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 곡소리 날 정도로 무서운 영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나도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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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곡성 - 곡소리 날 정도로 무서운 영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나도 미끼를 물었다

by 깨알석사 201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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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영화 제목 자체가 한번 꽈서 들어가는 영화다. 전라남도 곡성과 곡소리(슬피우는 소리)를 뜻하는 곡성과 같다. 배경이 곡성이고 주인공이 소속된 경찰서도 곡성 경찰서,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 말하는 곡성은 슬피우는 소리인 곡소리.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라는 말처럼 귀신과 관련되어 있고, 또한 이 민담 자체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일, 믿지 못할 일, 황당한 일, 원통한 일과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귀신이 곡을 할 이유가 없는데 곡을 한다는 건, 귀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고 뜻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로 사람이 내는 곡소리와 귀신이 내는 곡소리가 모두 포함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아닌 귀신이 슬피 울면서 곡을 할 때는 귀신이라도 무언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다. 상식적으로 귀신이 못할 일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음에도 울 일이 없는데 슬프게 운다는 건 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 된다. 설화에서는 보통 사또 앞에 등장해 슬피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영화 초반에 성경 구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무당과 신부, 경찰이 등장한다. 토속신앙과 종교신앙이 종합으로 나오고 귀신과 경찰이라는 굉장히 언발라스한 구도가 등장하는 굉장히 스토리가 풍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곡성을 다 보고 레알 깊은 빡침을 느꼈다. 대봑~ 이러면서 말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영화를 쭉 보다가 결국 나도 미끼를 물어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다. 하나하나 장면을 떼어서 보면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지만 풀샷으로 그냥 한번에 쭉 훑어 내려가면 이 자체로도 훌륭한 이야기가 완성된다.

영화의 첫 시작점이 성경 구절로 시작하고 신부가 등장하고 마지막 장면에도 도제가 악마와 만나는 장면 때문에 종교적인 영화, 또는 기독교/천주교를 까는 영화라고 보는 시선도 있고 반대로 불교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무당과 신부를 동일 선상에서 언급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보고 나면 왜 첫 시작에 성경 구절이 나왔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데, 영화속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좀비, 사탄(!), 악령, 귀신, 잡신, 할매, 예수님 모두 "부활"의 개념에서 그 출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속의 성경 구절은 "부활"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첫장면도 부활과 관련한 성경 구절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도 육신의 부활로 영화가 끝을 맺는다.

패러디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뭣이 중헌지도 모른다는 말이 딱 여기에 제격인 듯 싶다. 소복 입은 여자 말은 믿고 (봤어? 허믄..봤제 - 목격자로 인정) 일본인 말은 믿지 못하고 (일본인 : 내가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무당과 굿은 믿는데 종교는 믿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 소문은 믿는데 경찰 수사 결과는 믿지 못하고 (부검 결과 버섯 중독) 의심은 하되 확신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의심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또 다른 의심을 낳고 하는 모양새가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주탐사를 하는 첨단 과학시대, 로봇과 인간이 바둑 대결을 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무당과 미신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교회를 다니고 신을 믿는 사람은 멀쩡한 대접을 받아도 점집과 미신을 믿는 사람은 터부시하는 것도 우리의 단면이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도 결국 신(귀신)과 악마(잡신)고 결국 서양에서 보는 퇴마사의 퇴마식이 토속신앙의 무당(퇴마사)과 굿(퇴마식)과 교묘하게 짜집기 한 양면성을 꼬집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신부님의 기도는 되는데 무당의 굿은 안된다는 것의 이중성, 사실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이야기고 같은 믿음인데 다르게 보는 시각에서 바로 관객들도 "의심"과 "믿음" "확신"에 차이가 생긴다.


영화 안에는 굉장히 많은 미끼가 있다. 그걸 어떻게 언제 무느냐에 따라 결과와 결말의 추측이 달라진다. 하지만 정해진 각본, 시나리오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은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미끼를 물게 만들었다. 물론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고 영화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가게 된다. 미끼를 안 물수 없게 만든 영화다. 그래서 수작이다.

초반 의문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굉장히 느리게 진행된다. 하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다. 계속 뭐지? 뭐가 숨어있는거지?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라며 의심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만든다. 동 떨어진 상황이 아니라 지금 시대의 그 누구라도 저렇게 했을 거라는 점을 만들어 준다.

