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이 잘못 되었을 때 남자 대부분 무던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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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남녀해석

주문이 잘못 되었을 때 남자 대부분 무던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by 깨알석사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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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녁밥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과일 먹으면서 TV를 보는데 뜬금없는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남자들은 고객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긴다고 하는데 나도 그러냐는 물음이었다. 맥락 없는 질문에 그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되묻자 아내 분이 말하길 친구들 모임에서 나왔던 말인데 남자들은 무슨 문제가 생겨도 클레임을 (이의제기) 잘 걸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상황 하나를 예시로 들어 설명을 한다.

"오빠가 온라인으로 난방 셔츠를 하나 샀어. 근데 택배로 온 난방 셔츠를 보니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어. 그럼 어떻할꺼야?"

그 말을 듣고 난 3초 정도 생각을 하다 이내 답을 했다. "단추 하나가 빠져 있다고? 그럼 여분의 단추로 단추를 달면 되지!"

그러자 아내 분께서 토끼 눈을 뜨며 "우와~ 오빠도 그러네!" 하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게 왜?" 물으며 놀랄 일인가 의아해했다. 다소 황당해하는 아내 분은 "반품 안 해?"라고 되물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 거리며 머뭇거리자 아내 분께서는 그걸 왜 고쳐 입냐며 반품하고 새 옷으로 받아야 정상 아니냐며 재차 물었다. 다시금 질문을 받고 잠깐의 고민을 한 나는 그게 반품까지 할 인인가 혼잣말을 속삭였는데 아내 분께서는 그 말을 듣고 어랍쇼~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옷이 잘못되었는데 반품해야지 그걸 왜 손님이 고쳐 입냐며 발가락 똥침을 나에게 날렸다.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대체로 남자들은 나처럼 반품을 하지 않고 그냥 입는다는 쪽이 많다는 것 같은데 여자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불가라는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싶었다. 본인 생각에는 남녀 의식 차이가 아닌 개인 성향에 따른 차이라 생각하고 나에게 이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믿었던 나조차 다른 남자들과 같은 의견이 나오니 여자가 생각하는 상식과 남자가 생각하는 상식 범위의 차이가 있음에 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남녀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새삼 느꼈는지 신기방기해했다.

사소함 그리고 귀찮음

아내께서 바라는 상식에서 벗어난 답을 했으니 볼때기를 잡힌 상태에서 예상대로 그에 따른 심리 취조가 시작되었다. 만물의 이치. 근원을 따져 원리와 깨달음을 주는 근본적인 외마디 "왜?"라는 단어가 아내 분의 입을 통해 나에게 던져졌다. 불량품이 왔음에도 왜 반품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그날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귀찮잖아.." 그리고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건데 그 정도는 내가 수선하면 되지"였다. 그리고 몇 마디 부연 설명을 붙였다. (그 설명은 아래 따로 후술)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으나 다수의 남자가 이런 선택을 했고 이런 류의 비슷한 답변을 했다면 여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남자는 귀찮아서 반품을 안 하는 것이고 그 와중에 굳이 귀찮다면서도 단추를 직접 다는 수고를 부담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이 대답은 정말 멍청하고 단순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옷 자체도 엄밀히 따지면 불량품이다. 반품해야 할 상황에 그대로 OK를 한다니 아해하기 힘든 부분이고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자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불가의 영역이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생각의 개념이 다르다. 남자는 경우의 수를 따져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본능적으로 계산하는 습성이 있다. 난방 셔츠의 단추도 마찬가지. 단지 단추 하나 빠졌을 뿐이고 이런 난방에는 하단에 여분의 단추가 하나 정도는 붙어 있다. 설령 없어도 집에 남아도는 단추 하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다. 남는 단추가 정 없다면 입지 않는 옷에서 비슷한 단추 하나를 떼어내도 된다. 집마다 상비약통이 있고 공구통이 있듯이 집에 반짇고리 세트도 항시 있는 법. 이 정도 수선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바늘과 실, 단추만 있다면 이 문제는 바로 해결이 된다. (참고로 이 질의 덕분에 우리 집에 당연히 있다고 믿은 반짇고리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집에서 바느질할 일이 거의 없고 수선은 세탁소에 맡기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음... 체 했을 때 손 따야 하는데 ㅋ)

그런데 반품을 할 경우, 쇼핑몰에 연락해 반품 의사를 밝히고 택배 기사님을 다시 불러야 한다. 곧바로 오지도 않을뿐더러 택배를 받는 경우와 달리 이때는 물건을 직접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며 또 택배기사가 반품을 받으러 오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 주간에 사람이 집에 없다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설령 여차여차 시간을 내어 다음 날 택배를 반품했다고 해도 다시 옷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결국 반품을 하면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옷도 바로 입지 못할뿐더러 더 많은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번거로움에 따른 귀찮잖아와 단추 하나의 사소함을 갖고 과연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더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하게 된다. 단추뿐 아니라 옷 색상이 바뀌어 다른 게 왔어도 마찬가지.

