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마저 속이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잔인한 복수극 - 녹터널 애니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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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관객마저 속이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잔인한 복수극 - 녹터널 애니멀스

by 깨알석사 2017.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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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관계에서 끝이 좋지 못한 경우 한번은 생각해 보는 것, 그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은 사랑의 감정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런 애정의 복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된다. 옛 연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다른 가족과 결혼을 한다거나 나중에 다시 우연히 만나 재결합을 하게 상황을 만들어 놓고 나를 엄청 좋아하게 만든 다음에 끝에 가서는 매몰차게 대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고 결국 파멸의 맛을 보게 만든다.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이라고 불리우는 전 아내의 별명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았고 이제는 성공한 그녀에게 전 남편의 미완성 소설 한 편이 전해진다. 정식 출간을 앞두고 평가를 받고 싶다며 전 아내에게 감수를 부탁한 것이다.

모든 걸 이젠 가졌지만 일상이 무료해지고 인생의 즐거움이 없던 그녀에게 이 소설은 큰 파장을 일으킨다.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무의미해졌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다. 그런 그녀는 전 남편이 보내 준 소설을 보면서 소설 속 이야기에 빠지게 되고 그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 모습에서 전 남편의 향수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따지고 보면 이런 스타일(!)의 복수극은 의외로 많다. 표면적으로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지만 노래나 영화, 소설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사랑하는 옛 연인에 대한 추억을 담긴 작품을 내놓기도 하지만 옛 연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작품을 만들 때도 있다. 인기를 얻어 성공한 노래, 영화, 소설은 곧 그 가수나, 작가, 감독이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는 의미고 그 작품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옛 연인이 알았다면 그 사람이 날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그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옛 추억에 휘말려 현실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의 행복이 깨지기도 한다.

처절하게 사랑했지만 처참하게 자신을 버리고 간 옛 연인에게 그 옛 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어 읽게 만든다면 작품 속 주인공인 그 상대는 여러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대놓고 드러나지 않고 교묘하게 작품 속 하나의 이야기로 잘 포장되고 위장되어 있다면 그 경계를 넘나드는 추억과 기억은 순식간에 고통이 되버린다.

자신을 매몰차게 버린 연인이 있고 그 사람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다면 한번은 멋진 복수를 꿈꾸게 된다. 멋지게 성공해서 그 사람 앞에 등장한다거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유혹을 했다가 똑같이 처절하게 버림 받게 하거나 하는 식은 헤어진 연인들이 한번은 생각해 보는 복수의 방법이다.

못생기거나 뚱뚱하거나 하는 식의 외모로 인해 버림을 받았다면 외모를 바꿔 복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돈이 없어 경제력 문제로 버림 받았다면 아주 큰 부자가 되어서 성공한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그 사람의 반전 외모나 성공한 삶이 오로지 복수를 위해 만들어졌거나 헤어진 사람의 절대적인 영향으로 바뀐 케이스라면 상대방은 반드시 미끼를 물게 되고 복수의 끝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영화는 현실과 과거, 그리고 소설 속의 이야기로 나뉘어지면서 서로 다른 주제로 내용을 다루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다. 환타지 영화에서 옷장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의 환타지 세계가 벌어지고 그 세계의 탐험을 끝내고 다시 옷장에서 나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일상 생활로 돌아오는 것처럼 영화는 세 가지 세계를 넘나든다. 

특히 소설 속 이야기는 가상의 허구지만 누가 읽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 달라서 제3자가 읽으면 평범한 가족 이야기의 수난이지만 주인공으로 이입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한 동일감을 주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은 클 수 밖에 없다. 마치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라는 감정이 생기면 생길수록 그 작품속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고스란히 전해질 수 밖에 없다.

감독은 꽤 많은 장면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여러가지 힌트를 섞어 놓았다. 미술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평범하거나 혹은 대범한 미술작품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복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대부분 보여주는 주변의 액자 속 예술 작품은 처절한 복수, 고통, 죽음 등이 깔려 있다. 심지어 리벤지 (REVENGE)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 등장하는 장면은 교묘하면서도 잘 위장된 영화 속 장치다.

그녀는 이 [REVENGE] 라는 작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직원이 알려주고 나서야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녀의 단순한 건망증, 업무 스트레스, 기억에도 없는 단순한 영문조합의 미술작품이 고가의 작품이 될 수 있다라는 그녀의 성공한 뒷배경의 허술함에 대한 것도 그려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이 등장하는 장면 하나로도 사실 많은 걸 함축하고 있어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이기도 하다.

복수/보복의 뜻을 가진 리벤지 뜻 자체도 큰 역할을 하지만 이걸 기억 못한다는게 핵심이다. 흔히 주위에서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해도 맞은 사람은 확실히 기억을 하고 돈을 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해도 돈을 빌려준 사람은 확실히 기억하는 것처럼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두고도 완전 다른 입장이 된다. 이런 말이 여전히 통용될 정도로 우린 이런 상황이 매우 잦다.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헤어질 때 고통을 준 쪽은 아무런 고통도 없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을 받고 헤어진 쪽은 영원히 그 고통과 잘못을 잊지 못한다. 이 리벤지라는 작품이 등장하는 장면 하나라만으로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기억하는 것처럼 기억도 못할 정도로 쉽게 내뱉고 쉽게 결정하고 쉽게 판단한 것들이 결국 상대방에게 큰 아픔이 될 수 있다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직원 업무회의에서도 마찬가지, 하루만에 바뀌고 쉽게 판단한 것들이 직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결국 여주인공이 전 남편에게 꽤 많은 마음의 상처를 줬다는 걸 암시한다.

