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일본에서 다루었던 세월호 특집 방송과 우리가 모르던 뒷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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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수사반장

2014년 일본에서 다루었던 세월호 특집 방송과 우리가 모르던 뒷 이야기 1

by 깨알석사 2016.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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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년 세월호 침몰 당시 일본에서도 세월호 관련 특집 방송을 편성했다.

후지TV로 기억하는데 (정확치 않음...ㅠ.ㅠ) 당시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월호 생존자들과 인터뷰, 사건의 재구성, 침몰 원인과 여러가지 문제점을 파헤쳐 보는 방송이었다.

파란색 사람 모형은 단원고 학생들이 객실별로 모여있던 상황을 표시, 325명이 탑승했다. 나중에 빨간색으로 보이는 건 학생 중 사망자를 표시한 수 245명이다. 5명은 실종

교실 전체에 책상마다 꽃이 올려져 있는데 이 교실의 반 학생이 전부 사망했기 때문이라는 말에 일본 패널들 표정이 굳는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던 단원고 학생 일부가 일본TV와 전격 인터뷰, 당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

학생들이 일본TV와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는 진실 규명, 왜 배가 침몰했고 왜 친구들이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는 이유인데...이게 한국에서는 정확하게 다뤄지지 않다보니 제3자인 일본 미디어 인터뷰에 응한 걸로 보인다.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미디어는 아무래도 겉으로는 자유언론이라고 해도 눈치를 안 본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나라도 마찬가지. 내부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심스럽기 때문. 

결국 제3자가 이야기를 하면 객관적으로 더 잘 볼수 있다. 일본 원전사태에도 일본 미디어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우리가 더 자세히 다룬 것처럼...정치적, 국가적 문제가 얽히면 제3자가 다룰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세월호 관련 법정에서 단원고 학생이 증인으로 출석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일부는 선원들이 처벌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것 보다는 진실 규명, 일본 방송 인터뷰에 나온 것처럼 왜 친구들이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의견을 내비친 적이 있다)

일본 방송은 275장의 실제 사고 사진과 72명의 증인을 인터뷰, 그리고 단원고 학생 일부와 직접 인터뷰를 하여 재구성한 방송이다. 2년전 방송인데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꽤 많다.

실제 학생들이 세월호에 탑승하던 당시의 모습

하늘색이 뿌옇게 보이는데 안개가 심하다는 걸 사진이 보여주고 있다. 안개는 인천항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 사고 현장과는 무관하지만 이 안개가 사실은 사고의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개로 인해 출항이 금지되었기 때문 (출항예정 시간을 넘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출항시간을 넘겨 출발했기 때문에 나중에 항해사 교대시간도 어긋나게 되고 원래 사고 해역을 지날 때 항해사와 다음 시간 항해사의 교대 시간도 어긋나게 된다. 출항 시관과 상관없이 근무자 교대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출항이 늦어진 관계로 3등 항해사가 그 사고해역을 담당하게 된 이유다. (3등 항해사의 실수도 사고의 원인이 됨), 그리고 이 안개가 의미하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출항이 안되는 상황에서 출항이 되었다는 건, 관계기관과 여객선과의 유착, "예정"대로라면 출항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면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 당시 인천항에서는 모든 배의 출항이 금지되었는데 단 1척의 배만 출항이 허가 되었다. 그게 세월호다. 그래서 세월호와 관련, 해수부와 항만관계자를 족쳐야 한다는 여론이 생긴 이유다 (나중에 전부 무죄판결됨)

우리가 익히 봐왔던 구조 장면. 구조 장면이라는게 실제 구조한게 별로 없어서(?) 항상 보던 장면이 그대로다. 그런데 이번 일본방송을 보면서 이 구조 장면 그 현장에 또 다른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었다. 눈물이 절로 난다..ㅠ.ㅠ