물론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옷 색상이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르면서 그 바뀐 색상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연히 귀찮아도 반품을 한다. 단추 따위가 아니라 실밥이 터지거나 옷에 하자가 있어 사실상 입을 수 없는 상태의 불량품이라면 당연히 절대다수의 남자들도 반품 처리를 한다. 물품 자체가 구매의 목적과 크게 벗어나거나 (상품 효율성 제로) 제품 자체의 결함, 파손, 사용불가 수준으로 내가 지급한 상품 대금의 값어치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당연히 즉각적으로 업체에 연락해 항의하고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금액이 큰 경우, 새 차의 잔 흠집 역시 문제 삼을 수 있다. (남자에게 자동차는 목숨과 같다) 맹목적인 바보는 아니다. 만 원짜리 난방 셔츠 하나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값과 상품에 따라 당연히 남자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역시 경우의 수를 따져 과연 이게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를 따질 뿐. 큰 문제가 없다면 일부 실수가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당장 귀찮은 것 같지만 멀리 넓게 보면 반품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금 선택이 나중의 귀찮음을 해소하는 단초가 되기에 오히려 지금의 귀찮음(단추달기)은 귀찮음이 아닌 게 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귀찮음과 사소함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과연 이 문제에서 얼마 큼의 자리(중요성)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일을 크게 벌일지 작게 마무리할지 선택한다는 뜻이다.

남자의 경우 대체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을 크게 벌일 것인가 작게 넘어갈 것인가를 우선적을 고려한다. 그것이 사소하다면 귀찮음을 따지고 그것이 사소하지 않다면 귀찮더라도 대응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여자는 자신이 구매한 제품, 옷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 제품 하자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만 남자는 그에 따른 부수적인 상황까지 고려해 벌어지는 상황, 벌어질 상황까지의 크기에 포커스를 맞춰 문제의 본질을 짚고 넘어간다는 차이가 있다. 언뜻 여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남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당연한 기질이며 본능이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남자는 왜 이런 귀찮음과 사소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

정글에 산다고 믿는 남자들 이야기

여자는 세상이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보지만 남자는 세상을 먹고 먹히는 정글의 세계로 보는 경향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유니섹스 시대의 남녀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가 왔다고 하나 남녀의 성 역할에 따른 기질과 성질까지 한 번에 바뀔 순 없다. 여자의 역할이 바뀌고 여자의 역할이 증대되어도 남자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라는 여자의 역할이 달라질 순 있어도 세상이 바라는 남자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데 남녀가 갖는 사회적 지위가 평등해진다고 해도 그에 따른 성 역할까지 평등할 순 없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단순 성별의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 있어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그중 남자에게 주어진 숙명이 바로 보호자 역할, 가디언이다.

무엇보다 아빠라는 호칭이 갖는 상징성, 남편이라는 호칭이 갖는 상징성,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갖는 상징성, 아들이라는 호칭이 갖는 상징성, 이걸 아울러 남자라는 호칭이 갖는 상징성이 남자에게 적용되는 차원의 개념은 여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호칭의 상징성이 갖는 테두리 중심에는 아무 일이 없을 때는 그저 그런 평범한 호칭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이 어떤 문제나 곤경에 빠지는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테두리 밖으로 의식을 끄집어내어 표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때 자는 본질적으로 일이 커지는 경우 상당한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일이 커진다는 건 싸워야 한다는 걸 의미하고 남자에게 있어 싸운다는 건 본능적으로 "목숨"을 걸 정도로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목숨 걸고 지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가디언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런 본능을 우리는 "무모함"이라고 달리 말하기도 하고 실제로 남자들은 무모한 행동을 많이 한다고도 말하지만 이는 남자 스스로가 이 무모함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이 무모함이 반드시 가치가 없다고 볼 순 없다. 이 무모함이 남자의 보호자 역할에 있어서는 때론 강력한 무기이자 근간이 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 애인과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양아치 여럿과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쫄지 않고 대응하려면 무모함이 필수이고 뻔히 질 것을 예상하지만 가족이 도망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이 무모함은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필수 심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런 의식이 호칭에 따라붙는 대상(아빠라고 부르는 대상자, 남편이라 부르는 대상자 등)들도 "남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핵심. 아빠가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치, 남편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치, 아들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치, 남자친구(애인)가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치 말이다. 즉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로 주어진 남자라는 이름으로 붙어진 사명감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확전 되는 계기는 엄마가 등장했을 때가 아니다. 이때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 아빠들이 등장했을 때다. 아이들도, 각자의 아내들도, 이 상황을 지켜보는 제3자들도 남자 어른이 등장했을 때가 최고조의 긴장 상태가 된다는 걸 안다. 아이들끼리 다투었을 때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엄마들끼리 대응할 때는 일이 수습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남자가 등장하면 이건 개싸움이 될 확률이 다분히 높아진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나서지 않지만 문제를 삼기 시작하면 수습이 아니라 끝장을 내려한다는 것이다.

