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위험한 감성팔이로 외줄타기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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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리뷰

덕혜옹주 - 위험한 감성팔이로 외줄타기 하는 영화

by 깨알석사 2016.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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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세탁이라는 말이 있다.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대한제국 황실이 생기면서 그 연대기가 끊어졌으며 대한제국 조차 분명 멸망(!) 했고 지금은 더더욱 왕조 시대가 아닌 민주 공화국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의 연속성은 없다. 다만 같은 판(국토)에 같은 선수(백성/국민)들이 게임을 리셋해 새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이름만 다를 뿐 분명 같은 나라이기도 해서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소중한 우리 이야기라서 가볍게 보거나 가볍게 생각하거나 가볍게 대할 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상업적인 목적이라고 해도 이렇게 이미지 세탁을 해서 감성팔이를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만 들었다. 친절하게도 영화 시작전에 일부의 사실과 허구적인 이야기를 포함했다고 안내를 하지만 그것이 어떤 비율로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걸 안다면 그건 일단 돈 부터 벌고(흥행수입) 뒤에 벌어질 평가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한 계략으로 보일 뿐이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연숙경 영정순헌 철고순 (내가 외웠던 방식의 음절) 이라는 조선왕조 임금 목록에서 사실상의 조선왕조 끝은 영조와 정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연대시기도 딱 1700년대와 1800년대로 나뉘어지는 시기이기도 한데 이후 왕조는 모두 임금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나라를 만든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한 임금 "가족"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든 건 약간 억지다. 특정 가문을 깔 의도는 절대 아니고 그냥 내 눈에는 전주이씨 가문의 어느 집안에서 벌어졌던 비운의 이야기로만 보인다. 덕혜옹주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역시 소설, 소설은 실화를 담기도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믹스를 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지만 대체로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것이 보통이다. 소설도 분명 대중의 시선을 먹고 자라기에 상업적인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중요해서 흥미 요소가 많아야 하지만 소설은 한편으로 문학에 가까워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마저 크게 따지지 않는다.  

다만 실화를 근본으로 했거나 실화가 포함되어 있다면 사실적 근거와 참고자료를 덧붙여 말미에 따로 설명해 주거나 역사적인 배경이 되는 주요 사건을 정리해서 실제 있었던 것에 대해 알려주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외적인 것들은 허구라는 걸 알게 해준다. 

역사를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으로 배울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데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소설과 달리 영상 예술에 포커스를 둔 영화는 문학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리고 "철저히" 상업주의가 영화와 책의 차이점이 될 수도 있다. 책은 내가 사서 내가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읽고 보고 만지고 느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영화는 그것보다 못하다.

역사를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으로 배울 때 보다 더 위험한 끝판왕은 영화로 역사를 배울 때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에 따라 역사 전체가 달라지는 건 예사, 아무리 그래봤자 요즘 사람들은 쉽게 믿지도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고 방어막 쉴드를 치지만 그런 굳건한 믿음이 오히려 잘못된 믿음에 빠지기 쉽다. (똑똑한 난 절대 사기 당하지 않아!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보이스피싱 최대 피해자는 50대 이후 중장년이 아니라 20대라는 거~)

책처럼 문자로 보고 배경을 머리속에 상상하는 것과 영상으로 짜여진 각본 그대로 보여주는 건 완전히 다르다. 캐릭터의 묘사나 행동, 말투, 대사까지 나의 주관적인 생각보다는 각본에 의한 객관적인 사고방식이 주입되기 쉬운 것도 영화다. 

덕혜옹주 영화는 실제 이야기 10% 수준에 허구 90%를 섞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구분하거나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보면 90%의 실제와 10% 수준의 허구가 섞인 뒤바뀐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이런 비율 구조가 나올만큼 충분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 무어보다 가장 큰 함정이다.

어떤 분의 리뷰를 보니 영화 상영 중간에 가족을 데리고 도중에 나와버렸다는 분도 계시고 반대로 어떤 분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왜 굳이 실체와 허구를 딱 구분해서 영화 자체의 평가보다는 역사적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난 영화 상영 중간에 나와버렸다는 어느 아버지의 말에 더 공감이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사실에 근거해서 최대한 사실적인 걸 담거나 아니면 모티브만 따와서 완전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서 거의 대부분을 허구적인 이야기로 담아버리면 그 실화 자체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고 실화 자체의 본질도 바뀌게 되어 없던 것을 있던 것으로 만드는 가짜가 되어 버린다. 이게 역사를 다룬 이야기라면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된다.