방송은 한국인 또는 재일교포(추정)로 보이는 사람들이 재연 배우로 등장해 사실감을 높였다. 모두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장면을 연출한다. 방송에서는 일본 성우의 더빙과 함께 배우의 실제 한국어와 일본어 더빙이 동시에 나온다. 이 방송은 단원고 학생, 그 중에서 생존한 학생들의 사실적 인터뷰에 근거하여 드라마 형식을 빌어 재구성 했는데 남학생과 여학생 각각의 생존자 입장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크게는 세월호 전반에 대한 이야기, 두번째는 남학생 스토리, 세번째는 여학생 스토리

방송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게 드라마처럼 구성되었지만 실제 이야기라는게 안타깝다. 인터뷰를 한 학생, 인터뷰를 토대로 만든 재연 상황, 재구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명'으로 나온다. 다만 의인이거나 용감한 행동을 보인 일부는 실명과 실제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 수학여행 때 돈 많이 가져갈거야~

왜?

제주도는 초컬렛이 유명하잖아. 많이 사야지

실제 당시 학생들의 수학여행 당시 모습,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학생은 방송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하나이기도 하고 부모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부분은 모두 실제 사진,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재연된 영상이다)

재연 영상에서 맨 앞의 세 여학생이 이야기 주인공, 가운데 안경 쓴 아이가 위에 있던 실제 사진에서 모자이크 처리 안된 학생 역활이다. 우측은 "반장" 좌측은 인터뷰 주인공이다. 세명이 아닌 왼쪽만 인터뷰를 한 이유는 왼쪽 이야기 속 주인공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했기 때문...(생존한 이 친구의 증언에 의해 반장으로 나온 친구의 숨겨진 이야기가 소개된다)

영상 속 16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사고가 생기기 16시간 전 ........

인천항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을 대기 했다는 학생들, 이유는 안개 때문이다. 배가 출항을 할지 안할지 확정이 안되어서 무작정 대기하던 상황,  당시 인천항의 가시거리는 800m로 1km 거리 이상의 물체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월호의 출항은 밤 11시가 되고 다시 그 시간대의 날씨에 따라 판단해 출항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송이 나온다. 원래 학생들이 태우고 가야 하는 세월호의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이미 예정시간을 넘겨 기다리던 상황에서 11시 까지 더 기다려야 하다보니 선생님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단원고 교사들은 출항 문제로 회의를 하게 되고 이미 저녁식사도 놓치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학생들 입장을 고려해 버스에 다시 태워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지만...굳이 상황을 설명한다면 선생님들의 대화는 이렇다

11시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건 무리다. 학생들 저녁도 못 먹고 마냥 밤 11시까지 기다리는 건 어렵다. 11시까지 기다린다고 해도 출발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때마저 출발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심야에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냥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수학여행 일정을 짜는게 좋겠다

선생님들의 긴급회의가 있고나서....어찌된 일인지..세월호 선사는 학생들을 배 안에 탑승시키고 저녁식사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배에 없는것과 배에 있는 건 큰 차이겠지, 배 안에 사람 400명을 채운 다음에 출항 허가를 하도록 압박을 가한 경우로 보인다. 세월호 승객의 대부분은 단원고 학생, 300명 단위의 단체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꼼수에 잘못된 운명의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배에 오르게 된 시간은 오후 7시 26분, 예정대로라면 이미 1시간 전에 출발을 했어야 하는 시간이다. 1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마나를 고민하던 순간, 세월호는 갑자기 학생들을 태우기 시작한다.

당시 함께 탑승한 부부는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 인터뷰에도 승선객 400명 중 300여명을 차지하는 학생을 놓치지 않으려고 세월호 선사가 무리하게 탑승시켰는데 출항이 어려운 악조건 날씨 속에서도 학생들을 태우려 했다며 꼬집었다.

부부는 갑판에서 세월호 화물칸쪽을 보게 되었는데 출항이 확실치 않던 상황에서 내려져 있던 화물칸 출입구가 이미 올라와 있었고 반만 닫힌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며, 애초에 승객과 화물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 CCTV 자료에도 세월호는 화물칸 다리를 올린 상태, 날씨와 상관없이 출항 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승객들(특히 단원고 학생들)에게 저녁을 제공한 것도 당연히 그런 목적이 크다. (공짜로 줄 일이 없지 않은가..)

