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살인마 사가와 잇세이 이야기
짝사랑 하던 여인을 살해하고 그 자리에서 살해된 시체를 상대로 간음을 한 뒤 토막내어 식육으로 먹었다. 살코기는 발라서 보관하고 나머지 부분을 버리다 주변 사람에게 발각되어 결국 체포, 하지만 아무런 죄값도 받지 않고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다. 현재도 자유인으로 잘 살고 있다.
다음은 위키백과에 나온 사가와 잇세이의 백과사전 내용이다. 백과사전 내용에 몇가지 사항을 첨부해 설명해 본다.
사가와 잇세이(일본어: 佐川一政 さがわ いっせい, 1949년 6월 11일 ~ )는 1981년 6월 11일에 발생한 파리 인육 사건의 범인인 일본인 남성이다.
그는 범행 후 체포되어 범행을 자백하였으나, 심신상실 상태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가 범행의 경험을 토대로 1983년에 프랑스의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쓴 글은 같은 해 9월에 '안개 속'(霧の中)이라는 제목을 단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책은 20만 권이 넘게 팔려나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로 유명세를 타게 되자 '신센죠노 아리아'라는 성인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타블로이드 신문에 컬럼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사가와 잇세이는 파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일본인 유학생이었다.
1981년 6월 11일, 학급 동료였던 네덜란드 여성 유학생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를 집으로 불러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그는 그녀를 소총으로 살해한 후 옷을 벗겨 사체와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녀의 사지를 토막낸 후 사진을 촬영하고 사체의 일부를 후라이팬으로 요리하여 먹었다.
6월 13일, 남은 사체를 여행 가방에 담아 불로뉴의 숲의 연못에 유기하려다 목격자에게 발각되자 도주하였다. 사체를 발견한 목격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자, 다급해진 그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일본으로 도주를 시도하였지만, 이틀 후인 6월 15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범행을 자백하였고, 정신감정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지만, 의사가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심신상실로 그는 무죄가 선고되고, 교도소가 아닌 앙리 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 되었으며, 14개월 후 국외추방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도쿄 도립 마츠자와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1년후인 1985년 8월에 퇴원하였다.
일본 경찰은 귀국한 그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 경찰측은 불기소처분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의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는 범행 이전부터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적 도착증을 종종 드러내곤 하였으며, 고교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에게 인육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자주 의논했지만 의사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와코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인근에 사는 중년의 독일인 여성을 먹을 목적으로 자택에 침입하여 체포되었으며, 당시 구리타 공업의 사장이였던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키라의 합의금에 고소가 취하되었다.
- 잇세이는 미숙아로 태어나서 외모가 왜소한 남성이었다. 그의 키가 150cm대에 머물렀으니 얼마나 왜소한지 알 수 있다.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범죄심리학자는 잇세이의 심리상태에 대해 부모의 과잉애정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하게 해준 것들이 점점 자라면서 잇세이의 왜소한 외모와 못생긴 얼굴로 인해서 얻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나자 부자연스러운 심리상태가 생겼다는 것이다. 다 가질 수 있었지만 여자는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잇세이는 청소년 시기 여자들에 대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외모 때문이었다.
- 일본 대학생 시절 이미 이웃에 사는 독일인 여성 집에 침입하여 강간(또는 식육)하려고 했으나 왜소한 외모로 인해 오히려 여성에게 제압을 당했다. 이 때 아버지가 거액의 합의금으로 고소를 취하했고 얼마 뒤 잇세이는 파리 유학길에 오르는데, 대부분 풍족한 집에서 말썽을 부린 자식에게 하는 방법 중 하나인 해외유학길을 가족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잇세이의 특징은 자신보다 키가 크고 우월한 외모를 가진 서양여자에게 꽂혀 있었다. 이웃 독일여성집에 침입한 이유도 그가 백인여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가족들은 해외유학길을 보내는 잇세이라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차려준것과 다름 없었다.
한눈에 반한 르네에게 접근한 잇세이는 그녀를 집으로 불러들여 총으로 쏴 죽이고 간음을 하면서 프랑스어로 사랑한다라고 말을 하면서 그 때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그녀를 결국에는 자신이 가지게 되었고 사랑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엉덩이살을 먹기 위해 칼로 도려냈으나 특유의 지방(노란색)만이 나오자 결국에는 손으로 직접 파헤치며 해체를 하기 시작하는데 잇세이가 먹어본 부위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다리, 그 중에서 허벅지살이라고 한다.
잇세이가 죄값을 받지 않은 건 정신장애 감정과 더불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는 모든 범죄에 대해 정신감정을 받게 되어 있는데 잇세이는 여기서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게 되고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서 감호 생활을 시작하는데 일본에 있는 아버지는 프랑스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아들을 변호하게 한다. 프랑스 정부를 좌지우지 할 수있는 능력을 갖춘 최고의 변호사는 잇세이가 일본인이고 살해된 피해자는 네델란드인으로 프랑스 세금으로 잇세이를 치료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일본으로 보내어 일본에서 치료받게 하는게 최선이라고 설득한다. 이에 프랑스 정부 역시 동의하며 잇세이를 재판없이 일본으로 강제출국 시켜 버린다.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거는데 어떤 경우든 프랑스는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라는 약속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프랑스 땅에서 타국 사람들끼리 피의자, 피해자가 된 사건이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자국민이 포함된 사건이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일본에서도 역시 아버지가 영향을 끼쳐서 아들이 귀국하자마자 정신병원에 보내는 조건으로 언론을 무마하며 잇세이 사건을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혀지도록 노력한다. 물론 일본 사람들은 잇세이가 평생 정신병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잇세이는 잠깐의 쇼(?)를 끝내고 2년이 안되어 정신병원에서 퇴원, 공식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다.
