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친일파 김완섭과 오선화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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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통역사

신 친일파 김완섭과 오선화는 누구?

by 깨알석사 201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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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친일파라고 불리우는 김완섭 오선화

신 친일파 오선화 2006년도에 PD수첩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는 여자다. 최근에는 세월호 침몰사건과 관련해서도 뉴스에 기사까지 내며 자기 주장을 한 여자다. 강연에 테러위협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겠다며 있지도 않은 테러 위협을 근거로 위세를 떨치는 오선화

일본의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오선화는 신 친일파다. 학교에서 강의시간에 한국은 태풍이 오지 않는다. 태풍은 일본이 다 막아준다. 한국에 있어 일본은 고마운 존재다라는 식으로 강의를 한다.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끼면 안된다. 한국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라며 한국문화에 대해 한국인이기 때문에 잘 안다고 일본인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대중강의에서는 욘사마를 보러오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 여성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반일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라고 한국 젊은이들은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일본이라서 문제 삼는 한국사람들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90분 강의에 강의료로 300만원 정도를 받는 오선화. 이 여자는 왜 이럴까?

오선화는 엄청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다. 오선화가 낸 책만 해도 그 수가 꽤 많다. 모두 한국을 비하하거나 일제식민지 시대의 한국과 일본에 관한 책들이다. 오선화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원어민 보다 더 뛰어난 필력의 실체, 그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의 대구대학교 출신이라는 오선화는 대구대에서 학생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녀의 출판기록에 있는 프로필에는 한국의 대구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나와있다. 이 여자의 학력은 위조된 것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일본 교수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그것은 일본에서 심각한 범죄다. 놀랍다는 반응을 대부분 보인다.

입국확인을 해보니 오선화가 일본에 온 것은 27세, 늦은 나이에 일본에 온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입국 초기 동거를 했다는 남자를 수소문해 오선화에 대해 들어보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동거남이 오선화를 만난 곳은 한국클럽, 한국클럽에서 일하는 접대부와 손님의 자격으로 만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화류계에 있으면서 썼던 이름이 오선화라고 한다. 뉴태양이라는 술집에서 접대부로 있으면서 썼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 때 일본인인 동거남을 손님과 접대부로 알게 되었고 스폰을 정식으로 제의 받아서 동거를 하게 되었다. 스폰을 받으니 술집을 나갈 일이 없던 오선화에게 뜻밖의 기회가 생겼는데 동거남의 권유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거기서 오선화는 자신이 쓴 글을 토대로 책을 한권 내게 되는데 그것이 히트가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책이 치마바람이라는 제목의 일본의 한국 접대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글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동거남이 한글학교에서 오고간 접대부들과 관련한 여러 가지 잡담등을 자신이 취재한 것처럼 속여서 만든 책으로 동거남은 책 내용의 70%는 자기 세미나에서 농담과 잡담으로 다루었던 내용을 나머지 30%는 자신의 접대부 생활을 토대로 쓴 글이라고 밝혔다. 글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유흥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 그 시절에는 접하기 힘든 혹~할 만한 소재의 한국 접대부 이야기니 히트한게 놀라운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한가지 오선화가 책을 쓴 계기도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르다. 책을 내면 작가로서 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이 되기 때문에 비자 걱정 없이 일본에 머무를수 있다는 말을 주워듣고 책을 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책을 내기 위해 자신의 접대부 생활과 한국 여자들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책부터 내고 보자는 마음에 책을 낸것이 얼떨결에 히트를 친 것이었다.

치마바람의 주 내용은 이렇다. "일본대학에 유학하는 한국여성들"은 호스티스가 되어 프로 호스티스처럼 부자 애인을 만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취업한 한국 여성들의 70%는 술집여성이라는 것으로 시작은 일본에 있는 한국여성들을 다루면서 최종적으로는 한국과 한국문화, 한국여성들의 비하를 핵심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이쯤되면 대부분 예상되는 것이 있는데 대필의혹이다. 사실 의혹이라고 하지만 일명 유령작가, 대필작가들이 비공개 및 방송촬영을 안하는 조건으로 대필 사실을 시인했다. 책이라는 것이 현지인도 내기 힘든게 출판이다. 하물며 일본 생활을 몇 년도 하지 않은 오선화가 책을 낼 정도의 일본어 수준을 가지고 있을리도 없다.

