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게 반복 학습으로 교육하는 방법 - 제복 인식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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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훈육보육

내 아이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게 반복 학습으로 교육하는 방법 - 제복 인식 훈련

by 깨알석사 2016.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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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따라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엄마랑 아빠가 설명해 주면 된다. 하지만....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많은 엄마들이 내 아이는 "똑똑"해서 엄마 말을 듣고 나면 절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여러 실험을 통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방송에서도 이미 관련 주제를 다루었지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지구상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 보다는 허물없이 지내려고 한다. (원래 그게 동심이다)

오마이베이비에서 서우가 그 실험을 했다. 엄마랑 아빠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이 실험을 보면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실험(?)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는 교육만 제대로 되면 따라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건 이중성이다. 아이가 따라가지 않고 엄마 말을 확실히 새겨 듣는다면 그 아이는 동심이 사라진 아이가 되는 것이고(?) 엄마 말을 따르지 않고 낯선 사람을 따른다면 동심은 그대로지만 결국 범죄에 휘말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된다. 답정너라고 이런 것도 이미 결과가 뻔해서 실험을 하나 안하나 아이는 물론 부모 마음만 상처입기 쉽다.

원론은 애초에 이런 교육 자체가 필요 없게 엄마가 어린 자녀와 항상 함께 있어주면 된다 (그게 쉽냐? 그게 되냐? 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오류다) 학교도 안 다니는 미취학 아동을 혼자서 놀게 하거나 알아서 놀게 하는 게 제정신일까? 먹고 사는 게 바빠도 우선순위라는 건 원래 따로 있는 법이다

나쁜 사람은 늑대라는 인식도 고쳐야 한다. 세상에는 악녀 뺨치는 여우도 많기 때문

수 많은 방송에서 은근 많이 다루고 실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동심리에 관한 영역이면 꼭 나온다

물론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의 고정관념으로 아이들 훈육과 육아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 원론적인 건 놓치면서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실제 대부분의 실험에서 90% 아이들은 교육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거의 낯선 사람을 따라간다. 소수의 아이가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그건 똑똑하고 훈육을 잘 받았다기 보다는 애를 강제적으로 세뇌시켜 대인관계에 대한 정립을 잘못 가르친 결과다. 아이는 성인과 분명 다르다. 뇌의 사고방식도 다르다. 물론 이건 미숙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피아식별이 없다. 적과 아군이라는 개념이 없다. 다 친구다. 그리고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은 동화책이나 만화책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말 그대로 순수한 존재다. 이런 순수한 존재에게 사실 나쁜 상황을 알려준다고 해서 나쁜 경험을 하는것이 결코 좋다고도 말 할 수 없다. 집에 손님이 와도,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서슴없이 지내고 싶어하고 같이 "놀고" 싶어하는게 아이다. 이런 아이의 습성은 원래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렇게 커야 한다. 미취학 아동은 어차피 교육을 해도 뇌가 따라가주지 않아서 해도 사실 크게 의미는 없다. 다만 강하게 키운다면, 강하게 교육하면 효과는 있지만 그건 엄마의 말을 따른다기 보다는 엄마가 호되게 가르치는 모습이 무서워서 따를 뿐이다.

피아식별을 가르치는 건 초딩, 그것도 저학년 때가 가장 좋다. 학교 생활을 하고 친구와 선생님이라는 더 많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유아 시절하고는 확실히 다른 생활 패턴을 보이는데 이 때는 어느정도 엄마, 아빠의 설명 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물론 고학년(4~6학년)이 되면 낯선 사람 안 따라가는 건 자연스럽게 생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이다. 동물도 아기 시절에는 날 먹는 동물인지 같은 동물인지 모른다. 무조건 가까이 하려고 하고 같이 놀려고 한다. 동물도 어느정도 커서 인간의 나이로 초딩 정도 되면 날 잡아 먹는 동물인지 아닌지 스스로 구분해서 무조건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는거다. 