영화에는 미끼의 종류가 다양하다. 실제 미끼처럼 살아있는 미끼가 있고 모양만 흉내낸 가짜 미끼가 있다. 지렁이를 쓰는 경우도 있고 떡밥을 쓰는 경우도 있고 지렁이나 물고기 모양을 한 가짜 미끼들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영화에도 그런 요소가 많이 보인다. 가짜 미끼를 물면 영화가 원하는 방향대로 뭐지? 뭐지? 상황 자체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진짜 미끼를 물면 내가 당했구나 하고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대문 밖의 교회와 사찰은 인정하면 안되고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 밖에 없다면서 다른 신은 미신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퇴마사는 실체가 있고 멋있는데 무당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신이라는 것을 믿되, 종교, 신앙에서 말하는 모든 신(귀신)들의 존재를 다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종교라고 부르는 것과 신앙(토속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르지 않음도 인정하고 봐야 오해 없이 제대로 볼 수 있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추격자, 황해다. 걸죽한 남정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배경이 암울하고 어둡다. 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사실감도 있으면서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겉으로는 그런 일은 없다. 있어도 소수다라고 하지만 막상 파헤쳐보면 다반사인 경우들이다. 영화속 주인공이나 배경 인물들은 우리 주위에 없다라고 하고 싶지만 항상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모두 잔인함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인간 내면의 숨겨진 자아를 끄집어 내고 있는 영화들이다.

추격자의 4885?, 황해의 하정우 먹방, 곡성의 미끼 이론처럼 감독의 영화는 항상 주목을 받고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다. 패러디가 많이 되고 화자 되면서 충격적인 메세지를 많이 던져주는 스타일이다. 방송에서는 나PD (나영석)가 하는 방송을 믿고 본다고 하는데 영화계서도 나감독(나홍진)의 영화는 믿고 봐도 될만한 능력이 분명 있다. 나씨 집안이 만든 영상물은 확실히 달라도 뭔가 다르다. 

황해에 곽도원이 나온다. 하정우가 의뢰를 받고 찾아간 건물, 편의점에서 하정우가 죽치고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대상 인물이 곽도원이다. 샷다(!) 내리고 건물 입구를 막을 때 하정우가 마주치는 사장이 바로 곽도원이다. 감독의 3편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모두 연결된 고리를 가지고 있다. 아마 감독이 4번째 영화를 찍는다면 곡성에서 나온 인물 중 선이 굵고 중후한 또 다른 남정네가 아닐까 싶다. 

황정민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 영화가 등장하고 난 이후 앞으로 10년 이상은 이런 영화가 나오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을 했고 일본인으로 등장한 실제 일본인 쿠니무라 준 역시, 이래서 한국 영화구나라며 한국 영화 현장에서 직접 겪어 보니 한국 영화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며 극찬을 한 바 있다.

나도 영화를 다 보고 느낀 것은 이런 스토리로 이렇게 짜임새 있고 스릴감 넘치게 만든 것은 당분간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말을 보고 나서 오랫만에 닭살이 돋았는데, 이런 생각을 어떻게 영상으로 담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영화속에는 다양한 신이 존재하고 등장한다. 말로 등장하는 신이 있고 실체를 드러내는 신이 나온다. 그렇다고 신화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본 바탕은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토속 신앙이다. 다만 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접근하면서 신의 범위에 좋은 신(신의 계시와 가르침)과 나쁜 신(악마/속삭임, 타락, 유혹)이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여기서도 신의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나오고 있다. 다만 신을 믿지 않는 자와 신은 절대적이고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반대쪽에 있을 때 그 신이 어떤 신이지 금방 구별하기 어렵고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분간이 어려워 모두 배척하거나 또는 반대로 모두 옹호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길 뿐이다.

영화는 그 내용이 크다. 두 신을 배척하면 나쁜 진영이 힘을 발휘하고 도움을 받고자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어떤 신이 내가 찾는 신인지 몰라 두 신을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결국 신과 신의 싸움에서 어떤 쪽을 믿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주인공 경찰이 두 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영화는 흥미진진해 진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신은 종교적인 신이 아닌 신령(유령과는 다른..)에 가까운 신(귀신)이기 때문에 더 재밌다.

첫번째 가장 큰 미끼는 신적인 존재다. 신의 존재를 믿게 되면서 그 신이 기묘하고 신비로운 존재 신령이 아닌 악령이라는 사실이고 관객도 그 실체가 허구가 아닌 실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인간(주인공과 무당)과 악령의 대결 구도로 의심케 한다. 그리고 그렇게 쭉 간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과 악령의 대결이 아닌 신령과 악령의 대결이었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는다. 물론 뒷통수 제대로 치기 직전에 악령이 일본인이냐 여자냐 혼란을 주면서 충격 요법을 한번 쓰기 때문에 반전의 거듭된 반전은 충격이 제대로다.

영화는 내가 본 영화 중에 최고라고 평하고 싶다. 수우미양가 중 수, 10점 만점에 10점 준다. 신앙과 믿음에 대한 걸로 보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사람들의 의심과 그 의심이 되는 미끼들로 가득한 영화, 믿는 것과 믿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차이와 그로인해 생기는 오해들이 만들어 내는 문제점들, 그것을 더 구체화하고 실체화 하기 위해 실제 악령을 보여줌으로 인해 결국 의심 VS 믿음 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신적인 존재들이 등장할 뿐, 신이 주인공이거나 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결말을 보고 인물들의 행동에 의심될 만한 것들이 있었고 결국 그것도 미끼가 되어 상황을 여러가지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이후 인물들에 대한 몇가지 주관적인 생각을 덧붙여 해설을 해본다.