전 남편이 보낸 소설, 아내의 별명이기도 했던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가 소설의 제목이다. 제3자라면 몰라도 전 아내라면 자신의 별명이었고 그건 전 남편이 부르던 별명이라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이런게 미묘한 복수다, (오로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표현들, 이야기들) 영화는 소설 속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솔직히 좀 놀랐다. 소설 속 이야기의 가족 장면은 임팩트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솔찬히 쫄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인기척은 아예 느낄 수도 없는 외진 곳에서 누가봐도 범죄자 같은 사람들이 차를 둘러싸고 겁을 준다. 내가 혼자라면 무시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할텐데 (혼자이니 도망가는 것도 쉽다) 아내와 딸이 있다면 상황이 완전 다르다. 아내와 딸이 모두 젊고 건달들이 아내와 딸을 노린다면 영화 테이큰의 아빠가 아니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해결 포인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소설 속 가족과 남편의 상황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면서 난감한 입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말 위기감이 절실하게 공포로 다가왔다. 경찰차가 등장했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등 무언가 약간 허술한 면이 있는 것 같고 허망하게 아내와 딸이 그들에게 납치 당하는 걸 무방비로 당하면서 그들이 시키는대로 차를 몰고 간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이런게 더 쫄낏하고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건달 한명과 단 둘이 차를 몰고 갈때도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제압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설은 그게 생각대로 쉽지 않고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게 바로 현실과 마찬가지로 두 연인 사이에서 벌어진 생각대로, 마음 먹은대로 부부생활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하다. 

소설 속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에 끌렸고 계속 소설 속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었다. 나 역시 여주인공처럼 소설 이야기에 매료된 상태다. 너무 허망하고 때론 조잡해 보이는 이 소설 속 설정이 생각보다 호기심을 많이 자극하고 있다. 설마하는 것들이 실제로 벌이지고 아내와 딸이 겁탑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자 내 머리속까지 혼란스러웠다.

너무 허탈해서 아빠로 등장하는 인물이 미쳤거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상상속의 이야기를 지어내 이야기하는 걸로 생각이 들 정도로 사건은 너무 쉽게 일어났고 결과는 너무 비참했다. 어떻게 손 한번 제대로 힘 써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허무하게 당할 수만 있을까 하는 허탈감은 제3자인 나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소설은 보안관의 힘을 얻어 범인들을 빠르게 잡아낸다. 그렇게 사건은 쉽게 해결되는 것 같다. 그러나 소설 속 이야기의 범인들은 내가 사건 자체에 의문을 갖은 것처럼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단 한번도 범인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범인들 모두 강하게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있다. 이 정도면 오히려 아빠가 더 의심스러울 정도. 현장에서 범행을 당한 피해자 아빠의 목격만 있을 뿐 소설에서도 확실한 증거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정황만 있고 심증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전 남편이 보내 준 소설 속 이야기와 현실의 여주인공 이야기가 교차된다. 그리고 소설 속 남편이 이 소설을 쓴 전 남편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감정이 무너진다. 그에게 동정심과 애틋함이 소설 속 주인공과 이입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소설 밖 과거의 현실 속 아내는 남편의 소설에 대해 비판이 아닌 매우 혹독한 비난을 한다. 아내의 독설에 기가 죽은 그는 소설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서로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고 조촐한 가정을 꾸렸지만 아내는 욕심이 많다.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기 성공에 집착하며 이기주의적으로 나온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서 남편은 희망을 잃어가게 되고 용기를 잃는다. 그 와중에 자신의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지만 아내가 캐리어우먼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마음대로 낙태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

소설 속 스토리와 설정은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소설에 감정이입이 될수록 여주인공은 무척 괴롭다. 소설 속 남편은 아내와 딸을 동시에 잃어버린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체로 딸과 아내를 뺏어간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전 남편의 입장에서 소설 속 건달은 바로 지금의 전 아내다. 행복한 가정과 아이를 뺏어간 불한당 같은 인물로 그려낸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소설 속 아내와 딸이 전 아내이기도 하지만 이차원적으로 접근하면 그들을 뺏어간 나쁜 놈들도 전 아내와 같은 사람들이다. 소설 속 남편을 제외하고 주요 인물은 전부 전 아내의 감정들인 셈이다.

결국 소설 속 남편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것은 전 아내를 떠나버린 것과 동일하며 한 편으로는 그걸 잃게 만든 건달도 아내가 저지른 만행과 같다고 보기 때문에 범인들에게 복수하는 건 곧 아내에게 복수하는 것과 같게 그려낸다. 소설은 그렇게 처참하게 복수혈전을 그린다.

