었냐 안 죽었냐가 진짜 중요한 부분이 되는데 여기에 얽힌 이 4명이 모두 눈 감고 입만 조심하면 서로가 살 수 있는 또 다른 진실이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선뜻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관객이 얼마나 있고 실망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이냐 되는가 이것이 문제겠지만..(평점이 그래서 낮을지도)

보통 여기까지 이야기 흐름이 전개 되면 요원들이 도망간 그를 다시 잡기 위해 찾아 다니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도망간 박사가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모사드가 쫓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지인과의 접촉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물론 자기 자신도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여기서 아주 멀리 도망가는 것 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결국 그런 상황 속에서 요원들은 화물 터미널이나 항구, 화물 기차역 등을 돌며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 일반인 관점에서는 당연한 흐름이다. 박사에게는 여비도 없고 식비조차 없다. 오히려 그래서 숨거나 도망가기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원들이 도망간 전범자를 찾는 방법 대신 방구석 행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도 충분히 나왔지만 이들은 국제법을 어긴 불법 작전 중이다. 그가 아무리 A급 나치 전범자여도 형사나 검사가 체포하는 그것과 다르다. 이들은 첩보 기관원이고 체포 방식은 강제 납치였다. 심지어 호송 작전 중 기차역에서 러시아 군인과 총격전까지 벌였다. 도시 전체는 군인들이 포위하고 있었고 가가호호 방문하여 이 요원들을 찾기 위해 군인들이 집을 수색하고 있던 중이다. 납치를 한 뒤, 분위기가 급진적으로 바뀌기 이전 안가에서 호송 전 데리고 있을 당시에도 레이첼은 산책조차 못하고 있었다. 외부는 오직 상부와의 접선을 위해 스티븐만 하고 있던 상황이다. 도망간 전범자나 모사드 요원이나 이제는 숨바꼭질 하듯이 꼭꼭 숨어야 하지 어디를 돌아다닐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이 영화를 미지근하게 보았다면 아마 영화가 단순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만 머리 속에 남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첩보 요원들이 나쁜 놈을 찾아 내어 처단하려다 실패했고 그 사실을 은폐하여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영웅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의 큰 흐름 속에서 이후 시간이 흘러 모두가 노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도 나중에 도망간 그 박사가 정체를 들어내며 언론과 인터뷰를 하려 하자 이들이 다시 그를 찾아 제거하려 한다는 부분 역시 큰 감흥을 주는 건 어렵다. 

진실을 은폐한 자와 은폐하려는 자, 그 진실이 허구로 짜여진 가짜라는 사실과 그 가짜를 다시 진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것이 영화의 큰 맥이라 할 수 있는데 속죄, 양심선언, 진실의 실체라는 단어와 연관 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되는 영화다. 원제 The Debt은 (빚, 부채) 보겔 박사가 치러야 하는 댓가에 근거한 제목이 아니라 여기에 등장한 네 사람 모두에 해당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사드 요원 세 사람도 전범자인 보겔 박사와 크게 다르지 않고 결국 그들의 입장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면 전범자 역시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해석되어야 맞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납치한 보겔 박사를 데리고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레이첼은 그에게서 전범자의 진심과 마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환자로 위장해 그와 일정 기간 접촉했던 레이첼은 그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보고 느낀 사람이다. 납치하는 순간 간호사로 생각했던 사람이 아내였다는 걸 알았을 때 심리적으로 무척 당황했던 것도 레이첼이다. 그가 하는 말에 흔들리면 안되고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그를 대해야 하지만 레이첼은 박사가 던지는 말에 자주 흔들리게 된다. 살기 위해 내뱉는 말이 아니라 인간 내면 속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레이첼은 힘들어 했다. 

유대인으로서 자신도 부모를 잃은 레이첼은 그가 남긴 작은 사과와 유감 표시에 또 다른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과거의 그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이지만 현재의 그를 보면 그도 최소한의 인간미는 갖춘 절대적인 악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나치 전범과 모사드 요원 간의 구도로 잡혀 있지만 실제 속은 상황에 따라 사람은 누구든지 바뀔 수 있고 자의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은폐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보여준다. 전범자가 아닌 정의 편에 선 모사드 요원이라고 해도 결국 상황에 따라 똑같은 범주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줬다는 말이다.

처음에 지적했던 스토리 전개의 잘못된 방향 역시 그런 의도에서 깔린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유치한 발상이 낳은 어설픈 시나리오가 아니라 요원들 역시 비합리적이고 유치하고 비인도적인 생각과 실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들이 정의가 무엇이고 올바름이 무엇인지 인지했다면 당연히 작전 실패를 인정하고 목숨을 걸고 그를 다시 잡아야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당장 해결할 수 없었다면 상부에 거짓 대신 사실을 보고하고 나중에라도 다시 그를 잡도록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자 다른 길을 택했다. 

보겔 박사도 다르지 않다. 그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있어 주동자였다고 하지만 그 역시 무엇이 옳고 정의이며 바른 길인지 스스로 인지했다면 그런 잔인한 짓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당연히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부당한 짓은 거부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 개인 욕심과 이익을 위해, 그리고 멀리 나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그가 놓인 위치에서 그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영화 속 의미만 갖고 따진다면 말이다.