영화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주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것의 실체다. 바로 <사람은 누구나 보고 싶은대로 보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다>라는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전부 그렇고 그걸 보는 관객도 모두 그렇다. 성당의 신부님조차 귀신을 봤느냐? 안 보고 어찌 믿느냐라고 되묻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신부라는 것이 던져주는 메세지는 상당히 크다. 

신을 보았느냐 안 보고도 어찌 믿느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기대지 말고 의사(현실의 과학)를 믿고 기다리라고 하는 점도 바로 우리 인간의 이중 심리, 보고 싶은대로 보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카톨릭이나 종교에 따한 까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영화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부분만큼 정확한 것도 없고 사실적인 것도 없다. 부정하기 힘든 진짜 현실속의 공감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깐다고 오해하는 것 자체가 바로 보고 싶은대로 보고 믿고 싶은대로 믿은 결과에 따른 실수다.

참고로 감독은 캐릭터를 완전체로 만들지 않았다. 불안전한 캐릭터와 혼잡스럽게 만든 미끼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조차 보고 싶은대로 보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다라는 대전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라는 식으로 메세지를 던졌다. 열린 결말이라는 뜻인데 보이는 만큼, 보여지는 만큼, 믿는 만큼, 믿고 싶은 만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결국 어느 선까지는 답이 있어도 딱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은 사람이냐? 귀신이냐? 

영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리고 그 일본인이 한 행동과 흐름 자체를 보면 그는 사람이다. 또한 그가 말한 것처럼 여행자일 수도 있고 일본의 무당이나 스님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신내림이 아닌 귀신이 들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습게도 영화에서 당당히 여권을 소지하고 보여준다, 실체가 없는 귀신은 절대 아니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그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고 아주 용한 무당으로 나오는 황정민도 그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적으로 말한다. 등장하자마자 항아리 독에서 죽은 새를 발견했을 때 황정민이 비범한 무당이라는 건 관객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과 말은 전적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결국 그가 말하는 건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영화속 주인공이나 그걸 보는 관객이나 모두 혼란스러워 한다. 보고도 믿지 못하고 믿으려고 해도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귀신이라면 살과 뼈가 없어야 하는 건 당연지사, 더군다나 야밤도 아닌 낮에 활동하는 귀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그런 "의심"이 결국 의도한 부분이다. 분명 눈으로 황정민의 무당 실력을 봤음에도 그가 말하는 걸 100% 믿지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의 입장에서 떠드는 말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첫 시작점인 성경 구절에서도 예수는 부활했고 그에게는 살과 피가 있다고 알려준다.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구절로 영화가 시작한다는 걸 안다면 이건 아주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예수도 살과 뼈가 있음에도 부활을 했고 신으로 인정 받았는데 영화속에 등장하는 일본인이 사람이 아닌 귀신이다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는 걸 영화 시작부터 보여준 셈이다.

영화에서는 황정민이 일본인을 보고 갑중의 갑, (탑 오브 더 탑!) 령(악령/유령/신령) 이라고 말을 하는데 결국 궁극의 최정점에 있는 파워 고스트는 육신과 뼈, 살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 단순히 악령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가 하는 행위와 말은 확실히 황정민과 다르지 않다. 물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행적이 같고 결말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황정민의 캐릭터마저 무당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둘 다 용한 무당이라고 봐야 하는게 더 맞다. 

가장 무서운 것이 퇴마를 할 때 그 악령이 사라지거나 쫒겨나는게 아니라 퇴마하는 자에게 들러 붙는 것인데 그것보다 최악인 것이 없고 그것보다 더 나쁜 건 없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마지막 장면의 "오니"로 나오는 장면을 보면 이 일본인은 일본에서 퇴마를 하다 무슨 일로 반격을 당했고 결국 한국땅에 오면서 원래의 무당과 악령의 두 모습이 공존하면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마지막 황정민 역시 반격을 당해 (이 점은 영화에서 나온다 - 구토하는 장면 말고..) 일본인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둘 다 나쁜넘(?)이 아니라 둘 다 당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마을 친구들과 급습을 할 때 수풀 사이에 숨어있던 일본인은 요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겁 먹은 노인일 뿐이다. 사람일 때 상황 설명을 해도 믿지 못하고 목숨이 위태로우니 도망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가 목숨 걸고 도망가서 절벽에 매달리기까지 한 것을 보면 사람 무당과 요괴의 몸에서 왔다갔다 한다는 걸 증명한다.