세월호는 방송을 통해 9시에 출항한다고 승객들에게 알린다. 출항 허가가 내려졌다는 말, 수학여행이 시작부터 꼬여서 분위기가 다운된 학생들은 이 방송 하나로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우리 수학여행 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천항의 모든 배는 출항 금지 상태지만 단 1척의 배, 세월호는 출항 허가가 내려진다. 사고해역의 사고와 상관없이 안전사고 개념에서 처음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역시 세월호가 당시 무리하게 출항한 이유와 그 뒷배경은 유착관계가 있었음이 나중에 보도된다. 뇌물, 서류 조작...이것도 모르고 출항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했다니....원통할 뿐이다. 

세월호 선원들 구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대규모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원들 치고는 사고 당시 구성원들 조합이 형편없는데 사고가 난 이후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당나라 군대 조합의 선원 구성이 한 몫을 했다

69세 선장, 휴가를 간 원래 세월호 선장을 대신해 땜빵(대타)으로 배에 탑승했다. 물론 하루살이 선장이 있었다고 해도 다른 선원들, 부선장이나 다른 항해사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큰 문제는 안된다. 일본 방송에서는 선장 옆에 있는 부선장을 소개하면서 입사 1일차, 어제 입사해서 오늘 첫 출근한 부선장으로 소개한다. 휴가간 선장을 대신해 임시 대타로 온 선장과 입사 1일차 부선장이 이 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고 이런 선원의 조합도 사고의 원인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일본 방송이 조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라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임시 땜방이라고 나온 선장은 원래 이 배의 첫 선장이었고 그 때 1등 항해사(부선장)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 선장으로 승진, 이 사람은 정년이 되어 퇴사했다가 계약직 신분의 선장으로 선장이 자리를 비울 때 마다 임시로 선장직을 맡던 사람이다. 임시직이라고 해서 같은 임시직은 아니다.

또한 부선장, 출항 바로 전날 입사해 이제 첫 출근한 걸로 나오는 부선장은 1등 항해사로 견습이다. (그리고 세월호 관련 선원들 판결을 보면 알겠지만 부선장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사람은 없다, 특별히 계통에 없다면 통상 1등 항해사가 부선장 지위를 갖는다) 견습이라는 건 다른 1등 항해사가 또 있다는 말, 실제 세월호에서는 1등 항해사가 2명이었고 그 중 한명이 바로 입사 1일차 견습인 이 사람이다 (일본 자료에서 부선장으로 소개) 물론 1등 항해사로 근무를 하기 때문에 부선장의 지위를 갖는다고 할 수도 있는데 화면처럼 두 사람만이 핵심 선장급들이 아니라 그 옆에 또 다른 1등 항해사가 나왔어야 한다.

임시로 땜빵 근무를 하게 된 선장 (배와 선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처럼 설명 - 하지만 원래 이 배가 첫 출항부터 근무한 선장 출신) 휴가를 간 원래의 선장 (임시로 근무하게 된 선장이 이 배에서 선장직을 하고 있을 때 데리고 있던 1등 항해사) 입사 1일차로 소개된 부선장 (1등 항해사로 견습 신분임, 경력이 많은 부선장급 1등 항해사는 따로 있다) 일본 방송화면에는 소개되지 않은 1등 항해사 (실질적 부선장, 1일차 신삥 1등 항해사만 있던 건 아님. 실제 선장 다음 높은 형량을 받음)

우리나라에서는 입사 1일차 부선장(1등 항해사)으로 나오는 인물(신아무개)이 국정원 블랙요원이라는 말이 많았고 그의 신상이 유일하게 공개되지 않아 많은 의문점을 가진 바 있다. 선원 중에서 가장 적은 형량(1년6개월/다른 1등 항해사는 징역 12년)을 받았으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형기를 다 마쳐 교도소에 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까지 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선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2심 형량을 그대로 확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선원들은 감옥에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소된 선원, 형량이 확정되어 수감된 선원 중 이 사람과 조기장(선박안전담당)은 작년(2015)에 이미 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 했다. 