하룻강아지에게 범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지만 알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게 그 하룻강아지다. 인간도 똑같다. 이런 하룻강아지 같은 존재에게 피아식별을 가르쳐봤자 의미가 없다. 대부분 지금까지 나온 실험에서나, 그리고 실제로 지금 대부분의 엄마들이 항상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가르침에도 전혀 효과가 없는 건 그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갓난아기한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이라고 하면서 습성을 너무 달리 본다. 초딩 고학년이 되면 상대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엄마의 친구인지, 아빠의 친구인지 구별한다. 그 이전의 저학년 단계에서 바로 엄마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게 가장 좋다는 말이다. 그 이전의 미취학 아동 7세 이전에는 그 교육 자체가 효과는 있다고 해도 그건 미처 미성숙한 존재, 너무 어린 존재에게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은 무조건 거부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꼴 밖에 안된다. (이런 아이들이 크면 남을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물론 그게 잘난 학자님들이 이게 맞다고 가르치는 영향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험해서, 아이가 혼자 있는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런 낯선이를 경계하는 법을 유치원 유아는 물론 심지어 유치원도 안 다니는 아이들한테까지 교육을 하는데 본질을 엉뚱한데서 찾고 있다.

아이가 왜 혼자 있을까?

아이가 왜 혼자 놀까?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든 부모가 잘못된 것이고 초딩도 아닌 더 어린 아이들은 무조건 엄마와 아빠 품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이다. 예전에 부모님들은 이런 낯선이의 경계 교육을 어릴 때 꼭 했을까? 물론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험해서 이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 비겁한 변명이다. 세상이 험해도 옆에 엄마가 계속 붙어 있으면 그럴 일 없다. 과거에는 엄마가 항상 업어주고 챙겨주고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교육을 따로 하지 않은 것이지 세상이 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이 험해서가 아니라 엄마들이 아이 옆에서 함께 있어주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곁에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낯선이를 경계할 이유가 없다. 왜? 엄마가 옆에 바로 손잡고 있는데 아이가 경계를 하고 피아 구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도 워낙 미숙한 단계이지만 그 시기에는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고 엄마, 아빠만 찾게 되어 있다. 맞벌이 때문에, 시간 약속 때문에,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아이를 혼자 두어야 하거나 놀이터에서 혼자 놀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하겠지만 그건 거지같은 사고방식일 뿐이다.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맞벌이 한다고 하는데 가족을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이 가족하고 헤어져 있고 어린 아이를 직접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맞을까? 조금 덜 먹고 덜 입더라도 엄마가 항상 옆에서 챙겨주는 게 훨씬 낫다. 결국은 엄마와 아빠가 항상 같이 붙어있을 시기에는 어차피 그 교육은 의미도 없고 해도 먹히지 않는다. 물론 한부모 가정이나 정말 상황이 좋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아이를 곁에 둘 수 있는 방안, 비용이 문제라면 누군가에게라도 맡길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게 우선이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하여 혼자 두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해서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타인의 경계인데, 아이에게 책임을 넘기기 보다는 (솔직히 아이한테는 어려운 과제다) 어른인 엄마가 확실한 케어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게 먼저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실험이나 경험, 학습을 통해 아이가 자기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끼게 해서 아이가 위축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낯선이와의 경계 실험에서 따라간 아이는 나중에 다 운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상황이 무서운 것이고 엄마가 화를 내는 게 무서울 뿐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엄마는 항상 아이를 혼낸다 

"너! 엄마가 맨날 이야기했지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근데 왜 따라가니?" 

설령 그걸 아주 부드러운 화법으로 해도 아이는 엄마한테 꾸중과 싫은 잔소리를 듣는다는 건 당연히 안다. 상황을 이해한 게 아니라 엄마 말 자체를 듣지 않았다는 게 아이한테는 오히려 더 크고 그 덕분에(?)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걸, 어린 나이에 쓰잘데기 없는 동심파괴만 일찍 불러 일으킬 뿐이다. 낯선이의 경계를 제대로 배우면 오히려 말 그대로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누구의 말도 따르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라는 것이 된다. 엄마, 아빠가 아니면 아무도 믿지 말라는 건데 이게 청소년만 되도 지가 알아서 구분해 듣지만 어린 아이는 그냥 곧이 곧대로 그냥 다 듣고 따른다.