두번째로는 왜 하필 외지인이 일본인이냐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 덕에 도제가 등장하고 통역을 해야 하는 역활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또한 결말에서 동굴씬도 만들 수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인이 드러낸 정체가 [오니]라는 걸 눈치챘다면 일본인으로 나오는게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오니는 일본의 도깨비로 본디 추잡스럽고 난폭하고 흉칙하고 드럽고 개망나니에 인정이라고는 없는 "요괴" 중에 가장 무서운 요괴인데 이것이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오면서 도깨비로 둔갑해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로 변질된 녀석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뿔 달린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면서 사람 괴롭히는 도깨비는 일본 요괴인 오니로 일제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 도깨비로 둔갑한 일본 요괴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악령이 아니라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잡신이다) 혹부리 영감하면 도깨비가 바로 연상되는데 혹부리 영감 이야기 자체가 일본 설화로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토속신앙을 모두 다루고 있고 종교적 신앙까지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요괴가 나오는 것도 전혀 엉뚱하지 않다. 오히려 실체가 [오니]라는 걸 보여줌으로 엄청난 녀석이라는 걸 보여주며 왜 이 사람이 일본인인지 설명하고 있다. (공포, 귀신하면 일본인데 별별 무서운 귀신이 일본에 있지만 갑 중의 갑은 역시 요괴인 오니다)

황정민은 일본인과 한패? 또는 악령? 아니면 그냥 무당?

영화에서 황정민은 아주 용한 무당이다.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고 난 이후 자신의 능력치 안에서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결말만 보면 일본인과 한패로 마무리 짓는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인이 요괴에게 당한 이유와 같다. 주인공 곽도원이 마을 친구들과 합심해서 일본인 집을 습격하고 돌아갈 때 도로에서 일본인을 치게 된다. 현장에서 사망한 일본인을 깔끔하게 절벽으로 처리하는 장면까지 보여준다.

그 장면만 보더라도 일본인은 오니가 빌린 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그 말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황정민의 평소 상태와 일본인의 평소 상태를 보면 누가봐도 사람일 때가 있다. 이 때는 무당 본연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자기 몸안에 요괴가 들어왔다고 인지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효진이 상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딸 효진이도 갑자기 평소처럼 돌아오거나 갑자기 돌변하는 식으로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항상 귀신도 잠을 잔다는 걸 안다면 잠 자는 시간에는 본래 모습의 사람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황정민이 마지막 장면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과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사진을 그대로 답습한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속에 이미 그 내용이 나온다. 지금부터 굿풀이를 할 때까지 주인공에게 부정타는 행동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자칫 잘못해서 부정을 타면 역살을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살을 날린다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건 중의적인 표현이다. 주먹을 날린다는 건 주먹 자체가 날아가는 걸 의미하지만 주먹에 맞고 날아갔다라는 표현은 맞은 대상이 날라갔다는 뜻이 된다. 살을 날린다는 것도 똑같다. 황정민이 살을 날린다 (쏜다) 는 뜻도 되지만 딸 효진이에게 붙은 살(역마살, 도화살, 원진살처름 흔히 듣는 그 "살)을 날린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흐름을 보면 황정민이 살을 날리는게 아니라 효진이에게 붙은 요괴살을 날린다(떨어낸다)고 보는게 맞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부정이 타면 역살을 맞게 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굿풀이 도중에 깽판을 놓게 되고 일본인도 죽다 살아나는 것처럼 결국 황정민은 주인공의 부정을 타고 역살을 맞은 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역살의 댓가가 바로 요괴에게 몸을 빼앗긴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숙주로 삼는다면 용한 퇴마사만큼 좋은 몸, 육신 덩어리가 따로 없다. 칼과 방패를 모두 가진 경우로 절대로 죽지 않게 된다.

결국 황정민의 마지막 행동만 보더라도 일본인도 역살을 당한 것이고 황정민도 결국 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대상이 대단한 녀석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황정민이 주인공에게 그 일본인도 무당이다. 녀석을 잡기 위한 무당이었다. 내가 실수했다. 내가 점을 잘못 봤다라고 황급하게 전화를 하는데, 결과적으로 퇴마사의 몸에 들어가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점이 존재하게 된다.

멀쩡할 때는 둘 도 없는 아군이지만 요괴로 돌변하면 그 아군이 바로 적군이 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그걸 알아냈다면 요괴로 보고 처단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면 그 사람에게도 역살이 오기 때문에 결국 일은 더 커지고 더 어렵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 예수처럼 요괴도 화려하게 "부활"    

황정민이 옷을 갈아 입을 때 뜬금없이 훈도시(빤스) 입은 모습이 나온다. 일본인이 빤스만 입고 다니는 모습과 동일하다. 이 점 때문에 동일한 인물(악령)로 오해하기 쉽지만 반대로 둘 다 무당이라는 뜻 해석도 가능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이키 트레이닝 복으로 나오는 장면으로 그를 인간적으로 더 묘사하는데 훈도시를 입은 일본 요괴들이 아니라 토속신앙에 기반한 무당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역설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무당의 이름이 일광(일본의 빛)이라는 점도 관객들에게 던지는 미끼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광이라는 이름은 일본인과 같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본인을 잡을 수 있는 무당이라는 뜻도 되는데 결말에 따라 같은 패거리인지 아닌지는 달라질 수 있는 이름이다.

