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래퍼는 누구? 랩의 원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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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음악다방

우리나라 최초의 래퍼는 누구? 랩의 원조를 찾아서~

by 깨알석사 2017.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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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시키 동생 두리스 위스키 작곡 시 장조 도로또 4분에 4박자/ 잔즈그 즈그즈그 즈그즈그 잔∼ 즈그즈그 잔잔 잔잔∼∼/ 이거다 저거다 말씀마시구 산에 가야 범을 잡구 물에 가야 고길잡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 없이는 못마십니다/ 산에 산에 산에 사는 산토끼야 ∼깡총깡총 뛰며 어딜 가느냐∼ / 삐빠빠 룰라∼ 비스마이 베이비 얼메이징 부산항에 완행열차 웬말이냐∼ / 피가 되구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짠짜라 짠짠∼ 짠짠∼ 짜라짜라 짠짠 짠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면 위에 나온 노랫말을 잘 알거나 따라 부를 수 있다. 나이가 중년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노랫말이다. 30대 이하라면 처음 들어봤거나 잘 모를 수 있다. 시골영감으로 시작하는 "서울구경"이라는 노래를 알고 있다면 누가 이 노랫말을 불렀는지 알 수 있지만 서울구경 노래 조차 모른다면 생소할 수 있다.

시골영감 처음타는 기차놀이라 차표파는 아가씨와 승강이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없는 장사가 어딨어, 깎아달라 졸라대니 원 이런 질색, 기차는 삑 하고 떠나갑니다, 영감님이 깜짝놀라 돈을 다 내며, 깎지않고 돈 다 낼테니 나 좀 태워주, 저 기차 좀 붙들어요 돈 다낼테니, 삼등칸은 만원이라 자리가 없어, 옆의 칸을 슬쩍보니 자리가 비었네, 옳다구나 땡이로구나 집어탔더니, 표검사에 이등차라고 돈을 더 물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래는 발판의 화살표에 따라 댄스를 추는 펌프 게임에서의 서울구경 노래 

서울구경은 코미디언 1세대인 서영춘이 불렀고 그를 연상케 하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호탕하게 웃는 웃음소리가 간주에 들어가는 꽤 유명한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제목이 서울구경이 아닌 시골영감인 줄 아는 사람도 꽤 있다)

서영춘의 노랫말이나 만담 개그 중에 랩과 비슷한 것들이 꽤 있다. 단지 말을 빠르게 하거나 가사를 읽어내듯이 한다고 해서 랩은 아니다. 홍서범의 김삿갓, 불놀이야나 육각수의 흥부가 기가막혀도 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랩의 기본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구석이 있다. 랩 소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운율이 있고 리듬감, 박자감이 있어야 한다, 랩 특유의 라임이 있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아래 서영춘이 불렀던 노랫말은 랩과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즘의 래퍼가 그대로 따라 부르면서 랩으로 활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다시 한번 지금의 랩 스타일과 비교해 들어보면 확실하다.

차이코프시키 동생 두리스 위스키 작곡 시 장조 도로또 4분에 4박자/ 잔즈그 즈그즈그 즈그즈그 잔∼ 즈그즈그 잔잔 잔잔∼∼/ 이거다 저거다 말씀마시구 산에 가야 범을 잡구 물에 가야 고길잡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 없이는 못마십니다/ 산에 산에 산에 사는 산토끼야 ∼깡총깡총 뛰며 어딜 가느냐∼ / 삐빠빠 룰라∼ 비스마이 베이비 얼메이징 부산항에 완행열차 웬말이냐∼ / 피가 되구 살이 되는 찌개 백반 짠짜라 짠짠∼ 짠짠∼ 짜라짜라 짠짠 짠짠∼

서영춘, 1928년 출생, 1986년 환갑을 앞두고 잦은 음주가 원인이 되어 간암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코미디계 1세대 대표주자로 구봉서, 배삼룡, 이주일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전설의 코미디언이고 즉흥 연기의 달인으로 대중문화 연예활동이라는게 많지 않던 예전에는 이들을 보고 자란 사람들에게 꿈 같은 존재들이기도 했다.

