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스님, 승려, 중 그리고 스승/스승님/선생님의 뜻과 기독교의 [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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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통역사

불교에서 말하는 스님, 승려, 중 그리고 스승/스승님/선생님의 뜻과 기독교의 [님] 논란

by 깨알석사 201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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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교인이다. 물론 떡 먹을때는 불교신자가 되기도 했고 초코파이를 먹을 땐 기독교의 초코파이 신자가 되기도 했었다. 물론 햄버거를 준다는 소문에 한동안은 천주교를 다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군대라는 틀속에 갇힌 공간에서나 있었던 일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무교인이다. 물론 무교인이라면 무신론자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또 좀 다르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관심이 있어 여러가지 잡다한 내용까지 공부한 적이 있는데 종교라는 것에 있어,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불교라는 건 여러가지로 많이 배워두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원래 이 야그는 스승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인데 스승이라는 말 자체가 불어용어와 관련이 깊다보니 종교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런 불교 이야기를 다루다보면 불교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되는데 결국 오늘 주제는 스승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불교와 스님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스승이라는 말, 물론 어원이라는 것이 100% 확실하게 딱!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게 없다. (사실상 거의 없다) 다만 유추하고 추적하는 단계에서 어느정도 논리있고 객관적인 걸 찾아 대입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어원]과 [유래]는 절대 떼어내서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말은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현상, 사건에 의해 유래된 단어나 말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스승의 은혜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스승은 불교 용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고대부터 불교를 수입(?)해 사용하였기에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 토착문화라고도 볼 소지가 많다. 특정 종교나 특정인에 대한 것 보다는 그 의미가 더 넓다는 것인데 스승이라는 말 자체가 큰 깨달음을 얻어 진리를 깨우친 사람으로서 배울것이 많고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하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선생님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이라는 말 자체도 상당히 좋은 말로 높임말이다)

선생이라는 말 역시 나보다 [먼저 깨우친 사람]이라고 짧게 설명할 수 있는데 누구는 죽을때까지 깨우침을 얻지 못한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깨우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런 선생은 보통 우리나라 옛 문헌에도 나오는데 보통은 관직이라고도 불리울 수 있는 높은 자리의 [국사-왕을 자문해주고 조언해주는 사람] 에게 쓰는게 선생이다. 독립운동사와 관련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화속에서 항상 누구 누구 선생~ 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로는 가장 높은말로서 물론 지금도 교사가 아닌 경우라도 상대방 호칭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는 말을 덧붙여 호명하기도 한다. (동사무소나 공무원들이 민원인에게 보통 많이 쓰기도 하는 추세)

스승과 선생이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선생이 스승보다 의미가 더 크다. 선생은 모든걸 깨우친 사람이고 성인에 가깝다. 스승은 가르침을 전해주는 선구자로서 무언가 배우고 가르치는 경우인데 물론 이런게 가능하려면 깨우침을 얻어야 하는게 보통이기에 진정한 스승은 선생과 같기에 비슷하게 쓰일 수 밖에 없다. 다만 스승은 가르침의 행위와 받는자와의 관계를, 선생은 가르침과 깨달음이 있는 자 자체를 지칭한다는 점만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다. 스승은 제자라는게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선생은 그렇지 않다. 스승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 제자라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상 및 그들의 관계를 말하며 선생은 깨달음을 얻는 그 사람만을 의미한다. 아주 포괄적으로 본다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바로 선생에 해당한다.

이런 스승이라는 말을 잘 보면 [스+승]인데 이 스와 승은 두 사람을 의미한다. (스)님과 (승)려다. 스님과 승려를 합쳐 우리는 [중]이라 부른다. 중은 깨달음을 얻기 전, 해탈하기 전 현생에 머물며 수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그들 [중] 안에는 선생(스님)이 있고 제자이자 수행자인 (승려) 가 있을 뿐이다. 우린 불교인이 아니기에 그냥 그들이 부르는 스님 또는 승려, 또는 중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사용할 뿐이다. 

