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를 산에 버린다는 고려장(풍장)과 몽고반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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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통역사

노부모를 산에 버린다는 고려장(풍장)과 몽고반점 이야기

by 깨알석사 2016.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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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 늙고 쇠약한, 병든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는 장례 문화

몽고반점 : 몽골족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엉덩이 부위의 푸른 반점 (우리나라 사람 90%가 몽고반점이 있음)

비정상회담에 일일 몽골대표가 나왔다. 생김새가 그야말로 우리랑 완전히 똑같은데 따지고보면 비슷한 생김새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는 뿌리가 같다) 뿌리가 같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 할 수도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 지형으로 이주했다는 것도 어느정도 일리 있지만 근대국가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유입된 사람과 나중에 들어온 사람과의 유전 변이 과정을 따져 본다면 지금처럼 몽고반점이 흔할 수는 없다. 정착민과 유목민의 결합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한쪽의 징표(몽고반점)가 전체가 될 수는 없는 법, 전혀 새로운 땅에 기존 정착민이 한명도 없이 몽골리안들이 들어왔다면 몰라도 분명 한반도에는 이미 정착한 세력들이 따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의 후예라는 몽고반점이 한국인의 대다수에 있다는 건 몽고족의 피가 섞인 사람들의 후손이 많다는 증거, 몽고반점을 많이 갖게 된 이유는 그래서 세 가지 설로 나뉘기도 하는데 하나는 유목민의 한반도 이주설이고 하나는 침략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귀족 가문의 번영설이다. 몽고하면 침략이 떠오르고 징키즈칸의 활동을 보더라도 세계 정복과 다르지 않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그들의 차지가 되었다. 한반도 이주설은 그들이 한번도 정착민의 대다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유입은 가능하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고 침략 전쟁에서 침략한 곳의 여자들이 그들의 아이를 갖게 됨으로 인해 후손들이 많아졌다는 설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외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몽고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고려에서는 왕족이 몽고와 잦은 왕래를 했고 몽고나 중국 (몽고에서 중국으로 정착한 성이 다시 한반도로 넘어가는 경우) 에서 넘어온 성씨 상당수가 귀족 가문으로 한반도에 정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정도 기반이 있는 가문의 번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나라의 민족 구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충분히 가능한 법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상당수도 번창한 일부 가문의 후손들이 절대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김이박최정) 결국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몽고반점을 우리도 갖게 된 것으로 일부 추정하고 있다.

방송에서 나온 몇가지 이야기를 토대로 우리나라와 몽고(몽골)가 얼마나 비슷한지, 생김새 뿐만 아니라 문화가 얼마나 비슷한지 썰을 풀어보자 

우리가 몽고인과 똑같은 단일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중국 동포를 다소 낮잡아 부르는 "조선족"이라고 따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조선족은 여러 민족이 혼합된 다민족의 결정체라고 볼 수도 있다. 크게는 북방계(60%)와 남방계(40%)가 섞여 있고 만주족, 한족, 야오이족처럼 중국과 한반도, 일본 등에서 사는 다른 민족과 유전자형이 모두 비슷하다. 한족과 만주족처럼 유전자를 따져보면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 조선족은 열거된 대부분의 민족 형태가 다 나오기 때문에 조선족이라는 건 결국 북방민족과 남방민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뭐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그래서 가장 잘난 민족일 수도 있다. (다민족 결합을 통해 모든 민족의 장단점을 흡수)

몽골인들의 국민성은 착하다라는게 일반적이다.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외국인이 갖는 이미지 중 대표적인 건 착함과 친절 (중국이나 일본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들에게는 그런 표현이 많지 않다). 물론 이 하나만 가지고 동일성을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북방계가 남방계보다 많고 북방계에서 한족(중국)보다는 만주족(고구려 지역)과, 만주족에서는 몽골쪽으로 이어지는 편이라서 몽골(몽고)과는 형제의 나라라고 해도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국의 원나라가 몽고다. (칭기즈칸이 세운 몽골제국은 5대 왕조에서 원으로 국호를 바꾼다) 우리가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역사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특히 왕가(임금)쪽은 거의 몽고의 풍습과 문화를 세습한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 전통 문화중에서도 몽고에서 넘어 온 것이 많다. 임금님 수라상이라고 하는 식문화에서도 몽고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우리가 지금 한국을 코리아라고 부르는 것도 고려라는 나라 이름 때문인데 조선의 문화, 한국의 문화라는 건 고려시대에서 꽃을 피워 이어진게 많고 고려시대에는 특히 원나라(몽고)와 교류가 잦은 시대라 민족을 떠나 문화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고려에서 전쟁과 관련한 부분은 몽고의 고려침입이 연상되는 만큼 이래저래 엮인 사이)