포스터의 자극적인 문구들 역시 누가보나 어디로 보나 지극히 "자극적인 멘트"로 사람들을 현혹해 영화를 보도록 만든 영화사의 마케팅으로밖에 안 보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감성팔이로 영화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덕혜옹주가 고종의 딸이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인 남자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돌아와 창덕궁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것 외에 나머지는 모두 눈물짜내기 위한 장치들 뿐이다. 근데 그걸 실제와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분명 일본은 우리에게 큰 잘못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미운털 제대로 박혀서 우리에게 밉상으로 찍힌 나라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건 대한제국 황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망국의 한으로 우리 조상들이 겪은 아픔을 공감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건 좋지만 역사책에서도 배우듯이 잘잘못은 따져가며 잘한 사람은 위인으로 못한 사람은 매국노로 취급할 뿐이다.

한일합방이 진행되기 전부터 그 이후 되고서도 자결하거나 목숨을 바친 황족은 없다. 내 나라와 내 백성을 뺏겼는데도 몸보신하기 바빴던 건 예나 지금이나 높으신 분들의 주특기다. 합방을 하면 조선의 왕족은 일본 왕족과 대등하게 대접하겠다는 조약에 근거해서 나라를 뺏겼어도 예전처럼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준다면 상관없다고 한 것이 조선 왕족들이다. 이는 영화에서 영친왕이 가족 모임을 할 때도 잘 표현되어 있다. 상해 임정을 도와주어야 나중에 명분이라도 얻을 수 있다며 그 와중에도 밑밥 걱정부터 한 장면은 그래서 가장 확실한 실화다. (너무 짤막하게 나와서 기억 못하겠지만..) 

덕혜옹주는 그냥 비운의 여자다. 조선의 왕족으로 태어나 나라 안팎으로 어렵던 시절에 왕족으로서의 생활과 대접을 누리지 못하고 평민처럼 살다간 마지막 왕족이라는 타이틀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다. 고종의 후손이 한 두명도 아니고 증손주들 수만 해도 수십명에 달하는 건 물론 지금도 그 직계 후손들이 살아있음에 딱 한 사람만 떼어내서 영웅화 시키는 건 무모한 짓이다. 

궁에서 궁녀들에 의해 보호 받으며 키워진 것처럼 나오지만 웃긴 짬뽕이라는 말처럼 영화에서는 상반된 장면들이 꽤 자주 나온다. 임금의 앞을 막는 윤제문에게 어린 덕혜가 물렀거라~하는 초반의 장면이 나오는데 임금의 길도 서슴치 않게 막고 일본 순사같은 복장으로 궁을 내 집처럼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덕혜옹주의 보모는 정말로 조선의 궁녀 였을까?

조선 왕족을 일본으로 유학시키거나 남자는 일본 육사로, 여자는 일본인과 결혼시키려고 한 것이 일본인데 궁에서는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들에게 옹주의 교육과 보육을 전적으로 맡겼다는 건 엉뚱한 발상이 된다. 더군다나 고종의 딸이었기에 덕혜 주변에는 일본인 보모들과 시녀들로 일찍부터 일본식 교육을 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처럼 실제로도 김포공항에 마중을 나온 분들이 있는데 그 분은 "유모"이지 "보모"는 아니다,) 

앞뒤 따지지 않고 그냥 풀면 태어나서 쭉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궁 안에서 있었고 일본인 보모들에 의해서 키워졌다. 유치원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어울리는 대상층에는 한계가 있었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랐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 이걸 두고 안타깝게 여기는 분도 있지만 꼭 일본 식민시대가 아니었어도 그 생활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주위에 일본인이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고 조선 이왕가의 왕족 지위가 평민이 되면서부터 일반 국민이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배고픔이나 가정형편의 어려움 따위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우를 받고 자랐다. 영화에서는 조선으로 돌아가면 한글학교를 세우겠다는 망언(?)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사가 만든 개수작, 조선의 백성과 나라를 걱정했다는 건 다른 왕족들에게서도 볼 수가 없는데 덕혜옹주만 독립정신이 투철해서 전혀 다른 노선을 걸어갔다는 건 금시초문