영화 후반에 가서야 소설도 후반에 다다른다. 범인이 끝까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할 때도 난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끝에 가서 아내와 딸을 겁탈하고 죽인것을 자백하자 모든 것이 사실이고 모든 것이 진짜였다는 걸 알았다.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지만 결국 그는 범인이 맞았다.

소설 속 이야기와 영화 속 현실 이야기가 교차되어 맞물리면서 고통스러움은 배가 된다. 소설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랬는지 몰라도 전 남편이 가졌을 고통과 외로움, 힘겨움이 흠뻑 느껴진다.

소설과 현실의 두 이야기에서 유독 연결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등장한다. 아내와 딸을 잃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남편을 돕는 경찰관이다. 그는 꽤 헌신적이고 맹목적이다. 최선을 다해 범인을 잡고 남편을 돕는다. 확실한 물증이 없어 결국 그들에게 적법한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자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처단하자는 의견을 내기까지 한다.

확실한 조력자이고 조언자이고 힘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시한부 인생이다. 어차피 두려울 게 없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 연관도 없는 남편에게 모든 역량과 남은 인생을 바친다는 건 어딘가 맞지 않다. 소설이라 그런 설정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마저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가정할 경우...

소설을 쓴 전 남편에게는 전 아내처럼 새로 만난 아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소설처럼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그에게 많은 조언과 힘을 주는 조력자일 확률이 높다. 그가 멋진 소설을 쓰게 만든 뒤에서 힘이 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화와 영화 속 소설 이야기만 놓고 보면 경찰관은 확실히 현실에서 전 남편에게 어떤 희망이 되어준 새로운 사람일 수 있다.

고통을 주고 삶을 파괴한 사람들에 대한 상대적인 캐릭터로 자신에게 희망과 삶의 재미를 준 사람을 배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그 사람은 소설 속 이야기처럼 시한부 인생일 수 있다. 충분히 그런 설정이 가능하다.

영화는 다음영화 기준 일반인 7점, 전문가 6점대로 후기 내용 자체는 좋지만 평점 자체는 생각보다 높은 편이 아니다. 후기와 점수가 서로 딱 맞물려 평가되는 일이 드물어 아쉽지만 나는 10점 만점에 9점, 수우미양가에서 "수"로 고민할 것도 없이 좋은 영화라고 평가를 하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복잡하지 않고 감정의 미묘한 싸움과 흔들림을 과감하게 구경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 속 녹터널 애니멀스라고 지어진 소설 이야기는 의외로 나에게도 꽤 매혹적인 소설로 다가왔다.

애초에 그 소설이 진짜 괜찮은 내용으로 짜여져 있지 않았다면 영화 속 여주인공도 소설에 빠져들 이유도 없고 전 남편의 아내에 대한 복수도 불가능했다. 결국 영화 자체가 성공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려면 그 소설 자체가 매혹적이고 유혹적이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 행복할 수 밖에 없고 행복만이 항상 존재할 것 같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세상살이가 다 똑같다. 모든 걸 다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재벌가문이라고 해서 금수저나 초특급 연예인이라고 해서 절대 행복은 없다. 상대적인 것이고 언제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딸은 자기 생활에 바쁘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외도를 즐기며 집을 자주 비운다. 여주인공은 소설 속 이야기에 빠지면서 과거 옛사랑과 계속 살았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수 백배는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게 점점 커지면서 옛사랑에 대한 추억은 점점 애틋해지고 다시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은 굉장히 특별하다. 제목은 전 남편이 자신을 부르던 별명이었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전 남편과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각색했다는 걸 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지금까지도 그 전 남편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렇게 멋진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보이지 않은 흥분감도 생긴다.

어쩌면 소설의 내용은 여주에게 중요치 않다고 볼 수 있다.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곁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는 딸과 현 남편보다는 십여년 이상 아직도 자신을 보고 싶어하고 기억하는 전 남편이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전 남편을 만나러 가는 날, 옷매무새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무 의미 없는 일상적인 의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브라 패션에도 여러가지 의미 해석이 생긴다. 그녀의 마음가짐과 감정의 상태를 간단하게 표현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전 남편과 만나는 마지막 장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상상조차 못했다.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끝까지 마음을 놓고 무방비로 보면 안된다는 걸 말한다. 

뭐지..뭐지...뭐지...왜지...왜지....왜?......마지막 장면에서 대사없이 이루어진 오랜 장면에서 내 머리속에 생긴 단어다. 그리고 완전 영화가 끝났다는 걸 알고서야 왔따빡!을 외치며 마음을 내려놓은 나 자신에게 한탄을 한다.

역시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하고 맞은 사람만 기억한다는 사실, 내가 감정이입을 충분히 했어도 전 남편의 상처 깊이를 미처 다 보지 못했다는 사실, 진정한 복수의 끝은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물 밖으로 나오게 해서 팬 위에 올려져 굽기 직전이 되야 피할 수 없는 보복의 끝이라는 걸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뒷통수 제대로 후려치는 장면이 더 인상 깊었고 소설의 진짜 결말까지 완벽하게 계획한 전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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