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 갔다오고 나서 대처하는 방법 - 소금 뿌리기~ (+ 그리고 상갓집/장례식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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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통역사

상갓집 갔다오고 나서 대처하는 방법 - 소금 뿌리기~ (+ 그리고 상갓집/장례식 복장)

by 깨알석사 201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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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일, 특히 예식장은 안가도 장례식은 꼭 가야 한다는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건 사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와 문화권에서 생각하는 공통된 의견이다. 좋은 일은 빠져도 상관없지만 안 좋은 일에는 함께 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상갓집과 같은 장례식은 되도록이면 참석하는게 좋고 예의인데 그럴 때마다 상문살처럼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노심초사 해야 하는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많이 알고 있고 실제로도 많이 쓰이는 소금 뿌리기가 상갓집 다녀오고 나면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것을 과학적인 것과 무속적인 부분으로 나눠 의미를 찾아보자

보통 장례식장에 간 경우 귀가 길에 집으로 바로 오지 말고 사람 많은 곳에 들렀다가 한참 뒤에 돌아오라는 말을 어르신들이 많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 아닌 상식이기도 하다. 나에게 혹시라도 붙은 잡신, 귀신이 있다면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도록 하는 이유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에 있어 자기 살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귀신을 붙이는 것이 굉장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이고 남에게 해코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럼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해도 문상 갔다온 사람들 입장이 되면 자신도 그렇게 따라한다는게 우습지만...

여기서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내가 깨부셔 주겠다. 어르신들의 지혜라는 것은 과학적 풀이가 안되거나 못하는게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역시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구나 하면서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에서도 선조들의 말씀이나 행동이 맞다고 확인된 것들이 점차 늘고 있는데 그야말로 성인의 말씀을 어리석은 인간이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문살과 관련한 걸신들, 특히 굶주리고 배고프면서 놀기 좋아하는 이런 걸신들의 특징은 일단 밥부터 먹고 배 채운다음에 놀아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문상객들인데 문상객과 놀기 위해 들러 붙어서 따라 나간다는 것이다. 이 때 사람 많은곳에 가서 한참 있다가 들어와야 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귀신이라는 것이 새로운 사람에게 무조건 반응하게 되어 있다. 어지간해서는 무조건 옮겨가게 된다. 특히 어린아이와 여자들, 노인들에게 달려가는데 귀신들도 눈이 있어어 어린아이와 여자가 주요 타겟이 된다. 

그럼 옮겨간 사람은 무슨 잘못이 있어 고통을 받아야 할까? 하지만 그건 괜한 쓸데없는 생각이다. 처음 한번 들러붙어서 그대로 집에가 잠자리에 함께 든다면 모르겠지만 중간에 한번이라도 옮겨가면 그건 귀신으로서 귀신들림과 전혀 상관없는게 된다.

귀신이 붙는다는 것 자체가 상문살의 귀신은 놀아달라고 붙는 것이라 놀 사람이 생겼을 때 붙는 것인데 새로운 사람을 발견하고 옮겨가 잠깐이라도 노는 순간 배고픔이 다시 생긴다. 괜히 상갓집 귀신이 걸신 (배고픈 귀신) 이 아니다. 문상객에게는 상갓집의 채취와 음식냄새가 남아있어 먹었던 음식의 기운이 있기에 배고픔을 못 느끼기며 놀기에 집중하게 되는데 달라붙은 귀신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는 순간 배고픔의 기운이 다시 솟기 때문에 놀 수가 없다. 문상객에 걸신이 붙었을 때는 배도 고프지 않고 (1차목적) 놀아야 할 타이밍이라 달라붙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문상객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간 사람에게는 걸신들이 먹을 수 있는 상갓밥이 없다. 상갓집에서 이미 나왔고 이 사람은 문상객과 달리 상갓집의 채취도 없다. 배고픔이 바로 시작된다. 걸신이기 때문이다. 놀 목적으로 옮겨갔으나 이내 배가 고파지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덕인다. 옮겨간 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거나 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귀천을 떠돌며 다시 원래 있던 귀신들의 세계로 허무하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문상객을 버리고 나가버렸기에 다시 문상객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에게서 빠진 귀신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 것도 귀신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상가집의 냄새와 음식냄새가 있어도 자기 스스로 다른 이에게 옮겨 간 이상 귀신세계에도 법도가 있고 업계 룰이 있는 법이다.