우리 주위에 보면 재벌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녀들을 보면 우물 안 개구리 생활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덕혜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활동반경이 적고 따라붙는 보호자가 있다는 점도 같다. 덕혜옹주의 삶 자체는 비운의 연속이고 안타까운 건 분명하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딱 거기까지다. 재벌 가문에서 어려움 없이 남 의식하지 않고 자란 재벌 공주님이 나중에 재벌이 망해서 일반 소시민이 되었을 때를 지켜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재벌이 존경받거나 인정받는 가문이 아니라면 그 집안이 망하든 그 가족이 어디에서 무얼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일하게 고수의 캐릭터가 독립운동 비스무리하게 등장했지만 조선왕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애초에 상해 임시정부는 공화국을 선포했고 제국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국가의 정부이니 그들을 돕는다는 것도 사실 왕족 입장에서는 이해관계가 안 맞는다. 나라도 뺏기고 땅도 뺏기고 땅그지같은 삶을 산다면 임시정부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나라와 땅은 빼앗겼어도 왕족의 신분과 재산, 국가의 지원은 변함 없다는 걸 일본으로부터 약속을 받았고 실제로 해방 직후까지 쭉 아름답게 지원을 받아 영화 속 배경처럼 왕족들 모두 풍족하게 살았기 때문에 굳이 독립운동을 할 필요성이 없었다.

독립운동을 해서 나라를 찾는다고 한들 예전같은 삶을 보장 받는 것도 아니고 임금이 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지금 상황이 왕가 입장에서는 결코 나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신경 쓸 일도 없고 까부는 대신들도 없고 풍족한 지원은 일본 정부에서 나오고 어디가서 조선의 이왕가로 대접은 충분히 받고~ 왕족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더 만족스러운 건 분명하다. (일본이 곧 망할 수 있으니 상해로 가자는 말에 장남이 못 들은 걸로 한다며 박차고 나간 것도 그런 이유)

일본이 쫄딱 망했을 때 영친왕이 한 말은 아직도 유명한데 누가봐도 기뻐하고 조선 귀국을 서둘러야 할 사람이 (대중의 시선에서 본다면) 정작 가장 먼저 한 말은 "우리(왕족)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와 "앞으로도 우리를 지원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일본이 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서자 역시 또 몸보신부터 챙겼다는 말이다.

고수 캐릭터(이우)는 영친왕과 함께 나오지만 의친왕의 차남으로 한 때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조선의 왕족으로 소개된 "이석"씨가 같은 형제로 10남이다. 고수 캐릭터가 의친왕의 아들 중 둘째라면 방송에서 종종 출연했던 이석씨가 열번째 아들, 영화에서는 조선왕가가 독립운동과 연결되어 있고 상해 정부요원의 도움을 받아 폭파를 하거나 영친왕이 망명을 한다는 식으로 (망명시도 한적도 없음) 완전 다르게 구성했고 그 와중에 덕혜옹주를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멋진 연설을 하게 하는 식으로 포장한 장면도 나오지만 영화사가 너무 돈벌이에 급급해 실제 인물이 하지도 않을 걸 너무 과대포장해서 오해의 소지가 크게 만든 건 실수라고 본다.