그래서 엄마가 놀라고 실내 놀이터에 데리고 가거나 놀이시설에 같이 가더라도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아이가 불안해 하고 낯선이가 (시설 관계자나 놀이 선생님) 다가오면 무조건 거리부터 두려고 한다. (막상 그 옆의 다른 아이들은 잘 논다) 효과가 있으면 역효과도 있는 법, 이게 그나마 초딩 저학년이면 이해력이 빠른데 미취학 아동한테 너무 일찍 낯선 경계법을 알려주면 다 경계하기 마련이다. 혼자 원래 잘 놀던 아이가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확실히 안심 시켜도 이런 실물교육에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체험을 한 아이라면 엄마가 없을 때는 다른 곳으로 옮겨 놀고 싶어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타인(놀이 선생님이라도 해도)하고 대화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다. (대화 하면서 이름 알려주고 이런것도 다 혼났던 기억 때문)

그러면 아이는 행동이 뻔하다, 엄마~ 하고 운다. 왜? 엄마를 찾으면서 "엄마~"하고 울면 엄마가 등장한다는 걸 마찬가지로 "체험"과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동심속의 자유분방한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모르는 사람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는 무의식이 새록새록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에게 혼이 난다는 걸 알기에...

예쁜 서우가 정말 똑부러지게 질문을 잘했다. 엄마가 늦게 오면?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드물다) 엄마 말을 일단 새겨 듣고 이해했다는 뜻인데 엄마가 여기서 "엄마가 늦게 와도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돼"라는 말은 사실 조금 틀린 말이다. 이건 엄마랑 약속(놀이터)한 경우가 아니라 길을 잃어버렸을 때, 엄마랑 아빠랑 갑자기 헤어져서 미아가 되었을 때, 놀이동산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해주는 말이다. 엄마랑 약속을 하고 정해진 곳에서 노는데 엄마가 늦게 온다면? 당연히 어쩔 수 없이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게 맞지만 엄마가 늦게 온다는 그 자체가 문제이지 엄마의 상황은 넘어가면서 그 어린 아이한테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면 뒷일은 더 혼란스럽고 더 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끝까지 안 오면 밤새고 버텨야 하나?)

물론 말이야 방구야, 알이 먼저야 닭이 먼저야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인데 엄마가 늦게 오면? 이라는 질문에는 그럴 일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엄마는 항상 정해진 시간에 너한테 갈꺼라는 안심을 주는 게 우선이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하라는데로 약속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엄마는 약속 시간을 넘겨 늦게 온다는 게 두 사람과의 대인관계에서 교육한답시고 하는 게 맞는 논리일까? 결국 늦게까지 기다린 아이도 오랫동안 더 기다리게 만든 엄마도 완전 최악의 경우인데 우리 아이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엄마 스스로도 엄마가 오지 않아서 정해진 시간을 넘기도록 어린 내 아이가 계속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도 스스로 해야 한다. 

엄마가 늦게 온다면, 엄마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면 정말 아이는 끝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게 정답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이라도? 어두워져도? 주변에 나쁜 언니, 오빠들이 있어도? 만약 아이가 "질문"을 한다면 그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게 가장 좋다. 그냥 기다리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만약 엄마에게 문제가 생겨 그런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제복" 입은 사람을 찾으라고 알려주는 게 가장 합리적인 교육 방법이다. (평소에 책이나 그림등으로 경찰, 소방관, 경비원 아저씨처럼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해 교육 시켜주는 게 좋다. 단! 제복과 유사한 범위인 교복은 주의해야 한다. 교복 입은 남녀 학생은 어린 아이가 신뢰하기에는 변수가 많다. 형이나 누나, 언니가 아닌 어른 중에서 책에서 많이 본 제복 입은 사람들을 찾도록 훈련해야 한다.) 