위키백과의 <대한민국 힙합> 항목을 찾아봤다,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백과사전 내용은 랩 음악을 처음 선보인 가수는 홍서범의 김삿갓(1989년)으로 시작하며 동시간대의 "현진영"과 "나미"의 노래들 역시 랩 음악의 시작점이라고 쓰여 있다. 김삿갓의 노래를 들어보면 실제로 모든 노랫말이 빠른 랩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박자감이 느린감은 있지만 누가 들어도 랩 형태다. 최근 방송된 연예관련 프로그램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랩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박남정과 홍서범이 붙었었고 앨범 발매가 한달 빠른 홍서범이 앞서면서 홍서범의 김삿갓이 최초의 랩이라고 소개를 한 적이 있다.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은 김삿갓과 동일한 년도에 발매된 음악인데 원곡을 들으면 딱히 랩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찾기 힘들 것이다. 원래의 곡과 리믹스 곡이 따로 있다. 처음 이 곡이 인기를 얻어 리믹스가 되면서 나미와 붐붐이라는 형태로 다시 발매가 되었고 그 리믹스곡에는 붐붐이 랩을 하는 소절이 있다, 나미의 곡이지만 랩은 나미가 하지 않는다.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에는 토끼춤, 셔플댄스 추는 나미를 볼 수 있다.

노래 소개 자막에도 "리믹스와 랩"의 붐을 일으킨 노래라고 당시 소개되어 있다. 아래는 붐붐의 랩이 있는 리믹스

이후 1992년 여고생 가수 박준희의 <눈 감아봐도2> 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래퍼라는 타이틀이 박준희에게 가게 되는데 위키백과의 힙합 항목에서도 홍서범-현진영/나미 다음으로 언급되는 순서가 박준희다. 박준희보다 나미가 3년 앞서지만 실제로 나미의 경우에는 나미와 붐붐이라는 프로젝트로 활동하면서 랩을 붐붐이 하고 나미는 랩 소절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여성 래퍼의 항목에 있어서 박준희에게 그런 타이틀이 건네 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래 중앙일보 기사에서도 그런 내막을 대강 알 수 있는 정보가 나온다 

박준희는 자신이 ‘한국 여성 최초의 래퍼’라는 사실도 전했다. 박준희는 “DJ 신철이 내가 여성 최초의 래퍼라고 말해줬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바로 따라했다”면서 “힙합을 굉장히 좋아한다.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에서 여성 보컬로 피처링했다”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슈가맨을 찾아서' 박준희 "난 한국 최초의 랩 여가수"

우리나라 최초의 래퍼라면 윤미래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박준희가 여고생 가수로 데뷔할 때 윤미래는 이제 갓 초딩 나이였고 데뷔도 안 했을 시절이다. 윤미래는 5년 후에야 만 15세로 (방송나이 19세) 데뷔를 했기 때문에 윤미래보다 박준희가 한참 선배다. 당시 인기는 지금의 아이유, 혹은 예전 양파랑 비교를 하는 편 

눈 감아봐도를 들어보면 역시 랩 소절을 듣기 힘든데 나미와 비슷한 케이스로 원곡이 히트를 얻어 리믹스 버전이 따로 있다. <눈 감아봐도>가 아닌 <눈 감아봐도II>로 리믹스가 따로 있고 거기서 박준희가 랩을 직접 한다 (아래)

박준희는 여성 랩퍼라는 부분 때문에 먼저 언급 되었을 뿐이지 랩 소절이 들어가는 노래를 부른 015B나 신해철 보다 뒤늦게 데뷔한 가수라서 년도별 순서가 오히려 뒤다. 참고하자. 박준희가 활동 할 시점에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철이와 미애"도 있다. 위키항목에서는 아예 언급이 안되지만 나미의 붐붐이 신철의 작품이고 신철의 랩 작품이라 신철을 빼놓을 수 없는 법, 물론 같은 시기에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포함된다. 1992년 무렵에 꽤 많은 사람들이 데뷔를 했고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 "유명한 첫 데뷔 무대" 방송 무대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정작 다음날 사람들에게는 난리가 났던 노래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해철의 영어 랩이 들어가는 <안녕> 이라는 노래도 랩이 들어간 노래들이다. 이후부터 업타운, DJ DOC, 솔리드, 드렁큰 타이거 등이 나오면서 힙합과 랩의 전성시대를 구축한다. 아래는 신해철의 <안녕>으로 내가 어릴 적에 영어 랩 가사를 사촌형에게 배워 따라 불렀던 추억이 깃든 노래 중 하나다.