이후 재미있는 건 잇세이가 조용히 지내지 않고 이 사건을 토대로 책을 출판하여 베스트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모든 미디어에 출연하며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고 대중은 잇세이의 말에 촉각을 기울였다. 이쯤되면 한국에서 개봉한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영화와 굉장히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나는 살인범이다는 잇세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영화는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자가 책을 내는것이고 잇세이는 범죄는 있었지만 처벌은 받지 않은 특이한 사건으로 무죄도 아닌 범죄성립이 안된 케이스다. 공소자체가 안되었고 재판조차 없이 풀려난 경우다. 심지어 일본에서 잇세이를 추가조사하여 기소하려 했으나 프랑스 정부가 수사자료는 줄 수 없다고 하여 일본에서도 추가조사 및 처벌 역시 없었다. 프랑스 정부의 행동은 아버지와 그의 변호사 때문으로 보인다.
잇세이는 자연스럽게 말한다.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볼때 대부분 각선미(다리)를 많이 보게 되며 다리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젊은 여자(잇세이는 젊은 여자만 좋아한다)의 아름다운 다리를 보면 남자들이 흥분하듯이 나 역시 똑같다. 다만 다른 남자들은 성욕이 앞서는 반면 자신은 식욕이 앞서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와 가진 여러가지 인터뷰(해외작가, 기자들)에서 잇세이는 여자 다리맛에 대해 꽤 많은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잇세이 검거 당시, 그의 방을 수색하여 냉장고에서 꺼낸 인육들, 봉지에 있는 고기(?)들이 모두 인육으로 판별되었고 일부는 조리대에서 조리중, 일부는 접시에서 먹다만 상태로, 일부는 이미 먹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잇세이는 살인 직후부터 인육 보관까지 세세하게 모두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관했다. 수사관들은 경악했고 자료는 너무 끔찍해서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사가와 잇세이는 언론에서 인터뷰와 방송촬영을 하고 있다. 사가와 잇세이는 AV에도 출연했다. 물론 백인여성들이 나오는 AV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줄거리 야동 AV 출연도 하고 방송과 책 출판, 영화출연등으로 번 돈은 백인여성들 접대부가 있는 곳에서 흥청망청 쓰면서 자유롭게 생활했다. 정신병으로 죄값을 받지 않았지만 죄값을 받지 않은 직후부터는 정신병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사가와 잇세이의 살인은 "성욕"의 변종이다. 살인과 인육을 먹은 것 모두가 "성욕"을 채우기 위함 이었다.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이 아닌 너무나 풍족하고 너무나 많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것이 과잉상태가 되어 오히려 잘못된 성적 성향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역시 왜소한 외모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을 남자답고 강인한 존재로 각인시키기 위한 심리상태로 보인다.
동일한 조건에서 하루를 굶거나 하루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경우, 일반인들은 식욕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성욕이다. 식욕이 해소되지 않으면 성욕은 없다. 식욕이 해소된 이후에서야 성욕이 생기기 마련이다. 식욕 다음이 성욕이고 성욕 다음이 다시 식욕 그 다음이 성욕으로 순차적으로 반복된다. 이것이 정상의 범위라면 잇세이는 식욕이 아닌 성욕이 1순위이고 그 다음에 식욕과 성욕으로 넘어가는게 아니라 분화하는 것으로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단계 증상이다. 성욕이 우선인 상태에서 성욕구를 해소하는데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다. 일반인 경우와 굉장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사가와 잇세이.
10평 남짓한 작은 집에서 살기도 힘들다는 일본에서 응접실이 있는 넓은 집과 풍족한 생활로 지금도 일본에서 잘 살고 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과 자신의 활동으로 얻는 수입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한번도 직업을 가진 적이 없고 지금도 놀고 먹는 백수다. 태어날 때부터 풍족한 삶은 여전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송에서 그가 회상할 때 가끔 짓는 특유의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한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실제 이야기, 1시간 동안 그의 인터뷰 영상과 범죄영상을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도 미쳐버리게 만든다. 그를 직접 상담한 일본 범죄심리학자의 미묘한 떨림이 사람들에게도 전해질까?
완전 자유인으로 어떤 처벌도 제재도 받지 않는 사가와 잇세이는 백인여성들과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현재는 백인여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백인여성이 이제는 싫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본이나 한국, 중국의 동양여성들도 백인여성만큼 성숙하고 조숙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여자에게 푹 빠져있다고 직접 말하지만 얼굴이 많이 알려진 상태에서 상대할 일본 여성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해외여행과 한류열풍을 고려해보면 한국여행에서 전문여성(직업여성)을 상대로 섹관광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중국의 직업여성들이라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일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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