친구 엄마가 집을 찾아오면 이쪽에서도 엄마가 등장해 상황이 만들어진다. 지금이야 현관이 곧 거실이라 아빠도 같이 나와 방문한 상대 엄마를 "응대"하기도 하지만 대문이 있는 경우에는 보통 엄마만 나가서 상대 엄마를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사과를 할 때도 있지만 "맞대응"을 할 때도 꽤 있다. 이때 남편은 잠자코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상대방 아이 집에서 엄마만 온 게 아니라 아이 아빠가 등장하면 (남자 목소리가 들리면) 이쪽에서도 남편이 등장하게 된다. 여자는 아이 문제니 당연히 아빠도 즉각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하나 남자는 대체로 일이 커졌을 때 등판하려 하지 일이 커지지 않으면 잘 등판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아빠가 등장했다는 건 상황이 크게 번졌거나 상황을 크게 만들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남자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

남자는 태생적으로 가족을 보호하고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배우고 길러진다. 가정교육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남성"이라는 테두리에 들어가게 되면 성 역할이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그렇게 자랄 필요가 없고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줘도 자아가 형성되는 전 과정을 무인도에 갇혀 지내지 않는 이상, 친구와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보고 배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알아가는 것들이 있어 결국 남성이라는 주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역량과 지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남자들이 느끼는 감성, 본능, 수컷들의 세계가 갖는 다양한 성질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자들끼리의 싸움이 커져도 장애를 입거나 사람이 죽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남자들끼리 싸우는 경우에는 다치는 수준을 넘어 장애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싸움의 본질이 다르다. 여중생끼리의 싸움, 여고생끼리의 싸움과 남중생들의 싸움, 남고생들끼리의 싸움의 결이 다른 것도 그렇다. 여자는 화가 나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는 개념으로 싸운다면 남자는 갑과 을,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한 생존 본능 차원에서 싸움의 개념을 갖기 때문에 싸움의 질이 다르다. 방어할 때는 철저하게 수호자가 되지만 공격할 때는 철저하게 정복자가 되려 한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또 다른 방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인식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같은 논리와 같은 생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면 이해불가일 수 밖에 없다. 남자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사소하지 않은 (사소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에는) 중대한 것에는 맹목적으로 목숨을 건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에 이런 마음은 아주 사소한 것들과 분리시켜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며 이런 습성에 길들여지게 되면 일상에서의 다양한 모습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그런 마음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전시에는 모든 화력을 동원하지만 평시라면 자잘한 문제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문제 삼지 않으려는 습성이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의 스트레스 강도와 대처가 여자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매번 매 순간 전력을 다해 싸우려 하기보다는 반드시 필요할 때만 나서려는 습성도 더불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단추 하나로 일을 크게 벌일 것인가 그냥 내 수준에서 해결할 것인가를 따져 단추 하나를 내가 직접 다는 귀찮음과 쇼핑몰에 연락하고 택배를 부르고 택배를 다시 맡기고 택배를 다시 받는 수고스러움의 귀찮음을 비교해 무엇이 더 귀찮은지를 따져 효율성을 볼 뿐이다. 바보라서, 멍청이라서, 생각이 단순해서, 무모해서,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사소한 것들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이런 건 아무 데미지가 없는 순리에 따른 일처리로 보이지만 남자 세계에서는 이런 자잘한 것들도 모두 신경을 거슬리는 것이고 당연히 애초에 단추 때문에 신경이 이미 살짝 거슬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걸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단추를 직접 수선하는 자구책인 것이지 생각이 없거나 짧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사소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귀찮음을 따지는 것이지 사소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귀찮음을 따지진 않는다.