결국 이기적인 발상이 아니라 하나의 지혜로서 귀신의 습성을 이용한 공략법이다. 결국 이 공략법이 제대로 먹히려면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까페에서 여자(약자)가 많이 있는 곳에 가는게 안전빵이고 그 여자에게 귀신이 달라붙어 놀아달라고 하는 순간 배고픔에 못이겨 다시 그 여자에게 떨어져 나가게 된다. 결국 산 사람들이 모두 이기는 결과가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많은 곳에 있다가 오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업계 룰을 잘 안다면 이 귀신이 잘 옮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젊은 남자나 혈기 왕성하고 건장한 남자가 혼자 있다면 딱히 놀아줄 만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원래 기가 허하고 약한 사람에게 귀신이 쉽게 붙는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것과 같은 이치다. 

귀신이 좋아할 만한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노인도 포함되는 것) 귀신이 나가 떨어지지 않음으로 사람 있는 곳에 가더라도 젊은 남자 혼자 있는 곳에 가면 큰 의미가 없다. 제대로 떼지 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설의 고향 이야기 속 귀신들처럼 강인한 사또나 용맹한 남자에게는 귀신이 나타나도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역으로 혼쭐이 나기도 하는데 귀신도 사람 봐가면서 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때는 쉽게 옮겨 갈 수 있는 약자들이 있는 곳에 가는게 좋다. 단! 주의할 점은 약자 중 만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는데 어린이 중에서는 "갓난아기" 대화가 미숙한 유아들이며 여자 중에는 임산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노인을 포함한 질병 위험이 높은 "환자군"에 속한 부류와는 접촉하지 않는게 업계(?) 룰이다. 그 사람들은 진짜 약자라서 달라 붙지는 않아도 옮겨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악영향을 준다. 

편의점이나 적당한 까페가 없다면 PC방이나 항상 아주머니 둘 이상 계신 김밥천국(24시)에 잠깐 들렀다가 가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상갓집에 갔다가 PC방 같은 곳에 들렀다 가는 것이 찜찜하다면 (예의상) 사람 많은 번화가 주변을 잠깐 산책하고 들어가는 것도 나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문상객들과 함께 차를 얻어타고 바로 집으로 오는 것, 집에 누군가 바래다 주는건 최악이다. 더군다나 함께 동행한 사람들도 같은 문상객이라 귀신이 옮겨 가지도 않는다. 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원래 같이 있던 사람들로 귀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다른 곳에 들르지 않는 이상 문상객들끼리 함께 어울리다 집으로 바로 가면 안되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오더라도 각자 가야 하며 중간에 사람 많은 곳에 잠깐 들러 어느정도 시간을 주어야 하는게 귀신업계(?)의 진리다.

소금 뿌리는 방법에 있어 과학적인 부분으로 용해도가 높아 수중의 습기를 흡수한다는 측면이 소개되었지만 아시다시피 소금이라는 건 염이라서 세균증식이 어렵다. 우리가 잘 먹는 발효식품, 된장, 간장처럼 오랫동안 숙성하고 수십년 이상 두어도 상하지 않는게 바로 소금 때문인데 절인 음식, 소금끼가 많은 음식은 잘 상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세균이라는 것이 살 수 없다. 이런 부분에서 귀신도 예외는 아니다. 귀신이 싫어하는 게 소금인데 재수없다고 가게 앞에서 소금을 뿌리는 경우도 많다. 귀신과 상관없지만 손님이 진상짓을 했을 때 가게 앞에 소금을 뿌리는 상인들이 있다. 액운을 덜어내고 재수없는 잡신의 기운을 물리치는 것으로 소금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적인 접근에서 면역력과 관련한 부분을 볼 때 다른 사람에 의해 세균감염이 되었거나 세균오염이 의심될 상황에서 소금을 주변에 뿌림으로서 세균억제 효과를 본다고 해야 하는데 수중의 공기 수분을 흡착한다는 것처럼 그것이 아주 미묘하더라도 그 잔여분과 미세한 염분이 몸에 붙어있고 순간적으로 호흡기 주변에 공기순환을 바뀌어 염분끼를 포함시키기에 면역이라는 부분에서 아주 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소금 뿌리기 자체가 완전히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애초에 그 자체가 귀신이라는 미신에 대한 부분이고 소금을 뿌리는 행위도 미신에 대한 것이니 그것이 귀신을 몰아내거나 면역을 순간적으로 높인다는 과학적인 것이 증명될 수가 없다. 다만 어느정도는 왜 이런일이 생겼고 왜 소금인지에 대해서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금 뿌리기의 잘못된 예를 방송 이미지에서 잘 알려주었다. 보통 사람을 앞에 두고 머리부터 몸통 발 끝까지 대놓고 뿌려대는데 이건 잘못된 방식이다. 눈에 소금이 들어가 입원까지 했다는 것도 결국 잘못된 사용법에 의해 생긴 일로 뒤돌아 있다면 당연히 눈에 소금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귀신이라는 녀석이 소금에 의해 물러나더라도 한번에 도망가지 않는 법,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소금에 의해 도망간것이라 화가 난 상태다. 그 때는 다시 들러붙기 위해 노려보게 되는데 그래서 마주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집을 알게 되고, 소금 뿌리는 사람과 마주보고 집을 보게 되면 문과 집을 보고 이 집에 이 사람들이 사는구나 귀신이 눈치채게 된다. 물러났어도 집에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등지고 돌아선 다음에 우리집이 어딘지 모르지? 하고 혼란을 주는 것이고 소금을 뿌려 도망가게 한 다음에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물러난 귀신이 문을 등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집을 알아챌 수 없어 소금끼가 빠지고 나서도 그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귀신은 신통하지만 한편으로는 멍청해서 아무런 지적 능력이 없는데 돌아서서 쫒아내는 순간 닭대가리처럼 순간적으로 집의 위치를 까먹기 때문에 문을 등지고 뿌려야 하는 것이다. (보통 문을 보고, 자기 집을 보고 뿌리는데 소금을 엄청 뿌려대지 않는 이상 잘못된 방법이다)