워낙 역사적인 사실이나 이왕가 가문의 이야기는 알려진 것이 많아 굳이 따로 여기서도 설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쓰다보니 나 역시 나오게 될 수 밖에 없는게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실화를 근거해서 평가해야 하는지 허구로 썼다고 가정하고 영화의 순수한 스토리 요소만 보고 평가를 해야 하는지를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덕혜옹주라는 실존 인물이 있었고 그 인물을 모티브로 해서 완전 새롭게 구성한 허구의 가상 이야기라고 한다면 평가하는데 큰 장애물이 없지만 이건 누가봐도 덕혜옹주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교묘하게 짜집기 하다보니 잘 만든 영화인지, 오히려 못 만든 영화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의친왕만 해도 12남 9녀의 자식을 두었다. (어구구..) 그 중에 차남이 고수가 출연한 캐릭터다. 조선은 망했고 대한제국 역시 망한 뒤라 왕과 황제로서의 계보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서열만 놓고보면 의친왕쪽 자녀들도 만만치 않는 곳이다. 의친왕과 영친왕 덕혜옹주 뿐 아니라 그 아래에도 수 많은 왕족들이 있는데 덕혜옹주만 따로 떼어내 영웅처럼 받들어 모신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삶 자체가 딱 영화나 소설로 쓰기에 좋고 사람들에게 감성팔이하기 딱 좋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궁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고종황제!! 이것만 해도 꽤 괜찮은 소재인데 일본 유학을 강제로 보내서 결국 일본인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왕족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는데 한국 정부가 입국을 거부한 것도 흥미거리가 될 수 있다. (이것도 다른 왕족과 같음) 문제는 미쳤다는 것! 언제부터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는데 대체로 그걸 조선에 있을 때부터 엮기 시작하면서 나라를 잃은 슬픔과 백성을 잃은 고통과 "연결"지어버린 것이다. (왕족의 삶들을 보면 절대 그 이유와는 연결되지 않음에도...)

그런데 덕혜옹주의 딸이 자살을 했고(!) 이혼한 체로 병원에서 쓸쓸하게 생활하다가 결국 영화 속 처럼 서울신문 기자에 의해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우리 상식으로는 절대 거주시설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창덕궁에서 살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좋은 이야기 소재가 아니겠는가.

여기까지의 사실에 나머지 감성충만 이야기를 덧붙이기만 하면 눈물짜내기에는 이만한 인물도 따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부가 덕혜옹주를 비롯해 조선왕족들 입국을 불허한 것에 대해 "대한민국"을 까는 경우도 있다. 그건 시대적 상황이나 역사 배경을 따지지 않은 오류다. 당시에서는 그게 맞을 수 밖에 없다. 조선의 임금과 대한제국의 황제가 나라꼴을 어떻게 했고 나라 밖에서 잘 먹고 지내는 걸 다 아는데 나라가 해방되었다고 해서 다시 돌아온다면 곧 그건 "주인"역할을 다시 하겠다는 것으로 오인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북한 정권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위대한 수령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망한 나라의 망한 임금이라도 왕이 존재했던 나라에서 왕이 돌아온다는 건 이유를 막론하고 환영할 사람도 분명 있게 된다.

왕족이 있으면 왕권을 복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결국 다시 왕이 있는 나라로 돌아가게 될 확률이 큰 것도 당연하다. 열심히 싸웠고 밖에서도 독립운동을 해서 백성 모두가 잘 알고 있다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납치를 해서라도 데리고 와야겠지만 잘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민주 정부를 세운 국민이 주인인 정부 입장에서는 왕의 귀환은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충분히 감성적이다. 눈물을 자극하는 요소는 충만하다.

다만 이제 좀 먹고 살만하고 여유가 있으니 이런 것도 테클 걸고 시대적 상황 따지지 않고 까는 것이지만 이 영화가 50~60년대 개봉했다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어려운 나라에서 한 것도 없는 왕족들이 다시 돌아와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궁에 다시 들어가 궁녀들과 환관들을 두고 풍족한 삶을 산다면 비판할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녀의 삶이 안타까운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전주이씨 집안의 한 부분일 뿐, 역사의 페이지에서 멀리 벗어난 덕혜옹주의 삶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라면 전주이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 걱정은 다 해주어야 한다.

덕혜옹주의 딸이 정혜라고 나온다. 난 덕혜옹주의 손예진이 영화 "여자 정혜"를 떠올리게 했다. 그냥 한 여자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겪은 여러가지 아픈 가족사와 고통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어머니 귀인 양씨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도 꽤 자주 나오는데 여자 정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엄마의 죽음은 여자 정혜에서도 큰 상처가 된다. 

영화 "여자 정혜"에서 정혜는 다른 사람은 왜 내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난 불행하지 않는데라는 그녀의 생각이 나온다. 덕혜옹주의 그녀도 어쩌면 그것까지도 똑같을 수도 있다. (근데 정혜나 덕혜나 불행할 것이라 여기고 불행하게 보여야 한다고 여겨서 불행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는 고종의 딸이었고 어려움이나 힘든 것 없이 시종들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컸지만 이후 그녀에게는 더 이상 궁녀도 없고 시녀도 없고 시종도 없었다.