불교인이 아니라면 스님이라 부르든, 승려라 부르든, 중이라 부르든 상관없다는 말이다. (불가로 입적한 것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는 모두 같은 대상을 지칭할 뿐). 스님이 보통 중의 높임말로만 알고 있지만 스님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경우이고 그 깨달음의 경지에 아직 오르지 못한 수행자는 승려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 관계에 대해 알 길도 없고 크게 알 필요도 없어 그냥 똑같은 스님옷만 입은 모두 똑같은 사람들로 보이기에 높임말인 스님이 모든 중의 대명사로 불릴 뿐이다. 대체로 승려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기에 일반인에게는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두 스님이라고 불리우는게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임금님에게는 국사라는 조언자가 있는데 아시다시피 대부분 불교에 속한 스님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드라마로 익숙한 빡빡머리 애꾸눈 궁예가 있는데 그만큼 불교인들은 가르침을 주는 대상으로서 존경받는 경우가 많았다. 임금에게 가르침을 주는 자들인 만큼 이들을 높여 부르게 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스님 옷만 보고 저 사람이 불교에서 말하는 스님인지 승려인지 알길이 없기에 깨달음을 얻었든, 아직 얻지 못해 수행중이든 중에게는 모두 (스)님 + (승)려라 부르게 되며 수행자의 경우라고 해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경우가 많기에 일반인들도 어려움이 있거나 정신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자문을 얻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승(불교인들)이 스승님(지금의 선생님과 같은 의미) 으로 확대 된 것이다.

간혹 스님은 잘못된 표현이다. 승려 또는 중이 맞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더 정확하게는 그냥 [중]이다라고 하면서 비하의 의미로 중놈, 땡중이라고 부른다. (사실 어르신들이 말하는 중놈이나 땡중은 중으로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떳떳하지 못한 부정한 행위를 한 중만을 의미한다) 스님은 단순한 높임말이 아니다. 해탈의 경지에 올라 일반인은 물론 승려들 모두에게도 존경받고 추앙받는 큰 사람, 그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요즘에는 보통 다 스님이라고 하다보니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경우 따로 [큰 스님]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미상 우리에게는 스님=승려=중이 모두 같지만 그 사람들이 가는 길 자체가 고된 수행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고행길이기에 우리에게는 모두 스승이 될 수 밖에 없고 되는 경우가 많아 그들에게 모두 [스님]이라고 부를 뿐이다. 불교와 관련없는 사람이라면 스님이라고 부르는게 오히려 더 예법상 맞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스님이라는 말에 항상 태클을 건다. 신부와 목사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라고 꼭 붙여서 높이지 않음에도 스님은 무조건 스님이라고 붙여 말한다하여 종교차별이라고 하는데 이건 뭐..종교적 해석과 우리나라 고유의 상황을 전혀 맞물려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호칭 [님]만 보고 말하는 것으로 애석할 뿐이다. 애초에 스님이라는게 선생의 개념(깨달은 자)과 스승(가르침을 주는 자)과 관련이 깊기에 워낙 오래전부터 당연시 불렀던 것이고 고유명사가 된 것이지 단지 스(사 - 한자발음/사부)에 님만 붙여서 무조건 높여 부른다고 보면 안된다. 절에 가면 우리에게는 같은 스님이어도 어떤 스님이 고승에게 [스님]이라고 부르는데 그 [스님]이라고 하는 분은 수행하는 승려에게는 [스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다 스님이어도 그 안에서는 스님이 따로 있는 셈이다.

중국영화 즐겨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 사부~ 사부님! 한 수 가르쳐 주십시요!. 우리나라 영화 중에 두사부일체라는 영화가 있다. 명 대사가 나오는데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 사부라는 말 자체가 스승과 아버지다. 

목사의 (사)는 스승, 신부의 (부)는 아버지, 스님의 (스)는 스승 - 중국 (사) 발음, 목사와 신부는 서양에서 온 것이고 사(스)와 부 단어외 다른 단어와 함께 붙어 쓰기 때문에 (님)이라는게 필요없다. 그리고 (님)의 의미를 따진다면 그것 따위는 이미 포함된 경우다. 스승과 아버지이기 때문

스님은 님짜를 빼면 스(사)만 남는다. 사부라는 말이 쓰일 때 비로서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걸 알지만 사부가 아닌 "사"라고만 하면 뭔지 알간? 사님(스님)이라고 해야 알기 쉽다. 외자이기 때문에 더 "님"자가 필요한 경우로 존칭의 개념보다는 그 시대에 따라 필요에 의해 붙여진 것 이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결국 신부, 목사, 스님은 모두 스승과 아버지라는 공통점이 있고 목사와 신부는 서양의 문화, 스님의 동양의 문화, 서양의 문화에서는 아버지(신부)와 스승(목사)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스승(스님)만 있다. 물론 동양적 관점에서는 스승도 아버지고 아버지가 곧 스승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 같다. (스님의 님과 목사, 신부의 호칭 차이는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라는 것..) 

