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만든 공익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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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가족사랑

부모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만든 공익 광고

by 깨알석사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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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 포기하지 마!

힘내!, 포기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분명 응원의 메시지이고 용기를 북돋게 해주는 말인데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공익 광고가 꽤 오래전 영상임에도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 무척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경쟁과 싸움이 일어나는 링이라는 공간에 있는 아이들. 그 링은 살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또 그것은 누구나 겪는 과정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저런 경쟁과 우승만이 존재하는 삶은 우리가 바라는 삶과는 거리가 있다.

부모들의 코치. 자녀가 잘 되길 바라고 또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지도와 감독을 하지만 사실 그건 코칭이라는 허울로 감싼 잔소리와 부모가 갖는 또 다른 허영의 실체일 뿐. 정말 아이를 위한 코칭인지 의심스럽다.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라지만 그 행복의 과정과 결실은 결국 부모가 갖기 원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이 곧 자신이 잘 되는 것이고 자식이 잘 나가야 자신도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자괴감에 대한 복수심.

사실 부모가 저 상황에서 힘내라, 일어나라 하는 건 격려가 아니라 질타와 충고다. 정말 못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갖는 욕심에 미치지 못해서 하는 잔소리인 경우가 더 많다.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집과 비교하면서 이내 그 집의 부모와도 비교를 하게 되는데 자신의 처지와 능력은 상관치 않고 부모와 부모 간의 비교가 아닌 내 자녀와 다른 집 자녀를 비교하면서 그 결과를 나와 상대 부모로 확장 비교를 하니 자녀의 실력은 곧 부모의 실력으로 착각하게 되면서 아이를 쫀다. 못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절대 못하면 안 되는 무조건적인 훈련과 우수한 성적 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저럴 때는 저렇게 해라, 훈수 두기 바쁜 부모. 이럴 때는 이렇게 했어야지 하면서 바보 멍청이 소리를 함부로 하고 왜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심지어 죄라고 부를 만한 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성적이 나쁘거나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물리적 정신적 학대를 서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코칭이라는 이름으로 링 위의 아이(선수)를 지도하지만 결국 코치와 감독(부모들) 자신들이 원하는 자신들만의 목표와 목적인 승리를 위해서 아이를 혹사시키는 결과일 뿐 아이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아이가 링에서 입는 상처가 얼마나 클지는 생각지 않는다. 무조건 버티고 힘내고 이겨야 한다고 외친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고 누구나 다 이겨내는 과정이라고 합리적 명분을 들이민다. 그러나 저런 격투 링의 삶은 모두가 겪지 않는 삶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이겨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부모조차 사실 자신들의 어릴 적 링 위에서의 삶도 행복한 경우는 없다. 자신이 이룩하지 못한 걸 자녀에게서라도 채우려는 욕심에서 나온 거짓 조력일 뿐이다.

아이가 링 위에서 도저히 못 버티는 상황. 계속 다운돼서 이제는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도 부모는 자녀에게 외친다. "라운드는 끝까지 마치자"라고 말이다. 못해도 되니 끝까지 싸우자고 한다. 일단 마지막 라운드까지는 가자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중간에 낙오하거나 포기하는 그 자체는 분명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고쳐주고 바로잡아 주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저 링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가 링에서 포기하려 하거나 힘들어할 때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이 "너 그러다 링 위에서 죽는다. 죽기 싫으면 싸워!" 한다면 부모는 정작 진짜 죽음을 종용하는 코치가 되고 있지는 않을까? 경쟁 관계에서 낙오되어 죽는 게 아닌 부모의 말에 상처를 입어 링 밖으로 몸을 던지는 경우 말이다.

 

디딤돌과 걸림돌

링 밖에서 링 안을 자녀를 지도 감독하는 부모가 할 역할은 광고 마지막에 그대로 잘 나오는 것 같다. 힘들어할 때 과감하게 흰 수건을 던지는 것과 그걸 언제든지 던질 준비를 하는 마음자세. 아이의 상태를 보고 아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서 아이 스스로가 거절조차 할 수 없는 맨다운 상태가 된다면 부모는 수건을 던지고 언제든지 링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자신들의 링이지만 그게 성장이 아닌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된다면 링에서의 싸움을 멈추고 몸을 추스를 시간을 주어야 한다. 링 위의 선수가 내 아이라면 당연히 즐기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고 버티지 못한다면 링 안에서의 삶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 링은 놀이터가 되는 링이 아닌 죽음의 링이 될 테니까.

아이들이, 자녀들이 꼭 저런 격투기 링 위에서 싸워야 할까. 보기에 따라 링은 텀블링으로 불리는 퐁퐁(방방)이 있을 수도 있고 에어 매트가 될 수도 있고 물로 채워진 작은 물놀이장이 될 수도 있다. 부모와 아이는 링에 대한 기준을 아이에 맞춰 마음대로 링이라 부르고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적이고 규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자신들이 생각한 것이 "링"이라면 그게 곧 "링"이고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이든 아이가 즐겁게 놀고 뛰고 그곳에 만족하며 또래 친구들과 싸우기보다 어울려 공존하는 행복한 링에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면 모를까. 원하지도 않는 죽음의 링에 계속 올리는 건 부모의 욕심이 아닐는지.

부모가 슈퍼맨이면 자녀도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잘나고 천재성을 띄고 부모를 뛰어넘는 창의력과 능력을 소유하지 않는 슈퍼맨 베이비라면 물을 것도 없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 속 슈퍼맨 부모들에게는 슈퍼맨 베이비란 없다. 평범한 인간일 뿐, 그냥 부모만 슈퍼맨이다. 더 나아가 진짜 슈퍼맨은 없고 그저 슈퍼맨인 척하거나 슈퍼맨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족을 자녀에게서 채우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그런 환경에서는 아이가 슈퍼맨이 될 확률보다는 악당이 될 확률이 높다. 단지 그런 악의성을 부모에게만 표출하는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표출하는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국에는 슈퍼맨을 만들려는 수많은 부모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아무 꺼림 없이 격투장 위로 올리는 그런 일이 수없이 발생하기에 결국 우리 사회에 여전히 악당이 많은 게 아닐까.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성장 디딤돌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광고를 되새기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부모 입장에 있는 분이라면 "양육" "훈육" "보육" "교육"이라는 낱말에 대해 꼼꼼히 다시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당신은 아이를 양육하고 보육하면서 훈육과 교육을 해야 하는데 정작 아이를 "사육"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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