작전을 주도적으로 실행했던 스티븐은 그가 레이첼을 공격하고 도망간 사실을 안 직후 굉장히 흥분해 하며 심지어 울부짖었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 조국을 배신하고 민족을 배신하고 조직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것이 끝났다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택한 것이 거짓과 진실의 은폐라는 역설로 이어졌다. 이들의 유치한 발상이 사실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순간이다.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며 모든 걸 걸고 싸운 그들이 정작 거꾸로 전범자를 확실히 살려주는 인도자가 되었고 자신들은 물론 이스라엘 공동 운명체의 사명감에 대한 실체를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결과를 만들어 버린다. 오직 자신들 세 사람이 살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그들은 추후 영웅으로 대접까지 받으니 엄밀히 따지면 나치 전범자 보다 더 나쁜 악인들이 바로 이 세 사람이 된다.

The Debt

데이빗은 자살하기 전 레이첼을 찾아와 자신들이 다시 과거 그 때로 돌아가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한다. 데이빗은 레이첼과 스티븐과 달리 평생을 그 사건 하나 때문에 고통 속에 살며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둘과 달리 끝까지 도망간 전범자를 찾아 다녔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영웅 대접을 포기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인생을 모두 포기한 상태로 과거에 그대로 메여 살면서 잘못된 단추를 다시 고치기 위해 살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치 전범자들의 모습이 바로 데이빗이고 일본 친일파들에게 기댄 모습이 바로 데이빗의 모습일지 모른다.

스티븐과 레이첼은 화면만 보면 꽤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산 것으로 그려진다. 여전히 영웅으로 대접 받으며 많은 사람에게 박수 받는 삶을 산다. 과거는(작전) 진실 속에 가려진 상태에서 새로운 모습(영웅)으로 남들과 섞여 잘 산다. 이것 역시 어딘가 숨어서 정체를 숨기고 잘 사는 나치 전범자들과 친일파들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고위직 관료로 있는 스티븐과 평범하지만 화려한 삶을 사는 레이첼이 바로 현재 친일파와 나치 전범자들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이 영화는 첩보 장르 형식을 빌렸지만 첩보 영화가 아니다. 과거사 문제를 소재로 삼았지만 역시 과거사 영화가 아니다. 진실과 거짓을 다루지만 그것마저 실체가 아니다. 영화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는 걸 간접 화법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영화의 결말 역시 이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망간 박사는 죽기 직전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체를 밝히며 언론사와 인터뷰를 시도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가짜라는 걸 알아 챈 레이첼은 기자에게 진실이 담긴 편지를 남기지만 진짜 보겔 박사가 그 병원에 있다는 걸 안 순간 그를 잡기 위해 다시 추격을 한다. 그녀가 기자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실체를 밝힌 후이기 때문에 그를 추격하거나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건 자신에게도 의미가 없음에도, 그녀는 그를 찾아 병원을 수색한다. 누가 봐도 원래 목적(암살)대로 움직였다는 걸 알 수 밖에 없다. 보겔 박사 역시 마찬가지. 레이첼과 결국 일대일로 마주치자 그는 자신이 실수로 다른 환자에게 말해서 생긴 일이라며 수습하겠다고 사과 한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는 레이첼을 곧바로 공격한다. 

레이첼은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속죄하는 편지를 쓰지만 그가 진짜로 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돌변한다. 보겔 박사 역시 과거 모사드 요원이었던 그녀가 자신의 말 실수로 인해 다시 찾아오자 죽을 죄를 진 것 마냥 미안해 하지만 이내 그녀를 살해하려 한다. 상황이 또 한 번 사람을 바꾼다. 둘 다 또 똑같이 과거처럼 반복된 실수를 하고 상황을 악화 시킨다. 결국 결말에 가면 정의도 없고 사명도 없다. 진실도 거짓도 없다. 철저하게 댓가만 있을 뿐이다. 그걸 영화가 잘 표현하고 보여줬다.

진실과 그 진실을 은폐한 것을 다시 들추는 영화가 아니다. 원 제목으로 쓰인 The Debt 부채, 빚이라는 이 단어에는 반드시 "이자"라는 것이 붙는다. 다른 말로 댓가라고 할 수 있다. 부채를 지었으면 반드시 이자를 갚아야 하는 것처럼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평생 데이빗처럼 살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결말을(레이첼) 맞게 하는 것이 바로 댓가, The Debt에 주어진 숙명이고 절차다. 물론 데이빗조차 끝은 결국 자살이었지만 말이다.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일반적인 사회 정의 구현에 반하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라면 반드시 연체 이자까지 전부 받아야 하는 것이 사회 정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겼던 보겔 박사는 결국 뒈지는 것으로, 자신보다 딸의 안녕을 더 걱정했던 레이첼에게는 딸의 삶이 어미의 편지 한 통으로 인해 파탄 나는 결과를 예측하게 만들어 준다. 연체 이자까지 확실히 받은 케이스

다른 사람들은 평점을 6점대로 주었지만 난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서 "수", 인간의 내면을 다르게 볼 수 있어 나름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귀담아 듣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 하나 하나가 사실 다 의미 있다. 오히려 결과만 놓고 보면 첩보 액션을 줄이고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해 더 좋았던 영화다. 나에게 신이 특별한 능력을 준다면 나치 전범이나 친일 전범이나 영화 속 인물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평생 미안함과 죄를 짓고 사는 마음으로 나중에라도 잘못을 고치려 한다면 데이빗처럼 살게 하고, (그래도 끝이 좋을 순 없다) 여전히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철면피라면 그 가족마저도 모조리 무너질 수 있는 레이첼과 보겔 같은 삶을 주고 싶다. 그래야 이자 다운 이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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