수컷의 세계

남자의 경우 일이 작거나 별 일이 아닐 때는 나설 필요도, 나설 이유도 없지만 일이 커지거나 다른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되면 자신이 전적으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순간의 찰나가 오는데 이때 남자로서의 위기가 불어닥치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 의지가 어쨌든 사회가 원하는 남자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원한다. 그걸 해내지 못하거나 미숙하게 처리하면 남자답지 못하거나 남자로서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믿었던 가족은 물론 주위 이웃까지도 말이다. (고추 떼라고 하는데 남자의 기능 수행력을 넘어 남자의 역할까지 깔보는 비아냥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존감과 연결되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꽤 오래 화제가 되었던 깻잎논쟁도 마찬가지. 대다수의 남자들은 별 거 아니라고 하는데 여자들은 극대노를 하며 불같이 화를 낸다. 다수의 남자들은 이걸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개인마다 생각이 다른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남녀 차이로 확 갈린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인데 여자는 나와 내 애인과의 관계에 집중해 깻잎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애정도를 측정하려 하나 남자에게는 이런 것도 다 사소하고 아무 문제도 아닌 (쓸모없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로 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결국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답변이 오간 뒤 "야, 밥상에서 깻잎 빼!"라고 말하는 것도 남자. 그 말은 곧 아무것도 아닌 걸 일로 만들어서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도 남자가 여자보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며 그 충격에 대한 대처도 다르다는 의견도 일부 있다. 수호자와 정복자의 역할을 필요로 할 때는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소진하는 것이 남자의 심리이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수호자와 정복자의 역할이 아닐 때는 철저하게 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함과 귀찮음을 기준 삼아 전력을(정신력) 얼마큼 써야 하는가를 따져 계산할 수밖에 없고 사소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부 손해가 났어도 정신적으로는 대미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반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는 걸 여자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태생적으로 남자는 무모함이라는 무기를 달고 사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통제하고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탐구하게 된다. 이것이 없다면 남자로서의 기질 역할을 할 수 없고 이것이 늘 충만해 넘쳐 표출된다면 성 역할을 떠나 수행자 기능을 할 수 없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항상 이걸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조차도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결국 남는 건 (필요한 건) 컴다운, 셧다운이다.

여자들에게

블랙박스가 보편화되면서 인터넷에는 다양한 교통사고 유발 장면들이 있는데 이때 남자의 과격한 운전과 함께 옆자리에 동승한 아내가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보복 운전을 할 때 주행 중인 차 안에서 같이 따지는 아내가 있고 반대로 옆에서 남편을 진정시키려는 여자가 있는데 간혹 가다 "아내가 현명하다"는 내용의 영상들이 올라올 때가 있다. 큰 싸움으로 번질 법한 사고 유발 상황이 되자 아내가 오히려 야생마로 변한 남편을 진정시키며 컴다운을 외치는 경우인데 남자 심리를 그나마 잘 아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쉽게 야생마, 헐크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남편 목에 독침을 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옆에서 화를 진정시키기보다 오히려 북돋으며 정복자 역할을 하길 기대하는 아내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상황을 쭉 보면 결국 상황이 더 나빠지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꽤 많다. 정복자 역할까지는 아니어도 같이 욕을 하며 동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몰라도 남편도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에서 양념까지 치는 경우가 꽤 있다. 교통사고 현장은 물론 앞서 언급한 아이들 싸움도 마찬가지. 본인들이 두 집안 남자들 앞에서 싸우는 것 자체가 남자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는데 상황을 봐가며 통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몰며 사태를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남자들끼리 있을 때보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가 여자들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끼어들기 비매너 운전자 영상도 마찬가지. 끼어들기를 잘못한 상대 차에는 아빠와 성인 딸이 탔는데 해당 차주가 블박 차주에게 끼어들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따지는 영상이었다. 두 운전자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서 딸이 가세해 싸움을 붙인 상황인데 (차에서 내림) 애초에 상대차는 끼어들기를 무리하게 시도하는 상황이었고 고성과 욕설이 오간 것도 블박 차주는 가만히 있는데 상대 차가 옆에 붙어 욕설을 해가며 따지는 경우라 사실 상대 부녀가 탄 차는 아무런 피해를 본 적이 없는 상황이다. 먼저 무리한 운전을 했고 끼어주지 않자 욕을 한 것인데 좋게 넘어가려 한 블박차를 결국 자극한 건 바로 딸. 아빠를 돕는다고 나선 모양새지만 결과적으로 아빠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인 꼴이 되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이 있듯이 남녀 사이에 있어 여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데 둘이 같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상대방으로 인해 내 남자가 헐크로 변했을 때 현명한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의 한마디 말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오빠, 그만해! 오빠 하지 마!"라고 다그치는 수준에서 나름 진정시킨다고 하는 여자들이 대다수. 그러나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남자가 절대로 진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외침은 능력없는 우리가 후퇴하자는 말로 들려 반발심만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이때는 그렇게 하지 말고 약간의 변형을 주어 다르게 해야 한다. "오빠, 하지마!" "오빠, 그만해!", "오빠, 하지 말라고!" 할 때 목소리 톤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된다. 바로 화자(아내, 여친)의 심리 상태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오빠, 그만해!"는 단호하게 크게 외치고 (싸우는 상대방도 의식할 정도로) "오빠, 하지 마!"는 그보다 낮은 톤으로, 그다음이 중요한데 아주 차분하게 "오빠, 나 괜찮아"이다. 괜찮다고 말을 했으니 당연히 말투도 차분해야 하는 필수조건이 필요하다. 이때 눈을 마주치는 게 중요. 상대방 얼굴에 꽂힌 애인이나 남편의 시선을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어 상황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주어 야생마를 진정시키는 방법이다. 이게 효과가 없을 것 같아도 심리적으로는 싸우는 상대방에게도 작용되기 때문에 상대방도 살짝 주춤하게 되고 애인이 직접 "괜찮다"는 말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정복자로서의 역할에서 수호자로서의 역할로 순간적인 방어기제의 태세전환을 유도하는 방법이 된다.