침을 뱉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 침을 뱉어야 한다는 것에는 나 역시 많이 들어봤지만 그게 보통 재수없을 때도 동일하게 에이~ 퉤~ 하면서 침을 뱉듯이 아마도 상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행동에서 따와서 문상객도 소금을 뿌리고 침을 뱉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무언가 내 몸에서 떼어내고 싶다는 부분에서 유일하게 내 몸의 내 것인데 쉽게 뗄 수 있는게 땀과 침으로 가장 손쉽게 내 몸에서 떼어내 버리는게 침이 되니 아마도 침이 그래서 쓰이는 걸로 보인다. 그런 의미라면 침 뱉기는 소금 뿌리기와 연결지어 괜찮은 부분이다. 다만 실제로 뱉기 보다는 퉤퉤~식으로 뱉는 소리와 흉내를 내도 상관없는 걸로 알고 있다.

굵은 소금에 관한 부분도 이미 해소가 되었다. 굵은 소금을 쓰면 눈에 소금이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애초에 정면에다가 소금을 뿌리는 것이 잘못된 소금 뿌리기라고 설명했듯이 집과 문을 등지고 뒤로 돌아서서 뿌리는 것이기에 애초에 눈에 들어갈 수가 없다. 당연히 굵은 소금을 과감하게 뿌려도 된다. 더군다나 사람 몸에 직접 뿌리는게 아니라 어깨위로 넘겨서 양쪽씩 번갈아 뿌리고 머리 위로 머리에 소금이 닿지 않도록 넘겨 뿌리는 것이기에 몸 주변에 뿌리되 몸에 직접 뿌리는 것 역시 잘못된 방법이라서 소금과 관련한 안전사고는 생기기 어렵다. 잘못된 소금 뿌리기로 인해 눈이 다치는 것이지 제대로 하면 몸에 소금이 닿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 사고는 나기 힘들다.