형량이 가장 적은 이유는 입사 1일차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물론 입사1일차라고 해도 1등 항해사라는 신분에서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건 의미가 없다. 용서 받기 힘든 큰 잘못은 맞다)

선장이 직접 확인하고 작성해야 하는 적재상태 확인 서류, 3등 항해사가 대신 하고 있다 (무조건 전부 양호)

담장 선원이 과대적재라고 괜찮은 거냐고 묻지만 3등 항해사는 선장이 괜찮다고 했다면서 자리를 뜬다. 일본 방송에서는 이 3등 항해사가 꽤 자주 등장한다. 한국쪽과 달리 일본에서는 3등 항해사의 실수도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은 섬나라, 해양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좀 깐깐하게 보는 구석이 확실히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3등 항해사의 실수도 크다, 조타지휘를 하면서 맹골수도는 한번도 직접 지휘한 적이 없는 항해사였고 배를 변침하도록 조타를 한 장본인도 3등 항해사다.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 카톡으로 본인 변명거리를 만들었다는 장면이 일본 방송에도 나오는데 그 만큼 선장 만큼 중요한 인물로 보는 게 일본의 반응...(물론 우리나라 사람도 세월호 모든 선원중에서 선장 만큼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선원 신상도 바로 이 사람이다) 

일본 방송사가 입수한 세월호 안전점검보고서, 서명란에 선장 이름이 보인다.

사고 이후 조사 결과 화물 적재량은 적재용량의 허용치 3배를 초과한 상태라는 게 밝혀진다. 

모두,,,양호,,,정상,,,,

이익을 우선시 해서 화물을 초과 선적했는데 세월호는 이 무리수를 속이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 이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화물이 많아지고 배가 무거워지면 배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이 때 바로 평형수 배출, 배의 바닥에 저장되어 있는 평형수를 빼면 그 만큼 가벼워져서 배가 수면 위로 올라간다. 눈속임은 가능하지만 그 만큼 평형 유지가 어려워 조금만 움직임에도 배가 쉽게 좌우로 쏠릴 수 있다. 무게 중심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평형수 배출!! 배의 평형을 잡는 추와 같은 평형수를 바다에 버리고 만다. 배의 과적 무게를 속이기 위해서다.

인천 - 제주 여객선에서 항상 보여주는 해상 불꽃쇼. 당시 학생들도 이 불꽃쇼를 보기 위해 갑판 위에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 학생이 촬영한 실제 불꽃 영상 중 캡쳐 이미지 (방송에는 영상으로 나옴) 불꽃이 예쁘지 않고 허옇게 보인다. 안개가 꽤 심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안개는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이 안개로 인해 출항이 늦어졌고 (출항하면 안되는 상황) 예정시간을 넘기고 강제로 출항하면서 항해사의 근무 교대 시간과 사고 해역, 맹골수도 지휘자의 근무 시간이 달라져 버린다. 맹골수도를 지날 때는 원래 경험이 많은 항해사가 담당할 시간이었지만 출항이 늦어져 맹골수도 도착 이전에 교대가 이루어지게 되고 결국 한번도 맹골수도를 지휘한 적이 없는 3등 항해사가 이 맹골수도를 지휘하게 된다. 

학생들은 다음 날 아침 밥을 먹으면서 다들 즐거웠다고 한다. 도착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제주도의 본격적인 수학 여행이 시작되면서 다들 들떠 있었다고 한다.

생존한 학생이 인터뷰에서 밝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이 아침 식사시간, 친구들하고 밥을 먹을 때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기도 하고 이 식사 시간 이후 바로 사고가 생겨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생사가 갈렸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이동한 일부는 살고 나머지는 객실로 이동했다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억속에 가장 평온했던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고 한다. 가장 평온했던 이 자리에서 불과 몇 분 뒤....가장 끔찍한 일이 생기게 된 다는 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 

인터뷰를 했던 남학생은 자신이 생존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게 되는데, 밥을 먹고 난 뒤 남은 자투리 시간에 게임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들과 중간에 헤어졌다고 한다. 

지갑을 가지러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려 친구들과 헤어지는 이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 순간이 운명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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