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새삼 배우는 훈육의 질과 방법,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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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훈육보육

군대에서 새삼 배우는 훈육의 질과 방법,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

by 깨알석사 201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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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이라는 건 간단하다. 훈련과 육성의 합성어다. 굳이 서양식으로 해석하면 트레이닝과 티칭의 조합이다. 그게 훈육의 본질이다. 육성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다.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성장만 하면 된다. 그 가르침을 제대로 숙지하고 인지했는지 알아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잘하는 점은 칭찬한다. 그래서 훈육에는 상벌이라는 극과 극의 제도가 하나의 제도로 운영된다. 상벌이라는 말 자체가 벌칙에 많이 쓰이다보니 벌을 주는 말로 생각하지만 분명 "상"과 "벌"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가정에서의 훈육이나 군대에서의 훈육이나 본질은 같다. 병아리들 데리고 와서 쌈닭으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아기 병사들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것도 똑같다. 교관은 아버지이고 조교는 엄마다. 아버지는 자주 등장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등장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만 가르친다.

그에 반해 조교는 엄마처럼 24시간 붙어서 함께 지낸다. 일일이 잔소리를 하고 모든 걸 지도, 감독한다. 케어의 임무, 아기 병사들을 현장에서 보호해야 하는 것도 엄마인 조교들 몫이다.

훈육 카테고리에 군대 이야기를 쓴 것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몇번을 강조해도 틀리지 않는 말 중 하나는 훈육은 군대와 같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군대식이 사실 더 정확하고 옳다. 일반 자대에서는 훈육이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고 훈육관이라는 보직도 따로 없다. 훈육은 군대에서도 훈련소라고 불리우는 학교와 훈련소의 내무실인 생활관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관의 역활과 조교의 역활, 가르침의 비중과 디테일한 임무수행에 대해 이해를 했다면 가정에서도 아빠와 엄마의 훈육관 역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금방 알 수 있다. 아빠는 교관과 같고 엄마는 조교와 같다해서 쓸데없는 성차별은 접어두자. 주어진 역활에 맡는 임무와 조건이 있을 뿐, 군대에서의 교관은 아빠가 맞고 조교는 엄마가 맞다. 그게 바뀌면 군대가 당나라 군대가 되듯이 가정이나 학교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가르치기 보다는 어떻게 누가 무엇을 가르치고 보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군대에서 훈련소 교관을 기억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극소수다. 하지만 대부분은 훈련소 시절 자신을 맡았던 훈육조교 한명쯤은 기억한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대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접하고 더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지만 사회에서도 아빠보다 엄마 생각이 더 들고 엄마의 품이 더 그리운 것처럼 그 역활에 따른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훈육의 가장 큰 역활은 상벌이다. 무언가를 새로 가르치는 건 아니다. 물론 새로 배우기도 하지만 배운것을 바로 응용해서 훈련 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다. 훈련이라는 것이 마치 군대용어처럼 들리지만 체육이나 업무처럼 사회에서도 똑같이 쓰이는 말 뿐, 오해는 금물이다. 그 과정에서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판가름 하게 되어 있다. 그 기준으로 새로운 것을 더 배워도 되는지 아니면 복습을 더 해야 하는지 진도를 조절한다. 

그렇고 조절하는 과정속에서 상(칭찬)과 벌(얼차려)가 주어질 뿐이고 그것이 훈육의 전반을 이룬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훈육의 양보다 질이다. 9번의 상보다 1번의 벌이 더 기억에 남고 9번의 벌보다 마지막 1번의 진심어린 칭찬이 사람을 바꾼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혼내고 아이가 혼자 지낼 시간을 잠시 준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혼내고 나서 방치하는 부모는 훈육을 망치는 부모고 혼내고 나서 나는 항상 너의 편이야~라고 다시 보듬어 줄 수 있는 부모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건 보여주기!, 특히 다른 사람에게 벌 받는 모습이나 혼이 나는 모습, 꾸중을 듣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지금 올린 군대 교관의 간부교육에서 병사인 조교들을 뒤돌려 세워 간부교육생들이 혼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이런 사소한 것은 생각보다 사소하지 않다.

혼나는 걸 지켜보는 사람 중, 혼을 내는 사람과 혼나고 있는 사람외에는 없는 것이 가장 좋고 있다면 보이지 않게 혼을 내야 하는 것도 훈육의 절대 원칙 중 하나다. 이것이 깨지면 훈육의 효과는 물론 교육의 효과도 없다.

학부모가 아이 문제로 학교로 찾아와 거의 횡포 수준에 가까운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잘못된 점은 따지고 선생님이라고 해도 항의는 할 수 있다. 다만 아이가 보는 앞에서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화를 내거나 따지거나 심지어 폭행을 한 다는 건 굉장히 미련한 짓이다. 교권침해와 상관없이 그 부모에게도 큰 손해고 아이에게는 더 큰 손해다.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와 선생님에 대한 권위가 떨어지는 순간 가르침에 대한 본질도 훼손되기 마련이다.