내 옆에서 아내도 같이 자극을 하고 같이 화를 내면 당연히 나도 화를 계속 내지만 내 옆에서 아내나 애인이 괜찮다는 의사 표시를 정확히 해주면 벌어진 일(문제)의 크기가 애인의 안정도만큼 순간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남자는 그만큼 진정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난 괜찮아"에 이어 반대로 "오빠가 다치는 거 원치 않아", "오빠가 스트레스 더 받는 걸 원치 않아"라며 "걱정"하는 멘트를 날린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걱정해 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인가 순간적인 본능적 감각 계산을 하게 되면서 아내가 날린 진정제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령조로 말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는 형식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말의 뉘앙스를 넣어야 한다는 것.

만약 그럼에도 통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최후의 수단도 있다. 부정+부정은 강한 긍정이 성립되듯 애인의 심리 상태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 상황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떨려 힘들다는 내색을 하는 경우다. 이때는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남자가 상황을 확전 시키거나 진전시킬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 방법을 쓴 분을 본 적이 있는데 보복 운전차량과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남편이 이성을 잃고 맞대응하자 어르고 달랬음에도 통하지 않았던 상황. 결국 아내가 가슴을 웅켜잡고 놀라서 심장 쪽이 아프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줄였더니 남편이 금세 사그라들었다는 후문. 더 대단한 건 자기가 아프다면서 물 좀 마시고 싶다며 편의점으로 정차 유도를 했다는 점인데 실제로는 본인이 아니라 남편에게 물 한잔 먹이면서 안정을 취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아내는 수영과 테니스를 즐겨하는 무척 건강한 분이다) 말 그대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준 사례.

정리

남자가 멍청해서, 단순해서 그런 행동이나 마음을 갖는 건 아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길들여지고 그렇게 만들어졌고 사회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라는 말은 애초에 여자에게 성립되지도 않고 여자들이 쓰지도 않는다. 이 말은 곧 남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관용어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 삼지 않으려는 경향을 대부분의 남자는 갖게 된다. 그런 심리적 기반을 무시하고 어리석거나 멍청해서, 또는 귀차니즘에 빠져 제대로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위에 내용 중 중간에 유튜버 힘의 길 영상과 SNL 개그 코너에서 다룬 남자의 반응이라는 같은 주제의 영상을 링크했다. 내가 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것들인데 그만큼 남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비슷하게 대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생각보다 많다.

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따져 묻고 항의해야 하는 것이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때론 이런 것들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들로 여겨져 그냥 넘기게 된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밥이 정말 맛없다면 항의를 하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나와 다음부터 그 가게를 찾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이래라저래라 따져가며 싸워봤자 그에 따른 이해득실이 크지 않아 똥 밟은 셈 치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정신적 대미지를 입었을 때 사과를 요구하고 대응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머릿속에서 그 순간을 지우는 것으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나름의 진화를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내가 오늘 쓴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남자 심리를 몰랐을 땐 멍청하게 느꼈는데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의 일리가 있다며 난방 셔츠를 반품하지 않은 것에 일부 공감해 줬다. 그리곤 남자도 여자 마음을 잘 모르지만 여자도 남자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반짇고리 사야겄당...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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