사주 포스팅 쓰면서 여러차례 언급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12간지, 띠를 말할 때 양띠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에서 발현된 것이라면 양띠 같은 건 존재하기 어렵다 (우린 지금도 양목장이 흔치 않고 양고기도 대중적이지 않다. 양 보다는 염소를 키운다) 양띠라는 12간지만 하더라도 (물론 중국을 통해 들어왔지만..) 양은 대륙에서 넘어온 풍습이다. 원나라가 지금의 중국과 다르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중국이나 몽고와는 뗄 수 없는 사이. 하지만 확실히 구분할 건 중국과 몽고는 민족이 다르다는 거~ 같으면서도 같지 않다

우리나라도 피를 좋아하는 나라다. 대표적인 것이 "선지" 유목민처럼 피를 대놓고 마시는 건 여전히 거부감을 갖지만 피요리는 지금도 즐긴다. 물론 보약이라고 맹신해서 동물의 피를 잡자마자 마시는 건 우리나라 아저씨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건 어렵지 않다. 잉카제국이라면 아메리카 대륙을 말할테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흔히 말하는 인디언) 은 물론 남아메리카의 원주민까지 모두 아시아의 알타이족과 같은 뿌리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러시아 연구결과)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다시 호주의 원주민과 친족 사이라고 밝혀졌는데 어떻게 완전히 다른 지역 (거의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음) 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DNA로 이어졌는지 그것은 아직 풀지 못했다. (대륙판이 이동해서?)


인류 기원에 대한 부분을 볼 때 몽고반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 몽고인에게 많이 보이는 몽골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반점은 반점이 많은 지역이 먼저고 주변으로 흩어져 나갈텐데 잉카제국이 있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게도 몽고반점이 있다는 점을 들어 알타이족이 뻗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육포에 관한 부분은 그런 연관성으로 보아야 할 듯...(물론 우리나라도 육포 만들고 즐겨 먹는 나라..고기는 국요리가 많은 편인데도 육포가 성행한 건 몽고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방송에서는 몽고 유목민의 시력이 7.0 이라는 말도 나온 적이 있음

산과 해, 그리고 밤에 뜬 별로 지도를 대신한다는 몽골인, 우리나라도 별과 산, 해로 길잡이를 하는 건 비슷하다.

여기서 말하는 풍장은 시신을 묻지 않고 들판에 그대로 두는 걸 말하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고려장"이 바로 풍장이다. 다만 고려장은 산 사람을 그대로 두고 온다는 변질된 풍습으로 만들어져 오해를 낳고 있다. 풍장 자체는 아시아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례로 오래전 몽골제국이 흥하던 시절에는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몽고에서도 불법으로 금지한 장례다. 

고려장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몽골제국이 한창 날리던 원나라 시대와 겹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장이라고 해서 한반도에서 행해지는 장례문화 (봉분, 땅에 묻되 지금의 산소처럼 동그란 봉을 만들어 주는 것)를 통합해 고려장이라고 불렀지 (한반도는 곧 고려라는 인식이 강해 고려라는 말은 우리를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산 사람을 늙고 병 들었다고 해서 산에 버리는 건 고려장이 아니다.

고려장이 고려시대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과 관련해 조선시대 전체 역사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지금처럼 풍장을 지내지 않는 이유가 나와야 할텐데 단 한줄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건 양반 가문 이상에서 정상적으로 행해지던 우리의 고유 풍습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를 없애고 대신 자신들의 "요괴"인 오니를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로 둔갑시킨 것처럼 장례 문화에 있어서도 변질시켜 국민성과 민족성을 낮잡아 보게 할 의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풍장을 다르게 해석해서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둔갑)

[교육/전통역사] - 우리나라 도깨비 이야기

물론 이제 가면 언제오나~ 하면서 가마 태우고 장례 치우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 장례의 풍경이라지만 그것도 먹고 살 만한 양반 정도 되거나 밥에 풀 칠은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 일 것이다. 노비는 물론 천민 같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장례식은 물론 무덤조차 만드는게 어려웠고 방에서 제대로 염을 해주는 집이 있으면 마당에서 지푸라기로 엮은 거적때기 같은걸로 대충 시신을 덮어주는 경우도 많았던 것처럼 일반 백성중에서 평민과 천민들은 풍장을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를 묻은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동안 같이 지내는 삼년상이라는게 대중적인 인식 아니던가.