도제의 역활, 그냥 촌뜨기 겁 많은 신앙심이 아직 깊지 못한 캐릭터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 불찰이고 내가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미끼를 물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나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난 당하지 말아야지 하고 영화를 집중해서 봤지만...나도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감독이 왜 등장인물 대부분을 불완전한 캐릭터로 만들었는지 알았을 때는 이미 나도 뭣이 중헌지도 모르겠고 보이는 것이 전부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버린 상태였다. 경찰이었던 삼촌이 결국 다른 사건처럼 똑같이 당하게 되고 자신도 크게 다치면서 악령의 실체를 믿게 되고 존재를 깨닫게 되는데 수련과 수양이 부족한 도제에게는 일본인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다. 

그건 바로 이 사람이 도제라는 신분 때문이다. 일본인이 다른 사람은 다 죽여도 황정민에게는 다르게 한 이유가 바로 그가 무당이기 때문, 마을 사람 모두가 미친 행동을 하고 온 가족을 다 죽여도 황정민에게는 그런 일이 없는데 바로 제2의 안전한 숙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도제 역시 마찬가지. 종교적인 신앙 관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요괴가 살아남으려면 무당 또는 신부(목사)만큼 좋은 대상이 없다. 다만 이들은 바로 퇴마사 역활을 하는 무서운 존재이고 요괴 스스로가 가장 무서워 해야 하는 상대들이지만 기회가 되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이것보다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따로 없다.

황정민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지만 굿풀이 도중에 역살을 맞아 당하게 되고 도제는 실력은 없는 미숙한 존재지만 앞으로 이런 신앙적인 경험을 토대로 대신부로 성장할 가능성이 누구보다 크고 신적인 존재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르다보니 이들이 요괴의 밥 반찬이 되는 순간, 요괴가 원하는 미친 세상, 서로 죽고 죽이며 살풀이 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 인물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 동굴을 찾아 일본인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그 점도 굉장히 파격적이다. 나는 당신의 정체가 궁금하다. 악마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라고 했을 때 일본인이 씩~ 웃으며 이미 악마라고 단정하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라고 비웃는다. 

도제가 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신이 되는 것이고 악마(사탄)라고 생각했다면 악마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정체를 알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악마로 규정하고 질문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본연의 실체를 드러냈을 뿐, 마음 깊이 진실되게 "의심하지" 않고 신이냐고 물었다면 그런 장면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영화 시작에 언급된 성경 구절처럼 예수가 유령으로 사람들에게 무섭게 보이고 두려움을 준 것처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믿고, 무엇보다 어떻게 "의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의 수호신을 믿지 않고 요괴도 믿지 않으면서 천사는 믿고 사탄은 믿는 현실과도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천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분명 꽤 있다. 종교적인 신념을 떠나서...하지만 요괴, 처녀귀신, 잡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니다 비율이 높을 것이다. 

결국 이 동굴 장면과 도제, 카톨릭의 등장은 종교적 신앙과 토속 신앙의 차이와 다름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설명하며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하는지에 따라 형태만 다를 뿐 같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설명한다. 황정민이 굿마당을 벌일 때 나무에 대못을 꽝꽝 박아 살을 날리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나중에 부활하는 예수와 연관지어 본다면 마지막 장면의 동굴씬은 연관이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다. 그도 못이 박히고 결국 부활한다.

외지인이면서 일본인으로 나오는 것도 종교적인 것과 연관지을 수 있다. 외지인으로 핍박을 받고 고통 받은 그 분과도 상황이 비슷하다. 심지어 동굴에서 손바닥을 보여줄 때 일본인 손바닥에 난 구멍까지 보여준다. 상대가 카톨릭 신부라는 점에서 오니의 형상은 보고 믿는대로 나타날 뿐이다.