일반적인 "가수"들의 활동 범위에서 랩을 찾는다면 기존의 상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래와 춤, 연예활동, 문화예술이라는 것의 장벽과 경계가 애매한 것처럼 (대중문화로 따로 볼 수는 있겠지만..) 가수가 아닌 사람이 랩을 했다고 해서 그걸 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부른 사람이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가수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랩 자체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로 따져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PD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집밥 백선생에서도 서영춘의 이 노랫말이 나올 때 CG가 래퍼처럼 나온다. 이것저것 따질거 없이 그냥 듣기만 해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랩과 동일하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랩은 라임과 플로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라임은 가사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능력이다. 스타일은 한글 음의 끝부분을 맞추는 각운(脚韻)과 첫부분을 맞추는 두운(頭韻) 등이 있는데, 대부분 이들을 혼합해서 다양한 라임들을 만든다. 라임으로 유명한 랩퍼로 타블로(에픽하이의 리더 겸 멤버), 피타입, 화나, 버벌진트, 더블 케이, 4WD 등이 있다.

플로우는 가사를 특유의 리듬으로 가공하는 능력이다. 즉, 가사를 리드미컬하게 읊어내는 기술을 뜻한다. MC들에겐 고유의 플로우가 있으며, 리스너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플로우 기법과 MC가 각기 다른 경향이 있다. (위키백과 동일 항목의 라임/플로우 설명 부분)

GOD의 어머님께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도 이런 각운을 가진 랩 소절이 등장하는데 물론 그런 형식만 갖췄다고 해서 다 랩으로 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노랫말과 운율을 들었을 때 "랩"으로 인식이 되느냐도 따져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개짓이 되고 스웩 넘치는 손짓이 가능하다면 그건 분명 랩이 될 수 있다.

불타는 청춘과 집밥 백선생에 출연했던 김국진이 이 노랫말을 자주 불렀다.

프리스타일이라는 항목도 랩 스타일에서 빠지지 않는다, 래퍼라고 하는 사람들을 대중들이 평가할 때 프리스타일이 가능한지를 많이 보게 된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평소에도 (또는 특별한 경우에도) 즉석으로 즉흥랩을 할 수 있느냐로 자질을 따져 보는게 프리스타일인데 코미디언 서영춘 하면 떠오르는게 애드립이고 프리스타일 형식의 엄청 긴 대사를 읖조리는 형태라서 프리스타일이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도 구분점이다.  

무엇보다 악극이나 무대 위에서 그냥 흘려 말하는 단순한 대사나 노래가 아니라 정식으로 발매가 된 노래 앨범이 있고 그 앨범안에도 이 노랫말이 실렸다는 점에서 이 노래가 아무렇게나 말하는 비공식적인 랩 소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노래 전체를 랩으로 하느냐, 노래 일부를 랩으로 하느냐는 의미가 없고 지금 현재 우리가 랩이라고 부르는 형태를 얼마나 유사하게 따라하느냐가 관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홍서범의 김삿갓이 원조라는 것에 의문을 갖거나 반감을 갖는 사람이 꽤 많다. 가수가 부른 노래인 건 분명하지만 홍서범이라는 가수가 가지는 이미지가 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힙합계에서는 딱히 원조라고 말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좀 더 멋있고 스웩 넘치는 힙합 정신이 있는 크루가 원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진표(패닉)나 박남정이 원조라면 그나마 인정할 사람이 많아도 우스꽝스러운 개그가 먼저 연상되는 홍서범을 원조로 삼기 싫다는 느낌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런 판에 서영춘이 원조라고 한다면 너무 앞서 나갔다고 아예 신경도 안 쓸 사람도 많겠지만,

한국어 랩의 완성도와 라이밍(Rhyming) 등 기술적인 부분은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에 흑인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힙합의 영향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 활동을 하는 재미교포 가수들의 비중이 커졌다. 한국어 랩은 극히 드물었던 대신 세련되고 발전된 영어 랩을 내세워 대한민국에서 랩 음악은 물론 전반적인 힙합이라는 장르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위키백과의 힙합 마지막 설명 부분)

주목해야 할 건 한국어 랩이다. 한국어 랩은 완성도와 기술이 떨어지고 그런 형태 자체가 극히 드물어 영어 랩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붐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라는 기준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포함해 누가 먼저 랩과 유사한 형태의 음악을 다루었느냐고 본다면 1983년에 나온 서영춘의 "앨범"을 빼서는 안된다고 보는게 내 생각이다.

아래 우리나라 최초의 랩과 관련한 내용을 2개 올려본다. (일단 현재 관점에서 홍서범이 원조인 건 분명한 듯)

http://m.rhythmer.net/src/magazine/feature/view.php?n=5439 (리드머)

(명예의 전당, 한국 최초의 랩/한국 최초의 랩 앨범)

http://news.joins.com/article/12812809 (중앙일보)

(한국 힙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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