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논개 (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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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여인천하

주논개 (논개)

by 깨알석사 20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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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 주씨(義妓朱氏) 또는 의기 신안주씨(義妓新安朱氏, 1574년[1] 9월 3일 ~ 1593년)는 조선 선조 때의 관기이다. 임진왜란때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장을 꾀어내어 그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논개(論介)라 불리는 이유는, 이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였으리라 여겨진다. 주달문과 밀양박씨의 딸이며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첩이었다. 본관은 신안(新安). 전라북도 출신.

 


생애

 

 

주논개는 전라북도 장수 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 출생으로, 성은 주(朱)이며, 1574년 주달문(朱達文)과 밀양박씨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주달문은 신안군의 주촌의 훈장으로 생활했으며, 일직 아들 주대룡을 두었으나 15세에 괴질로 사망했다. 그 뒤 40이 넘은 나이에 딸 논개을 보았다.

 

 

1578년 부친 주달문의 사망 후 숙부 주달무의 집에 의탁했으며, 어린 조카를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보낸다는 약조를 하고 금품을 받고 도망간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논개의 어머니는 논개를 데리고, 친청으로 피했다가 체포되어 장수 관아에 수감된다. 1579년 장수 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이 열리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돌아갈 곳이 없어 모녀는 침방관비를 자청했다. 1592년 17세에 최경회의 부실이 되고, 모친상을 당하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전라우도의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훈련할 때 논개는 의병 훈련을 뒷바라지했다.

1593년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2차 진주성 전투를 할 때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들었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유인해 끌어안아 함께 남강에서 투신자살 하였다.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확실한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본에서는 박종화의 소설 《논개와 계월향》(1962년)에서 최초로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록

 

 

1594년 유몽인은 삼도순안어사가 되어 하삼도의 피해상황을 살피게 되는데, 진주에 머물면서 진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신분이 미천하여 정사에 실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였다. 논개가 관기라는 이유만으로 광해군 9년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순국 사실이 기록되지 않자, 이를 안타까워하며 논개의 순국 기록을 1621년 자신이 편찬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남기게 된다.

 

 

권1 인륜편(人倫篇) 효열(孝烈)에 논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인륜편에는 효열, 충의, 덕의, 은둔, 혼인, 처첩, 기상, 붕우, 노비, 배우, 창기 등으로 나누어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논개의 이야기는 처첩, 노비, 창기에서 다뤄지지 않고 인륜편에 실려 있다. 《어우야담》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계사년에 창의사 김천일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군사들은 패배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아래는 깊은 강물이었다. 왜적들이 이를 바라보고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오직 왜장 하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논개는 미소를 띠고 이를 맞이하니 왜장이 그녀를 꾀어내려 하였는데 논개는 드디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함께 뛰어들어 죽었다.

 

 

《어우야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논개가 관기였다는 점과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만 나온다. 1987년 해주 최씨 문중에서 발행한 《의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에 논개 관련 부분이 언급되는데, 최경회를 의미하는 경상우병사증좌찬성최공시장(慶尙右兵使贈左贊成崔公諡狀)에 논개 관련 부분이 언급되어 있다.


 

공의 부실(副室)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에서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의암이라고 부른다 (且其副室 公死之日 盛服婆娑於江中巖石 誘賊長因而俱墜死 至今人稱義巖)

이것을 근거로 논개가 최경회의 부실(副室)로 알려진 것이다.

 

 

의암과 의암사적비

 

 

1625년(인조 3년) 논개가 순국한 지 32년 뒤 논개가 떨어져 죽은 바위에는 진주의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논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의 둘째 아들 정대륭이 진주로 이사를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글씨를 써서 바위에 새겼다. 1651년(효종 2년) 경상우도의 재난을 살피러 조정에서 파견된 오두인이 진주에 들렀다가 바위에 새겨진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보고, 촉석루에 의암기(義巖記)를 지었다. 1721년(경종 1년), 경상우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의암사적비를 의암 바로 위에 세워 그 뜻을 기렸다.

 

 

의기사

 

 

1739년(영조 16년)에는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가 논개의 애국충정을 추모하는 사당인 의기사를 촉석루 옆에 세웠다.

1846년 장수현감 중주석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논개생장향수명비(論介生長鄕竪名碑)’라는 추모비를 세운 후, 1955년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의암사(義巖祠)라는 사당을 건립하였다. 현재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논개가 태어난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 마을에는 논개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의암별제

 

 

1868년(고종 5년) 진주목사 정현석(鄭顯奭)의 노력으로 매년 6월 논개를 기리는 의암별제(義巖別祭)가 마련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중단되었다가 최근에 진주논개제로 부활하였다. 진주논개제는 매년 5월 의암별제 서막으로 시작된다.

 

 

재조명 노력

 

 

한편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는 유교사회에서 첩이 되었다는 점, 혹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점, 그의 숙부가 가산을 탕진한 점 등으로 문중에서 기피인물로 외면당하다가 1970년대에 방계 후손들이 그의 묘소를 방문하면서 재평가 논의가 이루어졌다. 묘소는 최경회와 정실, 계비가 안장된 묘소 아래에 안장되어 있고, 유인신안주씨지묘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논개 영정

 

 

2008년 2월 4일 문화관광부는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그린 논개 그림을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하였다. 진주시는 표준영정 원본을 진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사본을 의기사에 봉안해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원래 의기사에는 이당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 그림의 복사본이 걸려 있었으나, 고증이 잘못된 데다 김은호가 대표적인 친일화가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2005년 6월 10일 진주 지역 시민단체가 의기사에 봉안되어 있던 김은호의 논개 그림을 강제로 뜯어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논개의 출생지인 전북 장수군과 순국지인 경남 진주시가 공동으로 표준영정 제작에 합의해 전국에 걸쳐 공모를 하였으며, 윤여환 교수가 새로 그린 그림이 표준영정으로 채택되었다.

 

 

 


수주 변영로 - 《논개》
만해 한용운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고은 - 《논개》
임종성 - 《논개에게》

서사시[편집]
모윤숙 - 《논개》

한시[편집]
다산 정약용 - 촉석루차판상운

전통 시가[편집]
임동권 - 한국민요집1
장두환 - 촉석루
정연보 - 진주의기사

 

 

그 외

 


1980년대에 가요 '논개'를 가수 이동기가 불렀고, 이 노래는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다. 가사 "꽃입술 입에 물고 바람으로 달려가 작은 손 고이 접어 기도하며 울었네...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떠내려 간 그 푸른 물결 위에..."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지금도 대학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다.

 

 

황진이에 어울리는 하지원

어우동에 어울리는 한지민

논개에 어울리는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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