그런 상황에서 고려장과 같은 이야기는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만 몽고의 이야기처럼 몽고의 풍장이 우리에게도 있었고 그런 걸 일제가 악용하여 병들고 쇠약한 자들을 방치하여 죽게 내버려 둔다고 풍습처럼 꾸민 것이 고려장의 실체일 것이다. (실제 비슷한 일이 있었어도 그건 풍습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이유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우리 땅을 시점으로 대륙으로 진출하려고 하고 실제로 대륙 정복을 시도했던 만큼 대륙과 관련한 풍습이나 문화는 자신들의 것보다 우수하면 안되고 미련하거나 미숙하거나 저질스럽거나 몰상식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풍장에 빗대어 스토리를 붙이고 중국의 설화(부모와 자식간의 효와 관련한 교육적인 내용)를 교묘히 짜집기해서 만든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일제 시대에 본격적으로 고려장이라는 설화가 등장했다고 하지만 고려장이라는 것이 대중적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건 (정작 우리가 모르던 풍습) 오히려 광복 이후다. 일제와 연관성이 100%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소설과 영화로 만들면서 마치 우리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와전 된 케이스로 고려장이라는 원래 장례(고려시대 봉분을 비롯한 모든 장례문화를 지칭)에 풍장이라는 것을 엮으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효"에 대한 걸 소재로 하여 무언가 자극적인 걸 만들어 '교훈'을 주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은 모두 해피엔딩이고 중국 설화의 비슷한 이야기도 전부 해피엔딩이다. (부모를 모시고 돌아온다)

일제가 대놓고 직접적으로 역사 왜곡을 시도했다면 해피엔딩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고 교훈도 효가 아닌 조선인의 민족성에 관한 것이 나와야 할 것이다. 결국 고려장에 대한 건 풍장 + 고려장(조선의 고유 장례 문화 이름) + 자극적인 소재 = [소설] 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 중 누군가가 시도한 멍청한 짓이 아니었나 싶다. 그걸 시도한 이유는? 효에 대한 교훈과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겠지 (물론 자극적인 만큼 전래동화처럼 히트치기는 했다) -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작가가 일부 허구라고 밝혀도/역사 드라마) 보고 그게 전부 진짜인줄 알고 그게 전부 사실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가끔 지금도 영화를 볼 때 사실에 근거했다고 하지만 허구적인 요소가 많은 경우 논란이 되기도 하고 엉터리 영화라고 오히려 비판하기도 하는데 바로 그런 오해로 인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고려장도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에선가 누군가의 썰과 풍자가 실제 "역사"처럼 오인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웃자고 만든 소재인데 그게 진짜라는 "허구"속의 진실을 포장해 설명하게 되면 소설이 곧 역사책으로 둔갑되는 건 한 순간이다.

학자들도 고려장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확산된 시점이 48년 (해방 이후로 일제시대 아님) 과 60년대 고려장 영화가 나오고 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영화 제목 자체가 고려장. 스토리는 우리가 알던 그 이야기)

몽골인은 늑대가 조상이고, 한국인은 곰이 조상이라고 하는 이 부분, 사실 이게 바로 몽골인과 우리가 조금 다른 이유다. 조상을 달리 본다는 건 뿌리 민족이 다르다는 말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 태백산이 어쩌니 백두산 호랑이가 어쩌니 하면서 우리나라 지도도 호랑이로 만드는데 우린 곰이다..백두산 호랑이가 우리것이 맞지만 동물만 놓고 보면 우리는 호랑이가 아닌 곰을 숭상하던 민족이다. 개천절, 고조선이 말해주고 있지 않던가

이 곰을 숭상하는 민족들 중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시베리아(러시아), 만주(중국)쪽에 많이 있는데 이들의 문화는 그야말로 우리네 시골 풍경이고 어떤 특정 단어나 풍습은 거의 우리와 똑같다. 아마도 원래 한반도에 있던 원주민(우리 조상)은 곰을 신으로 모시는 민족 중 하나였을테고 한반도로 넘어와 살다가 나중에 몽고족과 결합되면서 시조(환웅,고조선)와 함께 몽골 문화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곰을 숭배하는 민족은 말과 언어가 달라도 단어가 비슷하거나 발음이 같은 경우가 많다. 도구같은 명칭은 물론이다. 지금은 중국이 판다를 대표로 해서 곰을 중국 대표 동물로도 생각하는데 역사왜곡이나 동북공정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가 곰에 대한 많은걸 챙기지 않아 아쉽다. 우리는 곰에서 태어났다고 배우지 않던가...ㅠㅠ)

국가와 민족을 따질 때 그 민족이 전통적으로 내세우는 동물이 무엇이냐도 뿌리가 어디인지 간략하게 유추할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다.