무명이 돌을 던지는 장면으로 등장할 때도 종교적 관점과 많은 연관성이 있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말처럼 성경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성경 속의 이야기가 일부 나오지만 본질은 신앙(토속신앙) 전체에 대한 것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무명이라는 여자. 돌멩이 툭툭 던질 때 동네 미친년이 따로 없구만~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를 알고 나서 뒷통수 제대로 맞은 케이스, 이웃집 닭이 딱 세번 울 때까지만 집에 돌아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주인공에게 할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효진이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 덫을 놓았으니 조금만 더 기달려 달라는 말, 처음 등장할 때 부터 끝날 때까지 한번도 흐트러짐 없이 "일본인"이 모두 저지른 일이라고 꼬질렀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주인공의 손목을 잡으며 가지 말라고 할 때는 요것이 구미호 아녀? 라고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곡성 영화를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주인공과 무명의 대면 장면이다. 둘이 주고 받는 대화속에 답이 있겠구나 싶어 몰입해 볼수록 혼란스러움이 더 가중되었고 심지어 중간에 도사한테 전화가 와서 고년을 믿지말라, 아무말도 믿지 말라고 했을 때, 편집의 짜집기에 의해 시간차로 보여주는 일본인의 아파서 고통짓는 모습과 멀쩡한 여인네를 보고, 지금 효진이에게 뭔 일이 생긴다면 결국 멀쩡한 요년의 작품이라고 단정 짓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효진이네 집에서 벌어진 내막을 보고 나서야...아~...나도 미끼를 제대로 물었구나..당했구나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무명이 불난 집에서 처음 할매가 그랬어~ 할매가 그러는데~라고 했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감독이 의도한 대로 보여주는 장면과 믿음만을 보고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 초반에 무명은 할매라는 존재를 말로 등장시키는데 나는 영화 중후반까지 그 할매의 존재를 굉장히 궁금해 했다. 할매가 누구길래, 할매가 어떤 사람이길래 그럴까 하고 생각했는데 요괴로 변한 일본인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아~..그분이시구나 라는걸 눈치채게 되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닭이 세번 울면 새벽이 열리고 귀신이 물러간다는 걸 안다. 전설의 고향 같은 오래된 작품에서도 꼭 귀신은 닭이 울면 원통하구나~ 하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에 속상해 하며 물러간다. 이건 거의 우리나라 토속신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물론 기독교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난 토속신앙쪽으로 해석) 닭 이야기를 할 때 요년이 귀신이구나 하는 것 까지는 눈치 챘지만 무슨 덫을 어떻게 놓았는지, 그리고 선인지 악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문제는 선과 악의 경계와 구분이다. 나 역시 인간(무당)과 악령(신령)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고 보았지만 설마 또 다른 신령이 존재했을 거라는 건 정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할매와 효진이의 모습에서 다른 잡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저도 요괴에 현혹되어 다 요괴짓으로 보고 말았다. 

감독이 신이 있다면 저 신이 좋은 신인지, 나쁜 신인지 알고 싶었다. 멀리 있는 존재가 점점 가까이 올 때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다라고 한 것처럼 변수, 경우의 수를 더 두었어야 하는데 그걸 놓친 셈이다.

처음에 무명이 말한 할매는 전개 흐름상 단 한분 밖에 나올 수가 없다. 바로 삼신할미, 삼신할매라고도 부르는 토속 신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여성의 신이라고 보며 생명과 안녕을 지켜주는 착한 수호신 중 한명이다. 일반적으로 아기와 많이 결부지어 생각하지만 여성이 아기를 낳기 때문이라 그런 모습이 더 부각되었을 뿐, 아가를 점지해 주는 잉태의 신이 아닌 여성의 수호신이다. 물론 모든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여성의 신, 삼신할매(삼신할미)는 곧 모두의 수호신이 된다. - 새벽마다 물 한사발(정수) 떠 놓고 비나이다~비나이다~ 하는 것이 바로 삼신할미에게 부탁하는 기도다.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수호신 중의 수호신이다.

할매가 알려줘서 수호신들이 등장해 악령인 요괴와 맞서 싸우고 있었음에도 요괴의 힘이 강해 마을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용한 무당이 등장하면서 인간과 합심해 요괴를 처단하려 했으나 무당마저 당하자 마지막에 최후의 덫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부분은 영화를 토대로 내가 알고 무속신앙에 대한 걸로 마무리 짓는다. 각본과 감독이 의도한 것이 어떤 것이 답이고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무속신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범위와 영화의 연결고리를 짜맞춰 본다. (영화의 결말 해석이 아닌 마지막 장면의 신앙 해석이라고 해야..) - 

영화 내용 자체가 서구적 종교 신앙과 동양의 토속 신앙이 복합된 것이라 어떤 관점에서 어떤 복선을 가지고 다루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 보일 수 있다. 나는 기독교/천주교적인 시각이 아닌 토속신앙에 맞춘 해석이다.

요괴의 육신이었던 일본인은 이미 처리가 된 상태이고 (무명에 의한 교통사고) 기존에 황정민에게 완전하지는 않지만 치명타를 입은 상태에서 육신 없이 숨어 있는 상태라 오늘 하루만 버티만 수호신들이 고 녀석을 잡아 족칠 수 있게 되는데 사건들을 보면 모두 일가족이 다 함께 있을 때 피살되었다는 점에서 가족 한 명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요괴가 짓거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경찰인 아버지를 무명이 끝까지 잡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황정민이 처음 곽도원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무명을 보게 되고 피를 쏟으며 고통에 빠지는데 그 때 무명은 짧고 나즈막하게 "가!"라는 단 한마디로 황정민을 내쫒는다. 사실 이 장면이 오히려 착한 무당 황정민이 당하고 무명이 나쁜 악령의 실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알고보면 악령이 씌운 황정민을 수호신인 무명인 내 쫒은 경우였다. 그 뒤로 나온 장면이 중요한데 황정민이 놀라 도망가면서 자신의 사당에 양초불을 켰을 때 불꽃이 사라지면서 굉장히 놀랜다. 도망간 무당을 쫒아 수호신이 찾아 왔다는 뜻이다.

