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으로 보면 빨대의 구멍은 당연히 1개
무리
얼마 전에 국내 최상위급 명문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빨대의 구멍은 몇 개인가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특출 난 사람들이 모인 만큼 특별하고 색다른 답을 기대했지만 이미 답이 알려져 있어서인지 맞는 답을 말하는 쪽은 꽤 되는데 그게 왜 맞는지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부족해 보였다. 빨대 개수 문제는 대체로 깻잎 논쟁만큼 화제가 되었던 엉덩이는 몇 개인가 문제와 함께 엮인 또 하나의 논쟁거리인데 다른 논쟁거리와 달리 뻔하게 답이 보이지만 오히려 차원이 다른 나름의 고차원적인 해석이 필요한 논쟁이라 다른 논쟁거리들과 달리 정답이 있음에도 여전히 논쟁거리로 오르내리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깻잎 논쟁의 경우 사실 그 근간에는 남녀의 인식 차이 및 각자가 갖고 있는 성격의 차이에서 비롯된 (배려심에 대한 생각) 것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냐 나와 상대의 애정 민감도가 우선이냐에 따른 우선 순위 차이일 뿐, 정답은 없다. 다만 진화론 입장에서 여자의 입장과 위치가 갖는 상황을 감안할 때 다른 이성에 대한 내 애인의 배려는 곧 내 애인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간의 여지를 남기는 적대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을 만큼 질투를 유발하게 되어 대체로 여자들은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반면 그런 심리적 갈등이 없는 남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갈등 요소는 없고 배려심만 남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
설명에 있어 남녀가 똑같은 상황이라 하나 여자의 남친과 남자의 여친에 대한 입장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여자는 다른 여자가 내 남자를 쉽게 뺏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남자는 다른 남자가 내 여자를 쉽게 뺏을 수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바꿔 설명해도 남자들 대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남자들은 대체로 별 상관없다가 많고 여자들은 이게 왜 문제가 아니냐며 따지게 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결론짓지만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이 논쟁은 여자에게 민감한 심리적 갈등을 주제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깻잎 반찬 문제가 논쟁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측은 대부분 여자고 이걸 대화 주제로 먼저 꺼내는 쪽도 여자가 대부분이 된다. 여자인 노사연씨로부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 남자인 이무송씨가 왜 문제냐 해서 논쟁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그래서 깻잎 논쟁의 경우 답정너처럼 정해진 부분이 없진 않으나 (이야기를 꺼내는 쪽의 답이 정해져 있음) 남녀의 입장 차이가 아닌 사람마다 다른 인식 차이에서 생긴 문제라 보게 되면 결국 뻔한 이 문제는 의미 없는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원리
엉덩이 갯수 문제는 이전에 포스팅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간략하게 다시 정리를 하면 이는 "엉덩이"와 "궁둥이"를 구분하지 못한 해부학적 오류에서 생긴 "착각"이기 때문에 이 엉덩이 개수 문제는 사실 아예 논쟁 자체가 성립이 될 순 없다. 청바지를 살짝 내려 입었을 때 보이는 엉덩이살과 굴곡진 부위가 실제 "엉덩이"로 그 아래 똥침이 가능한 구역은 엉덩이가 아닌 궁둥이다. 의자나 바닥에 앉았을 때 바닥면과 닿는 부위가 "궁둥이"이고 그 궁둥이 위부터 허리(골반)까지가 엉덩이로 엉덩이 주사를 맞는 부위가 바로 엉덩이다. 그래서 간호사분들이 엉덩이에 주사를 놓는다고 하면서도 바지 다 내리지 말고 살짝만 내리라고 한다.
엉덩이와 궁둥이의 영역을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의자나 바닥에 앉아보자. 앉은 상태에서 두 손을 허리에 대고 허리 위치를 확인한다. 골반 뼈가 느껴질 것이다. 그 상태에서 손을 엉덩이에 가져가 보자. 두 손바닥으로 웅켜 잡을 만큼 큰 내 엉덩이가 의자 바닥 위에 드러나 있는 걸 알 수 있다. 분명 등 하단이나 허리라고 생각지 않고 확실히 엉덩이라고 생각하는 큰 엉덩이가 손으로 느껴질 것이다. 거기가 말 그대로 "엉덩이"다. 그리고 바닥에 닿고 있는 곳은 엉덩이가 아니라 궁둥이다. 겨울철 손이 시릴 때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바닥과 엉덩이 사이에 손을 넣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엉덩이에 손을 넣는 게 아니라 궁둥이에 손을 넣게 되는 것이다.