몽고가 최고로 생각하는 운동은 씨름, 역시 우리나라도 씨름을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해왔다.

따지고 보면 이런 씨름과 같은 민속놀이도 몽고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씨름은 물론 축제 장면도 우리나라 전통적인 풍경과 얼추 비슷하다. 물론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도 역시 명절날 씨름 경기가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대륙의 3분이 1에 해당하는 땅을 정복하려 했다는 것으로 서양에서 칭기즈칸을 나쁜 사람으로 몬다면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조그마한 섬나라 영국 역시 세계를 무대로 식민지를 구축한 대표적인 정복 국가로 자신들의 국토보다 수백배 더 큰 영토를 노렸고 실제로 가진 건 영국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의 왕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나쁘게 배우지는 않는다. 

서양의 문화가 앞서고 그것이 오히려 동양권으로 넘어오면서 피해를 본 그들이 아시아의 칭기즈칸을 나쁘게 매도한 것일 뿐, 반대로 동양에서 선진 문화가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해 세계의 주도적인 역할을 아시아권이 나라들이 하게 되었다면 영국의 동일한 행태와 왕실 가문은 똑같이 비난 받았을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 정책과 침략으로 얻은 땅은 몽골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래 자신들의 국토와 비례해서 본다면 더 욕심을 부린 건 유럽) 

칭기즈칸의 아들과 동생들은 영토를 분할해 지배하였는데 그들이 지배한 영토의 나라 이름이 재미있게도 "한국"이다.

칭기즈칸 본인은 몽골본토 (넷째 아들이 계승), 첫째 아들은 남러시아의 킵차크 초원지대 (킵차크한국), 둘째 아들은 중앙아시아 (차가타이한국) 셋째 아들은 몽골고원 지대 (오고타이한국), 그리고 동부 만주지방은 동생들이 통치하도록 했다.남방 지역은 칭기즈칸 일족의 공유로 하고 다루가치 (총독) 와 군대를 주둔시켰다.

우리나라의 한국과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나라 이름을 비슷하게 쓰는게 흔치 않는데, 몽골제국과 연결점이 많은 우리로서는 재미있는 부분일 수 있다.

장위안이 자신들의 국사로 배운다면서도 조금 애매하다는 건 원나라가 몽고이기 때문..

결국 따지고 보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몽고제국과는 뗄 수 없는 사이고 우리나라 사람 90%가 몽고반점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족의 이동만 놓고보면 독일과 우리나라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연구들도 있어서 가운데 몽골라인에서 유럽과 동아시아로 뻗어나간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독일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이 한국땅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과 비슷) - 참고로 유럽 전체에서 몽고반점은 5%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

몽고반점 있는 우리는 몽고인의 후예냐?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데 100% 순혈의 몽고족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에 있던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는 고대 민족(조선족의 뿌리)과 몽고족, 만주족, 한족이 결합된 케이스로 봐야 하며 그 결합된 다민족(한반도로 들어온 이주민) 중에 몽고족이 많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참고로 몽골인들이 가장 갖고 싶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매". 우리나라 매가 최고였는데 몽고가 고려에게 "매"를 끊임없이 상납(?)할 것을 요구한 건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야생에 길들이기 전 새끼매를 사람이 키워 길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매를 "보라매"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공군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이고 서울에도 유명한 보라매 공원이 그 보라매다. 보라매의 어원에 관해서는 몽골어 (보로) 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골과 조선땅에서 고급 레포츠로 귀족층만 하던 고급 스포츠가 매를 이용한 사냥이다. 이래저래 공통점 엄청 많은 나라...

우리나라 조상의 뿌리에 대해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여자"가 된 것처럼 몽고반점만 놓고 보면 몽고는 본가(친가)가 될 수도 있고 고대 한반도에 있던 민족(곰을 신으로 모시던 민족으로 몽골제국이 점령한 엄청 많은 부족 중 하나)은 외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일민족이 아니라 두 민족, 두 부족이 결합해 생긴 제3의 민족이 한민족, 조선족일 수도 있다는 것 (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담에 하자)

중국인보다 오히려 몽고 사람이 우리와 외형이 더 닮았고 비슷하다. 고려시대는 몽고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5천년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왕성하고 대우받는 부흥의 시기는 고려, 우리나라가 지금도 코리아(고려)라고 불리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몽고의 영향을 제대로 받던 고려의 역사를 보면 몽고와 우리는 비슷한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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