오선화가 책을 출판했을 당시 세미나를 담당했던 일본인들은 그녀의 일본어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대화 자체가 어려웠었다고 전했다. 원고는 재미있는데 문장실력이 안되어 수정하는데만 1년이 넘게 걸렸고 결국에는 출판사 사장이 고스트, 즉 대필작가를 쓰게 된 것이다. 책은 오선화가 냈지만 원고는 동거남의 것이고 책은 대필작가가 써준 것이다. 오선화의 책이 히트친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이후 치맛바람2가 출판되는데 치맛바람을 대필했던 작가는 빠지고 다른 작가로 교체된다. 그 이유는 대필작가 스스로도 이 원고는 도의적으로 자신이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문화를 잘 알고 한국인 친구도 있어서 한국인에 대해서도 잘 아는 대필작가 입장에서 잘못된 내용으로 입맛에 맞게 거짓으로 쓰는것은 1편으로 족하다며 스스로 대필에서 빠진 것이다.

이후 한국 깍아내기로 재미를 본 오선화는 이것을 주제로 삼아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한국인으로 한국을 비하했더니 단물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붙인 것이다.

오선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책 출판이 아닌 매체에 기고나 칼럼, 기사들을 작성해서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역시 모두 대필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 후 오선화의 대필의혹과 상관없이 오선화 이름은 유명세를 펼치며 활동영역을 넓히게 된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오선화 유명세의 핵심은 일본인이 한국을 비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을 비하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한국사람들도 일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동질감을 얻으면서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편견을 가진게 아니라 일본인 주장이 맞다라는, 한국의 일본 식민지배가 당연하다는 것 등의 한국인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게 되는 계기가 되어 오선화를 신 지식인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 있는 일본인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비하하는 것에 한국인들이 동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혹은 일본인이 과거 역사 문제로 사과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면서 언론 활동을 하고 유명세를 치룬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그를 후하게 대접하며 강의 요청을 많이 하게 되는 것과 비슷)

그냥 신경쓰지 말자라고 무시해도 될 오선화를 한국에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이유는 뭘까? 바로 한일감정, 반일감정, 험한류, 반한감정의 중심에 오선화가 있었고 오선화로 인해서 시작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과 한국의 감정싸움에 오선화의 주장이나 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쓴 대필, 또는 엉뚱한 오선화의 주장이 사실인것처럼 꾸며졌고 한국인들도 자신들이 무지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일본인들을 믿게 만들면서 험한류를 만든 바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험한 시작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 PD수첩 같은 곳에서도 추적을 했던 것이다.

수십년간 오선화가 활동하면서 오선화의 활동범위가 접대부에서 한국문화로, 한국문화에서 한국인으로 더 나아가 근대역사와 식민역사, 그리고 그 이전의 역사까지 오선화의 활동무대가 되면서 거짓역사와 거짓정보가 진짜 역사로 탈바꿈하고 진짜 이야기로 와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학식과 능력이 없다는 것은 증명되었지만 그것을 일본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인 오선화, 한국인 교수 오선화, 한국인 역사학자 오선화 이렇게 말하는데 한국은 억지 주장을 하지말라는 일본의 주장이 생겨나는 것이다.

일본으로 간 한국인 술집 접대부가 역사학자로 탄생한 것이다. 접대부의 돈 욕심과 일본 우익세력의 이념사상과 만나 새로운 영웅이 태어났다. 우익세력들과 어울리며 명예와 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더 한국을 비하하고 한국을 비난하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우익세력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기들 주장을 해도 일본내에서조차 힘을 얻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선화가 등장하면서 우익세력에게도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오선화는 당연히 일본 입장에 있었다. 조선 여자를 강제로 끌고 갔다면 조선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냐며 말이 안된다고 한다. 이 반박이 이해되는가?

일본에서는 창씨개명을 조선이 먼저 원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속국인 한국이 중국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있는데 일본인과 평등한 입장이 되면 무시를 당하지 않기 때문에 창씨개명을 요구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그럼 이런 주장은 어디에서 근거를 한 것일까? 이것이 화제가 되어 한국의 일본역사 학자가 그 근거를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했다. 

결국 이 주장을 한 일본 사람 (일본의 유명 정치인)에게 그 근거를 물으니 확실한 근거가 있다며 제시한 자료가, 어이없게도 오선화의 책이었다. 앞서 설명한데로 오선화의 주장이 역사자료로 둔갑하여 오선화가 창씨개명은 한국이 먼저 원했다고 쓴 글이 역사속의 글로 둔갑한 것이다. 이 체계는 우익세력의 주장이 오선화의 주장으로 바뀌고 오선화의 주장이 다시 우익세력의 근거자료로 활용되면서 확대,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돈세탁 과정과 같다. 그 세탁 과정에 한국인 오선화가 있으면서 한국인에 의해 제시되는 한국자료로 둔갑하는 것이다.