손등이 몇 개냐고 묻는다면 하나라고 답한다. 그럼 그 손등 끝에 있는 손가락은 모두 몇 개냐 묻는다면 다섯이라 한다. 이때는 누구나 논쟁없이 같은 결론을 내린다. 손등과 손가락은 분명 다르게 부르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엉덩이와 궁둥이도 마찬가지. 이걸 손등으로 치환해 설명해도 다르지 않다.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보는 시선에서 손가락을 펴면 손등 하나에서 손가락 다섯 개로 나뉘어 보인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주먹을 쥐어보면 (자기 손으로 직접 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손등에서 손가락 다섯이 바로 뻗어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손등이 있고 그다음 손가락 마디 뼈 부분을 지나야 손가락이 갈라진다. 손등을 그대로 폈을 때는 손등에서 손가락이 바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나 주먹을 쥐어보면 (쥐고 있는 상태에서) 손등이라고 생각한 부분과 손가락으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공간이 남는다.
엉덩이도 마찬가지. 우리가 다리를 모으지 않고 크게 벌린 상태로 섰을 때 다리만 둘로 쫙 벌어진 게 아니라 엉덩이(실제로는 궁둥이 영역)도 둘로 나뉘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엉덩이는 두 개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실제 그 부위는 엉덩이가 아닌 궁둥이기 때문에 엉덩이 개수 문제의 답은 당연히 하나가 된다. 그리고 궁둥이는 두 개가 된다. 신체해부학적으로 엉덩이 자체는 "절대로" 둘로 나뉠 수 없다. 나뉘면 사망한다. 결국 이 엉덩이 개수 문제는 엉덩이와 궁둥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해부학적 지식의 부재나 오류에서 생긴 문제로 논쟁거리 자체가 안된다. 흔히 똥꼬가 있는 곳을 엉덩이라 생각하는데 정작 그곳은 엉덩이가 아닌 궁둥이로 엉덩이가 하나이고 궁둥이가 두 개이기 때문에 허벅지가 두 개가 되고 다리가 두 개가 되는 것이지 엉덩이가 두 개라면 그 사람은 오장육부에서 바로 두 다리로 갈라졌다는 말이 되어 희대의 인물로 기록될 수 있다.
결국 엉덩이라는 신체 부위를 궁둥이까지 포함해 포괄적으로 엉덩이 하나로 생각한 것에서 온 착각이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다. 우리 말에서는 엉덩이와 궁둥이를 나뉘어 부르고 잘 표현했었고 실제 해부학적으로도 구분되어 있는 상황인데 일상에서 쓰는 영어 표현이 우리말에 늘어나면서 "힙", "히프"라는 단어가 엉덩이와 궁둥이를 모두 아우르는 단어로 인식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도 어느 순간 궁둥이 자리까지 엉덩이 자리로 (영역) 인식하면서 본질과 멀어진 모순에 부딪혀 이런 엉뚱한 논쟁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엉덩이를 궁둥이로 착각한 사람들은 엉덩이가 둘이라 주장하게 되면서 생긴 논쟁거리였던 것이다.
논리
이제 본격적인 빨대 구멍 이야기를 해보자. 빨대의 구멍은 몇 개인가? 어느 쪽은 빨대 구멍은 하나라 하고 어느 한 쪽은 빨대 구멍이 2개라고 한다. 물론 이 와중에 일부는 빨대 구멍이 0개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논리적으로만 접근하면 답이 정해져 있다. 명백히 이 문제의 답은 구멍이 하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구멍은 2차원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구멍은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우리가 구멍이라고 인식하는 시각 관점에서 구멍 개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가 보는 빨대의 구멍은 언제나 한 개라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논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인식 차이인데 사실 구멍은 언제나 1개만 보이기 때문에 실제 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구멍이라고 인식하려면 그 구멍을 마주보고 쳐다봐야 한다. 동그랗든 타원형이든 찌그러져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그 구멍을 마주 보아야 우리는 구멍이 있다는 걸 안다. 그렇지 않고 만약 구멍을 옆에서 본다면 우리는 그것이 구멍인지 알 수 없다. 빨대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 우리는 빨대 구멍을 보고 빨대 구멍이 몇 개인지 안다. 빨대를 세우든 눕히든 세로로 보든 가로로 보든 우리는 그 구멍이 위치한 쪽에서 내려보거나 올려보거나 옆에서 본다. 그래야 구멍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대를 가로로 놓고 그 옆을 보면 우리는 빨대 구멍을 보지 못한다. 빨대 옆만 보일 뿐이다. 그 빨대 양 끝에는 구멍이 각각 나있지만 그건 사전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그 사실을 모르고 빨대 옆만 보면 빨대에 구멍이 있는지 모른다. 그냥 아래 긴 막대기 그림처럼 "직사각형"으로 생긴 물체 도형만 보일 뿐이다. 즉 빨대라고 설명하지 않으면 그냥 긴 막대로 볼뿐이다. 이 모습 만으로 구멍이 몇 개인지 알 수는 없다. 구멍 개수를 물어보지 않는다면 구멍 존재여부조차 모른다.