주변에 너와 같은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보이면 가서 경찰 아저씨를 불러달라고 한다거나 삐뽀삐뽀 경찰차를 탄 "제복"입은 사람은 경계하지 말고 엄마, 아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경계하라고 정말 잘 가르치면 애가 울기만 하고 말도 안하고 애를 먹이는데 정말 선의의 사람들, 착한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을 전부 다 경계하게 되버리는 이런 것이 역효과다)

아이 혼자 두고 늦게 올 엄마는 사실 거의 없다. 차라리 무조건 엄마는 늦지 않게 올꺼야라고 하고 만약을 가정해 늦게 오거나 해가 져도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주변 수퍼에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도록 교육한다고 하여 3세~6세 아이들에게 실물 교육을 하도록 권장하지만 이건 사실 역효과가 더 크다. 대체로 대부분의 아이는 따라가기 때문에 엄마가 무덤덤하게 재교육을 하든, 호되게 화를 내면서 다시 재교육을 하든 자기 때문에 엄마가 화를 내고 속상해 한다고 생각해 엄마가 말하는 모든 낯선이를 다 경계하게 된다. 이건 동심이 깨진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일이 안 생기게 해야 하는 게 엄마의 의무고 역할이라면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드는 것도 결국 엄마의 잘못, 엄마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이의 잘못(그 나이에는 그게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둔갑되어 아이만 꾸짖게 된다.

그 어떤 아이라도 그 어떤 훈육을 통해 제대로 배웠어도 99% 아이는 무조건 낯선이를 따르게 되고 결국 이 실험을 통해 혼나게 된다. 동심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걸 성인이나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 수준으로 생각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믿고 가르치는 건 억지다. 그게 안되는 나이인데 그걸 가르치려하니 역효과만 나오고 멀쩡한 아이도 다 혼나게 된다. 

모든 아이는 엄마, 아빠말은 무조건 듣는다. 그래서 실제 낯선이를 경계하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엄마라는 단어다. 엄마가 데리고 오래, 엄마가 나한테 너 데리러 오라고 시켰어~ 등과 같은 엄마나 아빠에게 "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주면 이건 무조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실험 상황 자체가 실제로 아동에게 벌어지는 범죄자의 멘트와 같을 수 밖에 없다. 안 가는 아이가 무장해제 되어 따라가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따라가지 말라고 하면 그 말은 듣지만 엄마나 아빠한테 가자고 하면 따라가는 것이 아이들, 따라간다는 건 결국 같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완전 다르다. 

결국 엄마 아빠가 아닌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건 대부분 배우면 잘 따르나 정작 엄마, 아빠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결국 따라가기 때문에 아저씨 따라 올래, 아줌마 따라 올래는 아이들이 쉽게 거절해도 아빠한테 같이 갈까, 엄마한테 같이갈까 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다. 엄마, 아빠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아이는 엄마, 아빠 단어에 꽂혀 엄마, 아빠가 있는 곳에 가길 원하고 그 욕망은 매우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이런 교육은 쉽게 무너진다.

설령 엄마, 아빠에게 같이가자고 하는 것도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 두번의 튕김이지, 상대(어른)가 마음 먹고 엄마, 아빠 이야기를 반복하면 아이는 결국 그 아저씨, 아줌마 손을 잡고 따르게 되어 있다. 결국 이 상태에서는 모든 아이가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의 대처는 아이가 아닌 부모가 되려 배워야 한다. 아이를 혼자 방치하지 말라고 말이다.

상당히 똑똑한 아이도 계속 거절하다 엄마에게 가자는 말에 바로 무너진다. 이게 정상이다.

우리 아이의 문제, 우리 아이가 엄마, 아빠가 알려준 걸 제대로 답습하지 않은 문제로 보면 절대 안된다.

왜 따라갔어? 엄마, 아빠..보고 싶었다고 ㅠ.ㅠ....울먹이는 서우

서우나 백집사나, 서우 엄마가 잘못한 건 없다. 다만 보시다시피 교육이라는 이름아래 뻔한 결과, 아이는 울먹이고 미안해 하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 서로 서먹해 한다. 