오선화는 어떻게 대학교수가 되었을까? 출판으로 재미를 보면서 잡지에서도 활동범위를 넓히자 우익세력들과 어울릴만한 근거가 되었고 우익세력들에 의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대학교 교수에 오선화를 앉힌 것이다. 오선화 자신은 물론 우익에게도 오선화의 교수직은 양쪽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되는 것은 뻔하다. 오선화의 출판 책들을 동경대 교수에게 보여주자 오선화의 경력을 모르는 동경대 교수는 일본인이 쓴 책이라고 잘라 말했고 또 다른 교수는 전문지식이 매우 높은 수준의 글로 일본인 특유의 문장력이 있는 글로 한국인이 쓴 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한국의 교수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으로 이 분야를 다루는 사람들도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고 내용의 수준도 꽤 깊어서 이 분야의 권위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굳이 대필을 또 다시 언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수직을 하기 때문에 강의를 하다보면 그 정체가 탄로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 교수가 정말 책을 낸 오선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선화의 강의는 형편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평이다. 학생을 통해 몰래 촬영한 강의 내용을 보면 일본말 자체도 그렇게 잘 하는편도 아니다. 강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은 3면이 바다인데도 해산물을 절대 먹지 않는다, 조개도 먹지 않는다 등이다. 한국여성 취업자 70%는 술집여성이며 어른 앞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식만 봐도 오선화의 지적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사람이 한국인의 양심고백이라는 타이틀로 일본 우익세력편에 서서 부와 권력, 명예를 얻기 위해 사탕발림을 하고 그것을 역이용해 일본 국민들을 선동하여 한일감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오선화가 1998년에 이미 국적을 상실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한국인 오선화, 일본 우익들이 말하는 한국인 교수 오선화는 일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일본인이 일본인 앞에서 한국을 말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여전히 한국인 오선화라고 떠들어 대는 우익들에게는 큰 한방이 되고 말았다. 우익들은 오선화의 일본 귀화를 믿지 않고 오히려 중상모략, 악선전이라고 하면서 오선화를 깍아내리기 위한 한국인들의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 국적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오선화는 지적수준이 딸려서 자신의 국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정당하다, 창씨개명은 한국이 먼저 원했다, 일본의 선진문화 덕분에 한국이 건설되었다라는 일본인들의 주장은 흔해 빠졌기 때문에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오선화가 일본인이 되었다는 것은 명분과 명패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인으로 새 영웅 친일파 김완섭도 등장하는데 이 사람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도 책을 출판했는데 인기가 꽤 많다. 이 사람에게 어떤 근거로 책을 썼냐고 물으니 책은 볼게 별로 없었다며 인터넷을 뒤져보면 생각보다 좋은 자료가 많아 인터넷 자료를 인용했다고 한다. 일본 웹사이트를 말하는 거냐고 물으니 일본어는 몰라서 한국 사이트를 이용했다라는 물음에 네이버 지식인이 떠오른 건 오버일까?

물론 지금은 김완섭과 오선화가 함께 활동하면서 둘이 대담도 하고 칼럼도 쓰고 같이 우익 옆에 붙어서 일본땅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우리까지 알아야 하나 싶지만 개인이 아니라 그 뒤에 일본의 거대 조직이 함께 있고 이들을 앞잡이 삼아 역사왜곡과 거짓주장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한다.

참고로 오선화의 행적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절대 오지 못하는 스티브 유와 마찬가지로 절대 입국하지 못하는 입국금지자로 지정되어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물론 입국금지에 대해서는 무척 억울해한다. 미개한 조선에게 역공격을 당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하다. 그의 가족은 아직도 한국에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입국 금지 이전에는 한국 가족을 자주 찾았지만 지금은 불가능 (돈도 꽤 벌었으니 가족을 일본으로 놀러오게 하면 그만이지만, 한국 땅 자체를 죽어도 밟지 못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

오선화는 여전히 지금도 한국의 문제에 대해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으로 말하며 사기를 벌이고 있다. 검색어에 오선화를 치면 최근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세월호 관련해서도 나섰다) 본인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오선화에게 왜 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언젠가는 알지도 모르겠다. 험한류와 한일감정, 두 국가의 싸움에 오선화가 큰 획을 그은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 사죄를 한다해도 이미 번진 험한류와 한일감정의 씨앗은 되돌릴 수 없다. 화해와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를 판에 자신이 편하게 먹고 지내기 위해 한일 양국과 두 나라 국민을 이용해 수백년이 지나도 사라지기 힘든 흉터를 계속 양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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