꼭 불교, 기독교를 나눠 생각하지 않아도 스님의 스님은 깨달음을 얻어 가르침이 있는 자를 뜻하고 목사나 신부는 그게 아닌 교리를 따르고 실천하는 실천자에 가깝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말이 안맞을 수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상대적이고 선구자로서의 선생이지만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는 절대신이 있기에 엄밀히 따지면 가르침을 얻기 위한 수행자와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실천자로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스승에 관한 풀이라 종교적인 이야기는 깊게 들어가지 않겠지만 불교는 수행을 통해 부처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게 핵심이고 기독교나 천주교는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분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기에 다른 부분이 많다. 불교의 부처님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기독교의 예수님은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스님에 님을 빼려면 원래 이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고 (존경심을 담은 높임말이 안됨) 승려라고 무조건 불러야 한다면 그건 오히려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독하는 경우다. 물론 큰 스님과 같은 분에게만 스님을, 다른 중에게는 승려라고 해야 한다면 뭐 할말이 없지만 불교에 입적해 따르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는 아닌 셈이기에 당신이 [중]이 아니라면 따질 것도 안된다.

승려라는 말 자체가 승(중), 려(나그네) 다. 절의 주지나 큰 스님에게 무조건 다 승려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 수행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고 현대식으로 풀어본다면 마치 제자와 선생의 관계에서 선생도 제자, 제자도 제자로 불러야 한다는 것과 같다.

내가 본 영화중에 달마야 서울가자~ 라는 영화가 있다. 절에 임시로 살게 된 건달들이 실수로 불상을 파손했는데 이걸 알게 된 승려들과 건달들과 싸움이 생겼다. 이 때 큰 스님께서 아무렇지 않다고 중재했는데 이런 스님의 중재안에 다른 스님들은 어떻게 불상 파괴한 것이 가볍게 볼 것이냐며, 부처님을 훼손하였다고 주지스님께 반박을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세부적으로 기억이 잘 안나지만

불상이 부처로 보이느냐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말을 한다. 큰 스님은 부처님의 형상을 본 떠 만든게 어떻게 부처님이 될 수 있느냐며 부처님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고 저건 그냥 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략 그렇게 말했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본 말 중에 가장 인상 깊고 불교인들에게 진정한 종교적 깨달음을 준 부분이 아닌가 싶다. 진정 우리가 보는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미숙한지 알려준 장면이다 (난 그 때 코미디 영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ㅡ.,ㅡ;;;. 이 장면만으로 영화 안에서도 다른 스님들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스님의 어원은 보통 스승님으로 보고 있다. 그 스승은 (스)님과 (승)려를 뜻한다. 스님의 님을 태클걸면 스승이라는 말도 태클이 걸린다. 그건 삼국시대 이전 고대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 많은 걸 부정하게 된다. 결국 스님의 님자는 태클 대상이 아닌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면 신통방통한 기술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걸 알려주고 깨우쳐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스님들은 도사와 같이 생각하며 신과 인간의 중간쯤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보게 된다. (다른 종교인들과 다른 점 중 하나다)

환웅의 웅은 스승을 말한다. 웅은 스승이라는 뜻을 가졌다. 절에 있는 대(웅)전도 마찬가지 의미다. 부처를 말할 때 [여래]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마찬가지로 스승이라는 뜻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해석하기에 따라 그것이 [신]으로 보일 수 있어도 단편만 보면 여지없이 선생과 스승의 개념이 가장 크다. 나보다 앞선 사람이라는 뜻이고 나에게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 부처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불교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예수님이 되려고 하는게 아닌 만큼 신부님, 목사님, 스님의 [님]은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안된다.

네이년 검색을 해보면 스승과 스님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하는 말이 베스트로 올라온 게 있다. 대체로 종교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적인 부분만 놓고 봐도 스승과 선생, 불교는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기록물에도 그런 말이 고대부터 존재하는데 왜 그런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교인이어도 그건 아니다싶다. 선생은 대상 그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고 스승은 제자가 가르침을 주고 배움을 주는 사람을 타인에게 제자가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런 스승에는 스님과 승려가 연관되어 있고 그 부분에서 스님은 스+님의 개념이 맞지만 단순하게 [님]을 붙여 높여 부른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무교인이고 불교인이 아니라 정확하게 설명은 안되지만 승려라고 해도 비구와 비구니가 있는 것처럼 어느정도 수련 단계에 따라 중의 위치가 달라진다고 알고 있다. 타 종교에서 스님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여 모두 승려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결국 틀린 말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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