"난 단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구..." 이게 아이의 진심인데 이걸 이용하는 범죄자가 무섭다고 그 상황을 체험하는게 좋은 건 아니다. 그 상황 자체는 엄마와 아빠의 노력으로 분명히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초딩 이전까지) 그리고 미취학 시기에는 그렇게 하는게 맞고...애만 잡는 교육인 셈이다. 그리고 이걸 아동 교육하는 양반들이 이런 방송을 통해 경각심을 준다고 매번 실험을 한다. (애만 잡는다) 아이의 입장과 아이의 시선이 아닌 성인의 시선에서 아이 교육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너는 잘못이 없다. 너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인데 너가 잘못을 했고 넌 큰 실수를 했다고 함정수사를 하는 셈

빙고~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뭐가 어떻게 되고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심각하게 모르는 우리 아이~교육차원이니 이렇게 웃지만 실제라면 웃을 순 없을 거다. 그래서 부모가 어려운거다. 이런 일 자체가 안 생기고 그래서 교육 자체도 지금은 필요 없다고 한다면, 결국 항상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은 꼭 붙어서 챙겨줘야 하니

성인도 깜짝 놀라면 본인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말이 "엄마야"이다. 무섭고 놀라고 두려우면 엄마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줄행랑을 칠 때도 발이 안 보이게 누군가로부터 도망을 갈 때도 우리는 엄마야~하고 도망간다. 그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원더우먼이 엄마인 셈이고 우린 모두 위험할 때는 엄마를 찾기 마련인데 그 엄마를 찾으러 가자는 말에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물며 미숙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숙제는 풀 수 있는 문제다. 이 문제는 아이는 절대 풀 수 없다. 결코 숙제가 아니다. 난제도 아니다. 숙제라고 생각하는게 문제다. 이 교육은 인지력이 있고 판단력과 분별력이 조금 더 있는 8~10세 저학년 아이들한테 하는 게 효과적이지 그 이전에는 의미가 없다는 게 차이다. 그리고 8~10세는 학교라는 사회, 친구네 집에 직접 가서 놀 수도 있는 시기라 그게 더 필요하지만 어차피 유딩들은 엄마가 데리고 다니거나 데려다 줘야 한다는 걸 부모도 알면서 혼자 있는 상황은 이렇게 없는 것도 만들어서 교육한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추가 실험, 이미 경험을 했으니 이제는 낯선이를 경계하고 따르지 않겠다는 믿음이 생기겠지만 과연 그럴까, 바로 이 실험에서의 상황이 (연속 두 번의 실험) 이 실험이 얼마나 쓸모 없고 의미가 없는지 반대로 설명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번의 경험으로 이제는 싫다고 거절을 확실하게 표현한다.

 

서우가 좀전과 달리 잘 놀지도 않고 확고하게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건 바로 직전의 실험에서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실물체험이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아이일 수 밖에 없는 법, 마음만 먹는다면 엄마와 아빠를 활용해 얼마든지 데리고 갈 수 있다. 결국 단기간의 효과이지 이게 성숙된 시점까지 이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엄마한테 전화 왔다는 말에 낯선 여자 손 잡고 따라가게 된다

실험녀 의문의 1패 ㅋㅋㅋ

백집사와 시아 어무이가 정말 차근차근 부드럽게 설명하는데도 서우 모습보면 확실히 뚱~해 있다. 울기 직전이라는 뜻..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전화까지 해서 오라고 했는데,,상황이 뭔가 잘못되었고 엄마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방금 전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또 자기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속생해 한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성인이야 전화가 거짓인지 참인지 알지만 어른 입장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서우가 엄마 전화라고 믿고 따라간 건 어쩔 수 없다. 