방송에는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다리쪽 주변에 뿌리고 남은 소금은 바닥에 뿌린 다음에 신발로 그 소금위에 올라서 비벼주어야 마지막 작업이 끝난다. 이건 바닥에 붙은 여러가지 잡균을 소금이 소독해 주는 효과도 있고 일종에 발자국을 지워주는 효과가 있어 귀신이 소금을 밣은 사람의 발자국을 찾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마지막으로 발바닥으로 비벼주는 건 잊지말자~ 물론 비벼주고 깔끔히 털고 들어와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마지막으로 보너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상갓집 복장, 장례식장 복장에 대해 궁금해하고 문의를 많이 하게 되는데 지금의 장례식 문화, 특히 병원에서 치루는 건 서양식과 동양식이 짬뽕되어 있는 퓨전으로 원래 우리 고유의 문화가 아닌게 더 많다. 상복을 입고 문상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상주가 검정색 양복차림으로 문상객을 대접하는게 보통이다. 물론 여자들은 검은색 한복을 입는다. 짚신도 아닌 구두에 양복까지 상주부터 복장이 퓨전인데 문상객에게 정해진 법도를 따르게 할 수 없는 법, 보통 양복차림, 특히 검은색 양복을 입어야 하고 넥타이는 필수라고 하는데 이건 애초에 우리 고유 문화가 아니고 그런 예법도 없어서 단지 단정하고 고품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한 술책일 뿐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예식장 문화에 있어 장례에서 가장 최우선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문상객의 마음이다. 옷차림이 반바지와 반팔처럼 살이 들어나지 않는 범위라면 면바지도 상관없는게 당연하다. 양말 없는 맨발은 맨살이니 당연히 예의에 어긋난다. 가끔 현장에서 바로 오는 사람중에는 공장 점퍼(잠바)를 그대로 입고 오는 경우도 있다. 회사 사람들이 단체로 4~5명 짝지어 공장점퍼 차림에 그대로 절을 하는데 이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의도 지키지 않고 복장도 안 갖추었다고 뭐라 할게 아니라 다른 일 제쳐두고 볼 일 끝나자마자 왔다는 뜻이 되므로 문상을 맞는 집 입장에서나 돌아가신 분 입장에서는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다. 옷 갈아입는 시간도 포기하고 문상부터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용모를 꾸미고 오는 것도 고맙지만 헐레벌떡 급한 마음에 버선발로 온 심정이 그것보다 우선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마음이 우선이 된다는 해석으로 봐야 한다.

문상객의 복장에 대해 왈가불가 따지는 상주가 있다면 그 사람도 지팡이 들고 죙일 울어야 한다. 아이고 아이고 억지울음을 지어서 슬픔을 유도해야 하는게 상주의 기본 역활로 그런 마인드라면 무덤 옆에 집을 짓고 3년상도 치뤄야 한다. 그런게 아니라면 문상객의 복장에 대해 따질 수 없다. 맨살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리고 위생적인 부분에서 더러움이 있지 않는 이상 (이 더러움도 공장점퍼에 묻은 기름때를 말하는게 아닌 그 사람의 맨살이 나오는 부분, 즉 손과 얼굴, 목이다. 맨살이 나오는 부분은 깨끗하게 해줘야 하며 옷은 묻어나지 않는 이상 보인다고 해서 상관없다)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더러워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상주를 만나기 전에 미리 세척이나 세안을 하는게 당연한 이치다. 

청바지 차림에 관한 것도 그렇다. 청바지는 정말 예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손님이 편안한 복장으로 편안한 마음에 진행하는게 오히려 예법이다. 그게 서구문화의 산실이라고 해도 집에서 가정식으로 예법 지켜가며 장례를 치르는게 아니라면 청바지도 따질 수 없다. 시대에 따라 변형은 불가피하고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예의에 대한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다면 겉에 두르는 허울뿐인 치장물들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만 맨살에 대한 부분처럼 찢어진 청바지, 요란한 장식물이 달린 청바지는 앞뒤 상황을 이해해도 과한 복장이 되곤 한다. 멀리 가시는 분과 그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면 청바지라도 찢어지거나 요란한 경우에는 다른 면바지라도 빌려서 인사를 올리는게 좋다.

검은색 양복도 마찬가지다. 이게 잘못된 사상인데 원래 우리나라는 결혼할 때 색동이다. 전통혼례를 보면 연지곤지를 찍고 신부의 옷이 색동저고리로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상을 치를 때면 흰소복을 입는데 우리가 귀신들 흉내를 낼 때 흰소복을 입는게 괜히 흰소복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흰색 문화가 있으며 검은색은 죽음의 색이 아니다. 흰색이 죽음을 뜻한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이야 ~하는 풍경에서도 줄지어 오는 사람들 모두가 흰색 옷을 입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런 전통장례와 관련한 옛 사진을 보면 모든 사람이 흰옷을 입는다.

묘지앞에 둘러서서 기도문을 읽는 서양인들, 양복을 입는 서양에서 검은색 양복이 장례식장 문화로 우리에게 보여지면서 우리도 검은색 양복을 입는데 그런 의미만 보면 오히려 검은 양복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검은색이 죽음이지만 우리나라는 흰색이 죽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영향으로 그 흰색을 결혼식 (신부들이 입는 모든 드레스는 그래서 대부분 흰색 드레스) 에 쓰는데 수천년간 죽은자에게 쓰던 흰색을 근 50년 사이에는 산 사람, 그것도 색동옷을 입어야 하는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는 것이다. (약간 핑크계열 드레스가 요즘 간혹 있는데 색동처럼 울긋불긋 화려할 수록 좋은게 신부옷이고 장식이 많고 문양이 많은게 좋다. 드레스도 심플하고 단아함도 좋지만 문양이 많고 화려한게 더 좋다) 