돈이 많은 사람과 몇 알고 지내다보면 이런 비슷한 일을 겪게 되는데 태어날 때부터 완전 금수저로 자라 성년이 될 때까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금수저 (때로는 다이아수저)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할 수 없거나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 정신력도 함께 무너지는 걸 봤다.

특히 어릴 때부터 옷이며 먹는 것까지 남의 손에 의해서 떠먹여주듯이 키워진 사람들은 자립심이나 독립심은 완전 제로인데 허허벌판에 혼자 뚝 떨어지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울증이나 심한 정신병을 앓는 경우도 비슷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남의 손에서 오냐오냐 키워진 하우스속의 화초마냥 들판에 나오면 할 수 있는게 없어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건 분명 이런 사람들이 겪는 흔한 경우인데 덕혜옹주는 어쩌면 그런 배경 속에서 자란 화초 같은 인물이라 이후의 생이 더 비참했을 수도 있다.

근거도 없고 연관성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왕족의 독립운동이나 백성과 나라 걱정을 하는 "공주님" 같은 발상의 스토리 보다는 진짜 사실 그대로 우리가 아는 수준에서 그녀가 어떤 아픔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조선이라는 땅에서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하는 잔잔한 분위기로 오로지 그녀의 시선에서만 바라본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의 과도기를 그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멘트로 개인이 창작한 "나는 조선의 국모다" 따위로 명성왕후를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어 우리나라 대표 국모 캐릭터로 만든 것처럼 (역대 왕비들은 어쩔,,,상업주의에 빠져 돈벌이에 놀아난 얼어죽을...이미지 메이킹. 민비와 당시의 민씨 가문은 확실히 악의 축이다) 덕혜옹주도 그런 위험한 줄타기를 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왜곡적인 부분은 빼고 굉장히 차분하고 감성적이면서 슬픔을 간직한 옹주 "덕혜"가 아닌 "여자"로서의 "덕혜" 입장에서 그녀가 겪은 아픔을 왜 그리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 계속 미련이 되어 남을 뿐이다. 

유아 시절의 아역 손예진, 소녀 시절의 아역 손예진, 그리고 숙녀가 된 손예진 본인, 그런데 노년은 또 손혜진 본인, 유아 시절과 소녀 시절의 아역 배우들 캐릭터는 100점 만점, 그런데 굳이 노년에 어색한 분장으로 할머니 연기를 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2명의 아역 배우를 두고 했다면 노년도 노년에 맞는 손예진 느낌의 노년 배우를 캐스팅해서 노년의 덕혜옹주는 그 느낌 그대로 살려주는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왜곡된 시선으로 허구가 많이 섞인 게 아니라 허구가 실제로 둔갑한 것이 아쉽지만 영화 자체의 흐름과 이야기 전개만 놓고 본다면 10점 만점에 7점, 수우미양가에서 "미" 정도 주고 싶다. 리뷰 중 젊은 층(특히 여성)과 청소년 층에서는 "청소년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는 타이틀로 많이들 추천하고 있다. 이런게 무서운거다. 영화에서 나온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고 그걸 봐야 한다는 입장에서 꼭 봐야할 추천영화로 내세우는게 아닐까...

내 눈에는 그냥 조선판 여자 정혜, 그러나 현대판 여자 정혜보다는 뭔가 아쉽고 부족함이 더 있는 영화 정도...이런 영화를 보고 황실(왕가)를 복원하거나 왕족들을 다시 찾아서 대우하자는 이야기도 종종 있는데 솔까말 무식한 말이다. 종속관계가 성립되는 양반과 하인이 다시 생기는 걸 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노비가 되겠다는데 할 말 없다.

덕혜옹주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우리나라 이왕가의 왕족이자 일본의 황족인 일본인 이방자 여사의 삶이 더 드라마틱하고 볼거리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고종의 딸이나 고종의 일본인 며느리나 여자로서의 인생을 보면 덕혜옹주보다 이방자 여사의 삶이 더 애잔하고 고독하지 않을까? 일본 황족이니 영화도 일본에 수출하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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