무당은 이후 짐을 싸서 곽도원의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무명이 말한 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명이 가라고 쫒아낸 무당이 황급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무명이 무당을 이용하기 위해 다시 불렀다는 뜻이 된다. 오니가 기생하던 육신이 죽었고 오니는 크게 다쳐 제대로 숨쉬기도 힘들기 때문에 마지막 한방으로 마무리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가 부활하거나 다른 육신을 찾게 되기 전에 처단해야 하는 마지막 찬스다.

역살을 맞아 몸이 뚫린 무당의 몸에 수호신이 들어가 효진 몸과 연결된 일본인에게 살을 다시 날리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면 지난번처럼 방해자가 될 수 있는 아비가 그 곁에 있으면 안되게 된다. (연결된 딸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무당의 살풀이를 막게 된다) 또한 아비가 있으면 요괴는 가족을 몰살하는 방식으로만 행동을 하는지라 아비가 빠져 있어야 요괴가 활동하는 시간을 더 길게 잡아 둘 수 있게 된다.

토속 잡신과 마을 수호신들이 보호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닭이 세번 울어서 토속 잡신과 수호신들이 퇴거하면 그 때는그들이 무당이 살을 날려도 수호신들은 무당의 살풀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수호신들은 다치지 않게 된다. 닭이 세번 울 때까지 무당이 도착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효진의 몸 안에 남아있는 무명만 존재하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장면이지만 무명이 아비의 손목을 잡을 때 분명 귀신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아비를 정확히 "잡고" 있는데 골목길에 있는 무명은 그 몸에서 이미 빠져 나와 효진의 몸 안에 들어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새벽에 딸이 사라진 걸 알고 아비가 찾아 해맨다. 그리고 무명을 만난다. 내 딸 어딨냐는 물음에 집에 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명 뒤에 딸의 머리핀을 본다. 이 점은 무명이 딸을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돌려보냈다는 뜻이다. 무명이 악령이라고 오해할 만한 요소지만 결과를 보면 결국 무명은 딸을 구하기 위해 요괴가 한 것처럼 똑같이 효진이의 몸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시간상 무당이 도착할 때와 비슷하기 때문에 무명이 효진의 몸에 들어가 있으면 무명이 살풀이로 죽임을 당할 때 떨어져 나오면서 효진에게 붙은 요괴도 함께 떨어낼 수 있기 때문에 아비를 못 가게 막은 걸로 보인다. 결국 무명은 무당이 이제는 자신을 잡는다는 걸 알고(무명이 악령으로 오해하고 있으니) 그걸 역으로 이용해 자신을 희생해서 효진이를 구하고 주인공 가족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지만 아비가 집으로 돌아감으로 인해 계획은 수포가 된다. 물론 희생이라고 해도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오니가 당한 것처럼 치명타를 입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살을 제대로 맞으면 동굴속의 오니처럼 되지 않고 영영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지만 말이다.

- 나는 이 영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 받고 분위기를 듣고 난 이후 관람일을 "비오는 날"로 정해 비 오는날 봤다, 영화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듯이(팝콘과 콜라처럼~) 이런 영화는 비 오는날 봐야 맛이 난다. 음습하고 음침 ㅋ

영화에서 주인공이 왜 내 딸이냐? 라고 묻자 딸의 아비가 의심해서라고 한다. 의심이 곧 악이 좋아하는 먹거리고 악을 키우는 근본이기 때문에 의심이 크면 클수록 의심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악이 더 좋아하게 된다. 물론 마을 사람들 사건처럼 평범한 주민으로 나와도 되지만 굳이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나오는 것도 바로 이것을 극대화 하기 위한 점으로 보인다. 경찰은 의심해야 하고 의심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다. 결국 곽도원이 경찰이라는 것 자체가 사건에 개입하고 의심을 크게 갖게 만든 가장 큰 장치다. 

다른 사람이라면 의심을 하다가 멈출 수 있고 말도 안된다고 손사래 칠 수도 있지만 사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의심이 더 커지고 그런 사건을 접할 수 있는 "기회"자체가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 그의 행동에 명분이 생긴다. 황정민이 누구 건드린 적 없냐고 했을 때도 그가 경찰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의 집까지 찾아서 몰래 탐방을 할 이유가 없다. (마을 주민 모두 그러지 않은 것처럼..) 마을 사람 다수가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그의 집은 일본인에게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접하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그의 집에서 그가 기르던 개를 죽인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개를 곽도원의 대문에 매달고 선전포고를 하게 된 셈이다. 영화는 일본인을 의심하는 사람들 가족에게 문제를 만들고 의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치게 만든다. 그게 요괴 짓인 셈이다. 결국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을 본격적으로 의심하면서 그로 인해 딸에게 문제가 생기고 그 와중에 딸의 문제가 일본인과 연관되었다고 확증하는 순간 의심은 폭발하며 일본인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게 된다. 그리고 딸은 더 심각해진다.