유아 범죄예밥 팁이랍시고 판단력을 기르도록 반복 학습하라고 하는데 물론 그럴수록 우리 아이는 함정 수사를 당한 것 마냥 졸지에 죄인이 되어서 이런식이지만 결국 판단력을 배우게 된다. 이게 좋다고 보인다면, 유아 범죄예방을 위해서라면 해도 좋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닥........아이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 가족 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사회성을 길러주어야 할 나이에 사회와 격리시키는 꼴,

이미 서우네 집을 보더라도 서우가 혼자 있을 상황은 거의 제로다. 항상 엄마랑 있고 엄마랑 같이 다닌다. 유치원도 안 다니는 시기라서 엄마 곁에서 떨어질 이유도 없고 그럴 시간도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한테 이런 상황을 만들어 가르쳐 주면 쓸 일도 없을 뿐더러 지금처럼 아이만 엉뚱하게 혼나는 꼴만 된다. 서우네 집, 백집사네 집을 보면 아직 어린 서우 오빠가 있다. 그 정도면 낯선 사람 알아서 경계한다. 서우 오빠처럼 그 시기나 그 전 시기, 유치원 이후 초딩 저학년까지는 이게 효과적이고 그 이후(4학년 이후)는 간단하게 설명만 해도 지들이 알아 듣는다.  

교육이 필요없고, 쓸모 없다는게 아니라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애를 방치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크지 애들이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그걸 성인 입장에서 가르친다는게 과연 합당할까? 재밌게 잘 놀고 엄마, 아빠, 오빠랑 즐겁게 텔레비젼에도 출연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꼭 아동 관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작가와 이런 콩트를 하면서 정보랍시고 상황극을 만든다. 해당 부모는 물론 다른 부모에게도 경각심이 되는 좋은 실험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은 못 한다.

서우 한마디 말도 안하고 그냥 엄마를 껴안는다. 내가 괜히 안쓰럽다. 애한테 이상한 거 시켜서는 괜히 잘 놀고 세상이 행복하다고 믿는 애 기를 죽이고 그려...

이걸 세상이 각박해서 그렇다라고 변명하고 전문가들도 그래서 더욱 학습을 시켜야 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이런 실험을 통해 각박해진다는 생각은 못한다. 고학년의 아이에게는 무조건 최소 한 번 이상은 각인시켜 주고 교육해야 하는 게 맞지만 미취학 아동 수준에게 더욱 강도 높은 반복 학습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낯선이로 각인시켜 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마지막 결말도 다가온 사람을 반갑게 맞은 서우의 잘못일까, 아니면 자상한 아저씨가 잘못한 걸까라고 해서 뉘앙스는 다가온 낯선 아저씨들 때문에 아이가 잘못한 걸로 종지부를 찍는데 하나가 빠졌다. 아이가 혼자 있게 방치한 부모의 잘못일까요?

당연히 아이를 혼자 방치한 부모가 잘못한 것인데도 본질은 항상 이렇다. 그러니 항상 모든 실험을 통해서도 항상 아이들만 주구장창 혼난다. 

"넌 그렇게 설명을 해도 왜 못 알아듣니? 엄마가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잖아!!!" 이런다. 엄마가 미안해 혼자있게 해서~ 엄마가 미안해 누가 와서 같이 데리고 가겠다는 것도 몰랐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이런 엄마 드물다.

결론은 간단하다.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겁다. 동화책만 보더라도 신나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우린 그걸 동심이라고 부른다.

그 동심도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는 낯선이를 경계하는 것 보다는 사람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게 우선이다. 아이들하고, 선생님들하고 놀라고 자리를 마련해줘도 아이들하고 못 어울리는 애들이 많은데 낯선이를 경계해도 구분을 할 줄 모르니 전부 경계하면서 심지어 또래까지 경계한다.