깨끗함, 순수함을 의미해 신부에게 흰색 드레스를 입히지만 그건 서구적 발상이고 서구문화로 우리가 동양인이고 한국사람인 이상, 한국에 살거면 문화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이 깨끗함이다. 염을 괜히 하는가, 사람을 깨끗히 닦는 것도 다 흰색 개념과 같다. 더러움 없이 깨끗하게 하는게 죽음이다 그래서 흰색이 우리나라는 원래 죽음의 색이다. (죽음의 색이라는 어감이 좀 그렇지만 굉장히 좋은 의미다. 죽음과 관련해 죽음을 좋게 만들어주는 좋은 색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간혹 장례식장에서 흰 소복을 입는 여자들이 있는데 이게 맞다. 검은 상복은 그야말로 쉣~이다. 우리나라 귀신들, 처녀귀신들이 무조건 흰 소복인 이유를 안다면 옷 색깔에 대해서 검은 양복을 고집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장례식 복장에 있어 문상객의 마음이 최우선이고 그 마음과 정성이 올바르다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복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의사항처럼 얼굴, 손, 목을 빼고 맨살은 나오지 않게만 하면 된다) 양복이 아니어도 다른 의류일지라도 색상은 검은색이어야 하고 넥타이까지 해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이 있는데 색상은 우리 문화의 장례색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상갓집에 갈 때는 "검은색"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튀거나 밝은 색도 적절하지는 않지만 검은색 하나만 고집하거나 검은색을 입지 않았다고 따져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억지다.

검은 옷을 입은 여러명이 상주 앞에 있는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갓"만 올려 쓰면 다 "저승사자"다. 우리 문화에서는 장례에서 오히려 달갑게 보지 않는게 이런 저승사자의 옷 색깔, 그러니 너무 검은색에 한정해서 고집 부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상상해 봐라, 장례식장이 아닌 상갓집에서 상을 치루는데 문상객들이 죄다 검은 복장으로 저승사자처럼 돌아다니면 소름 끼치는 일이다.  

일하다 온 차림 그대로도 좋은 것이고 청바지도 괜찮다, 절하는데 지장을 준다면 그건 안좋다. 절하는데 지장 없다면 청바지도 상관없고 여자들 치마도 상관없다. 물론 여자는 소복처럼 긴 치마를 입어줘야 한다. 무릎 아래 스커트도 곤란하다. 다만 여자는 절하지 않는게 좋고 그 장소에 참석하는데 의의만 두는게 좋다. 여자를 낮게 보거나 무시하는게 절대 아니다. 문상객을 보호하는 일종의 장치다. (명절날 큰집 같은 곳에서 제사를 할 때도 집안 남자들만 절을 하는게 보통이고 여자들은 문 뒤에 서서 지켜보는게 일반적이다, 물론 남자 뒤쪽에서 같이 절을 올리는 집도 있기는 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퓨전 장례문화가 되었다. 여자는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식장이든 가정이든 관이 있는 방 밖에서 돌아가신 분의 가족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대신 안부를 전하는 것도 좋고 꼭 돌아가신 분과 인사를 하고 싶다면 향을 꽂아주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물론 원한다면 남자처럼 똑같이 해도 된다) 그러나 여자의 몫은 그 집안 가족 중 여자들의 몫이기도 해서 굳이 다른 문상객처럼 꼭 할 필요는 없다. 절을 올리기 보다는 유족을 도와주는게 차라리 낫다. 그래서 동네에서 상을 치루면 아지매들은 그 집안 일을 같이 도운다. 요즘에는 부부가 오기 보다는 남자만 상갓집을 가는 것도 그런 연유다. 일손은 어차피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서 돕는게 일상이고 남자와 달리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아 일손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면 문상객으로 여자는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남존사상이라고 따질 사람도 있지만 장례라는게 전통예법과 동 떨어지게 볼 수 없으니 관습적인 개념으로 여자는 절 보다는 유족 일손을 가볍게라도 거드는게 더 고맙다. 흰색은 그 집안 사람들이 입는 것이지 흰색 옷은 문상객이 입는 것도 별로 좋지 않으니 너무 튀지 않게만 하면 된다. 예식의 시작은 "혼례"고 끝은 "장례"다. 예식(혼례)에서 신부와 같은 복장을 하객이 하거나 더 부각되는 걸 좋게 보지 않는 것처럼 예식(장례)도 똑같다.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 중 여자분들과 비슷한 복장을 하거나 튀는 옷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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