어찌 당황하느냐, 어찌 의심하느냐? 나를 보아라 손과 발을 보아라,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사람들이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 유령을 보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보자 예수가 한 말이다. 결국 똑같은 상황이다. 다만 예수는 선이고 영화속의 오니는 악일 뿐이다. 악과 선의 입장만 다를 뿐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선의 예수는 의심을 받고 의심할수록 힘을 잃지만 (사라지지만) 악의 오니는 의심을 받고 의심할수록 힘이 더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무명이 아비에게 아비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 딸의 아비가 의심한 것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의심이 팽배하고 만연할수록 사회도 건강하지 못하고 불신만 남게 된다. 악이 활동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정부를 의심하고 사회를 의심하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들로 점점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수록 사회는 악의 활동무대처럼 불신과 오해만이 자리잡고 있다.

곡성은 철학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철학적인 요소도 분명 있다. 원래 선은 의심할수록 힘이 약해지고 악은 의심할수록 힘이 커진다. 결국 무명과 수호신들이 힘을 잃은 것도 요괴와 동급으로 나쁜 악령으로 취급하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무명은 범인이다. 무명이 귀신이다라고 의심할수록, 무명이 악령이라고 의심할수록 영화의 결말과 우리사회가 똑같아 진다는 것이 어쩌면 감독의 진정한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도 무명은 의심 받을수록 힘을 잃었고 일본인 오니는 힘을 얻었다. 골목길에서 마지막으로 아비가 무명을 믿지 못하고 의심함으로 인해 결국 결말은 모두가 파멸로 끝이 난다. 건강원에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다며 빈 냉장고를 보여주는 장면(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장면) 역시 굉장히 중요한 포커스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보이고 확실히 믿을 수 있는게 아니면 믿지 않는 세상, 빈 냉장고를 보고 허탈해 하는 경찰과 빈 냉장고가 바로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는 건강원 주인의 인식 차이.

사람들은 여전히 무명이 사람이냐, 귀신이냐, 착한 선이냐, 나쁜 악이냐로 헷갈려 하고 의심한다. 어떤 쪽을 선택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영화는 정해진 각본대로 관객들에게 미끼를 주고 따라오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과 귀신, 선과 악을 교차해서 왔다갔다 하게 만든다. 동양적 관점에서 수호신이 되고 서양적 관점에서는 결국 천사가 된다.

결말에 가서야 정리가 되지만 결말을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르게 만든 영화다. 영화에서 일본인이 첫 등장하는 장면(고라니 내장 먹는 모습)과 무명이 등장하는 장면(쭈그리고 앉아서 새침하게 돌 던지는 나약한 모습)이 사실 두 캐릭터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런 것은 사라지고 다른 것만 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그들의 첫 등장 장면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도 영화가 던진 미끼의 함정이다.

실제 일본인으로 일본인 역활을 한 배우,,소름끼치게 연기 정말 잘한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자주 봤으면 좋겠다. 토속신앙 분위기와 영화 스토리가 일본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일본에서도 개봉한다면 반응이 좋을 것 같다. 다만 악의 축이 일본이고 선의 축이 조선 귀신인지라 귀신과 귀신의 대결에서 악과 선 구도가 확실해 일본에서는 호불호가 더 갈릴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독버섯이 원인이고 실제로도 독버섯이 사인의 원인이라고 나오는데 왜 귀신 타령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악령이라는 허구에 휘말려 사람들이 제대로 영화를 못 보았다거나 원인과 결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심과 호기심이 만든 사람 자체가 악령의 실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곡성이라는 제목 자체에도 나오지만 이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허구적인 귀신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귀신 이야기를 다룬 호러 스릴러물이라고 봐야 한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결말 해석과 논란이 화제인데 의도한 것이냐는 질문에 감독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영화 구성을 보면 100% 한쪽 방향이 아니다. 무당의 훈도시와 일본인의 훈도시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일부러 만든 장면이 꽤 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과 결말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의도가 먹힌다면 그 영화는 흥행하게 되어 있다), 명쾌한 결말,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하게 하여 논란을 만드는 것 자체가 관객을 끌어모으는 "미끼"다. 그런데 그게 허술하지 않고 잘 짜여져 있다. - 제목 자체가 사실상 미끼 아니던가...전라도 곡성과 곡소리의 곡성

영화는 의심과 미끼로 스크린을 도배한다. 그리고 그 미끼를 문 사람들은 각본에 따라 이리로 우루루 몰렸다가 다시 저리로 우루루 옮겨 다니며 범인을 찾는다. 잡았다 요넘~ 하고 진범으로 알았지만 또 던진 미끼에 의해 아이쿠~하고 다른쪽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의심이 싹트는 세상에는 미끼에 따라 대중들의 사상과 시선이 오락가락 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요괴와 같은 존재들은 그걸 이용해 악을 장악한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요렇게 소문이 파다하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여~

- 왜 하필 우리 딸이냐? 무엇이 낚일 줄 알고 미끼를 던지겠는가. 

최근 유독 많이 벌어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흉악 범죄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당하는데는 이유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갖는 생각 중 하나다. 왜 하필..나야..왜 내 가족이야....근래 보기 힘들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보기 힘든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 잘 만든 영화다. 딸내미 말처럼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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