군대에서 병사인 조교 앞에서 간부교육생을 혼내거나 얼차려를 주면 그 간부교육생이 임관했을 때, 또는 정식 계급장을 받았을 때 그를 신뢰하기 힘들다. 원래 사람 마음이 그렇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잘못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잔뜩 혼나고 철부지 아이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누구도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고 존중해 주지 않는다. 

일대일, 맞다이(?)로 혼을 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제3자가 있는 경우, 특히 그 사람이 혼나는 사람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서열이 낮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다면 이건 단순히 혼을 내는게 아니라 그 사람을 모욕하는 수준이 될 수 있다. 아이 앞에서 선생님에게 화를 내고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후배들 세워놓고 그 앞에서 선배들을 혼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형제, 자매, 남매가 있는 경우 아이를 모두 불러 세워놓고 연대책임마냥 혼을 낸다. 특히 큰 아이는 그 안에서 가장 우두머리인데도 똑바로 하지 않았다고 더 혼나는 경우가 많다. 오리지널 훈육은 잘못한 것만 따지고 잘못한 것만 지적하며 그 사람 1인에 대해서만 따로 불러내어 혼내는 것이 원칙이다. 군대에서 지적 당한 훈련병이 따로 열외해서 혼이 나고 꾸중을 듣고 얼차려를 받는 것과 같다.

성인이라면 연대 책임을 물어 한 사람의 잘못이라도 여러 사람이 다 함께 혼나는 건 상관이 없다. 연대책임의 한계와 범위, 책임에 대해서는 충분히 판단하고 인내한다. 학교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 연대 책임으로 다 함께 혼내는 것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가정에서는 오히려 연대 책임을 묻지 않고 개별적으로 혼내는 것이 더 낫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동생 앞에서 큰 아이를 혼 내는 건 좋지 않다. 혼을 내더라도 따로 따로 혼을 내고 따로 반성할 시간을 갖게 하는게 더 낫다. 함께 혼나고 함께 벌을 서면 너 때문에 혼났다~ 오빠 때문에 혼났다~ 언니 때문에 혼났다식으로 반발심만 생길 뿐이다.

어떤 엄마는 자매가 싸우자 각각 방에 들어가게 한 다음에 10분씩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한 다음, 다른 형제를 대신해서 그 마음을 대변해 설명해 주고 마무리로 껴안아 주는 엄마가 있었다. 보통은 왜 그랬어! 하고 물어보면 울먹이면서 자기 변명하기 바쁘고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기 바쁘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명이 되지 않아 억울할 때도 많다. 사실 아이들 싸움은 부모 입장에서 손바닥 안의 일이다. 다 아는 일이고 다 예상하는 일이고 사유도 뻔하다. 

아이를 모두 앉혀놓고 동생한테는 그래도 너가 언니한테 그러면 안되지! 라고 하고 언니한테는 너가 그래도 언니인데 동생한테 그러면 안되지! 라고 하는게 사실 전부,,(잘못된 훈육).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혼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누구라도 싫어한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게 훈육의 또 다른 효과라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창피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건 훈육이 아니다. 군대에서 누구나 열외를 하고 열외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다음부터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 앞에서는 부부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봐도 어린 아이에게 강자인 아빠와 약자인 엄마 입장에서 아빠는 나쁜 사람, 엄마는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고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클 수 밖에 없다. 싸움을 하더라도 밖에서 하거나 아이들 없는 곳에서 해야 하는 이유다.

까더라도(?) 혼을 내더라도 윽박지르더라도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 좋게 타일러야 훈육이다. 남 앞에서 혼이 자주 나는 아이들은 성장해서 자존감이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의기소침하고 위축된 스타일로 평생을 산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혼을 내는 것이 가장 좋은 훈육이고 상벌이다.

훈육의 마무리는 반드시 상호 작용이다. 혼을 냈더라도 지적 사항이 개선되면 상을 줘야 한다. 상을 주더라도 잘못하면 상이 아무 의미없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하니까 잘하네~ 해보니까 되는구만~ 너도 할 수 있네~라는 칭찬의 한 마디가 군대에서는 가장 큰 "상"이다. 원래 상점과 벌점은 적절히 사용하면 효과가 크다. 이놈의 쉐끼! 하면서 벌점만 주어서도 안되고 오냐오냐~ 하면서 상점만 주어서도 안된다. 애가 삐딱하게 큰다.

혼을 낼 때는 그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맞게, 그 사람보다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 앞에서는 대놓고 혼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가정은 물론 사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을 낼 일이 있다면 따로 불러 일대일로 혼을 내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 시부모가 여러 며느리 앞에서 큰 며느리를 혼내는 경우도 있는데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다. 보이지 말아야 할 것과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도 훈육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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