부모는 어린 미취학 아동 자녀에게 혼자 있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게 우선이고 (이런 교육보다 먼저) 아이에게 경찰관, 소방관, 의사, 간호사처럼 타인을 도와주는 "제복"입은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틈틈히 해주고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이 제복 입은 사람들을 찾도록 교육해아 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법) 집 앞에서 보내서 다시 집 앞까지 바래다 주는 유치원과 달리 직접 통학해야 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최소한 저학년이 벗어나기 전까지는 엄마가 등교와 하교시간에 맞춰 데리고 오고 바래다 주어야 하는 게 최우선이다. (학교 교문에서 아이가 들어가는 것을 반드시 확인)

무엇보다 혼자 통학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 반드시 다녀야 하는 경로, 통학로, 지정 통로를 확보해 아이가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항상 다니는 길로 다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좋은 반복 학습이다. 지정 통학로 길목에 있는 주요 상점이나 건물, 관공서 등을 파악해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낯선이의 경계 교육은 낯선이의 경계를 너무 일찍 하지 말고 학교를 입학하면 그 시기에 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는 일찍 하라고 하지만...) 그 이전에는 교육을 안하면 어찌 하나요? 묻지 말자. 엄마가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당위성은 저리 치우고 교육만 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쓰레기 지성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낯선이에 대한 경계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고학년이 되면 낯선이에 대한 경계 교육을 심화적으로 하면 된다. 물론 남아보다는 여아의 경우 조금 더 일찍 해주는 것이 좋지만 어디까지나 혼자 다니거나 (학원 등) 혼자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을 때의 경우지 엄마 손을 잡고 다녀야 할 시기에는 의미가 없다. 저학년 때는 낯선이에 대한 전반적인 경계라면 고학년이 되면 피아식별 요령을 가르쳐서 보다 구체적인 상황들을 알려주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지금 나온 전화 상황처럼, 엄마나 아빠가 전화 한 것처럼 보일 경우, 직접 통화를 해서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아니면 엄마나 아빠가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심부름으로 데리러 왔다는 건 믿지 말라는 식으로 고학년에 맞춰 여러가지 상황을 해석하는 판단력을 길러주고 알려주면 된다. 범죄자들이 의외로 많이 쓰는게 부모와 통화하는 척~ (서우가 2번 연속 실험에서도 무너졌던 이유) 이럴 때는 그냥 듣지말고 바꿔달라는 식으로 해서 엄마 목소리를 직접 확인하라는 식으로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취학 아동에게는 의미가 없다. 동심만 사그라들 뿐이다. 그리고 너무 어리면 엄마 목소리도 잘 구분 못할 때도 있다. 무섭고 낯선이의 경계가 있으면 거기에 정신이 쏠려 그 마저도 쉽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동심은 그대로 지키면서 순수하고 착하게 성장시키고 싶다면 부모가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애초에 방지하는 게 최우선이다. 아이가 머리통 큰 고학년 초딩 시기가 되면 말 한마디만 해도 열 마디를 알아 듣는다. 너무 일찍 이른 시기에 너무 많은 걸 알려주면 아이는 인지하기 힘들다. 아이가 그 시기까지 엄마가 없어서, 부모가 없어서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면 굳이 낯선이의 경계 교육을 이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런 실물체험 학습, 개인적으로 반대다. 애들을 울리면서 교육하는 게 딱히....)

언제 어디서든 5분안에 내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곳에서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더라도 엄마가 벤치에 앉아서 지켜본다거나 하는 것들.. (발코니나 집 안에서 CCTV로 본다는 곳도 많은데 그거 별로~...아동 범죄는 한 순간임) 부득이 생계 때문에 아이가 혼자 있거나 혼자 놀게 된다면 정답은 없지만...그나마 가장 나은 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수 밖에 없다..아이가 어느정도 크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또래 친구가 있으면 같이 놀고 있게 해줄 수 있지만 (그 아이의 부모가 대신 케어해 줄 수도 있으니)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보호자(지인) 곁에서 놀게 하는 것이다.

백집사네 제일 재밌게 보고 있는데 가장 우울했던 편성이다. 세상이 각박하다하여 너무 일찍 선입견관 편견을 가르친 건 아닌지..아쉽다. 동"심"을 버리고 경계"심"을 갖는 걸 원한다면 이런 교육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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