구멍 |
결국 구멍이 있다는 걸 알려면 "구멍"을 봐야 안다. 그렇다면 반드시 구멍이 보이는 "관점"에서 구멍의 갯수를 파악할 수밖에 없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우리가 보는 구멍은 빨대의 위, 아래, 입구와 출구와 상관없이 보이는 구멍은 단 하나이기 때문에 빨대의 구멍은 무조건 하나가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이 구멍을 측면에서 본다는 것이다. 빨대의 구멍이 2개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구멍을 구멍 앞이 아닌 저 그림처럼 구멍 자리를 옆에서 보기 때문에 이게 두 개라고 주장하게 된다. 위 푸른색으로 칠한 막대기 도형처럼 저 빨대는 그저 옆으로 놓았을 뿐 좌우에 구멍이 각각 있으니 2개가 맞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저렇게 놓고 보면 구멍은 보이지 않고 사실상 구멍은 0개가 된다.
빨대는 구멍이 있고 구멍으로 뚫려있다는 전제를 사전에 알고 있다면 관점을 달리해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도 구멍의 갯수는 달라지지 않기에 양쪽에 뚫린 형태를 감안해 2개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구멍은 구멍의 존재를 우리가 인식할 때 구성의 갯수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멍의 갯수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 보이는 구멍이 몇 개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애초에 갯수를 묻는 문제이니 "존재"하는 구멍의 갯수를 증명해야 하는 게 옳다. 그 존재를 알려면 당연히 구멍을 보아야 하고 구멍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구멍이 보이는 위치, 입장에서 갯수를 파악하는 게 옳다.
합리
빨대가 있다면 그 빨대의 구멍을 한 번 보자. 일단 하나만 보일 것이다. 단지 맞은 편 구멍은 내가 보는 구멍의 끝일뿐, 또 다른 구멍이라 할 수 없다. 막혔으면 1개, 뚫렸으면 2개는 의미가 없다. 보이는 구멍은 하나라는 건 명백하며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구멍을 두 개 본다고 가정할 경우 한 번 시도해 보자. 빨대가 길든 작든 상관없이 빨대 구멍 2개를 동시에 볼 수 있을까? 아마 보기 힘들 것이다. 빨대를 위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어떤 식으로 봐도 빨대 구멍은 1개만 보일 뿐 2개가 보일 순 없다. 애초에 구멍이 1개이기 때문이다. 빨대가 길어서 그렇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 손톱만큼 작은 빨대여도 빨대 구멍은 2개가 동시에 보이진 않는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캔 음료수가 하나 있다. 이때 캔 뚜껑을 따서 음료를 마시고 난 뒤 그 캔을 바라보자. 캔의 구멍은 하나일 것이다. 빨대처럼 아래까지 뚫리지 않고 내부 공간은 막혀있기 때문에 이때는 빨대의 구멍 갯수와 상관없이 위에 보이는 구멍 하나가 전부로 보인다. 여기서 모두는 구멍이 하나라고 만장일치 의견이 나온다. 이때 캔 아래에 캔 음료 뚜껑 위치와 동일한 선상의 자리에 맞춰 구멍을 뚫어 본다고 해보자. 그럼 빨대처럼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는 공간이 생기면서 "2개"의 구멍이 생긴다. 그러나 그게 정말 2개일까? 그게 2개라면 2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캔 위를 보면 1개, 캔 아래는 봐도 1개만 보일 뿐 2개는 보이지 않는다. 캔 내부를 통해 보면 빨대 공간 내부가 부풀어 오른 것과 같을 뿐 길게 늘어진 같은 구멍이기 때문에 2개라 볼 순 없다.
진리
구멍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멍은 보여야 구멍이지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구멍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빨대는 양쪽에 구멍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구멍의 존재를 알 뿐이지 갯수를 파악하려면 당연히 보이는 구멍이 있어야 한다. 장님처럼 눈 감고 구멍이 몇 십 개, 몇 백개라 마냥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터널의 경우도 마찬가지. 터널의 구멍은 몇 개냐 묻는다면 답은 뻔하다. 여러분이 운전을 하면서 터널을 들어갈 때 터널 구멍은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간혹 고속도로에 1차로와 2차로만 가는 터널이 있고 3차로와 4차로만 가는 터널이 둘로 나뉘어 2개의 터널 구멍이 존재할 때도 있는데 이때는 터널을 2개로 인식한다. 지금 내가 달리는 도로와 "차로"에서 주행 "방향"을 보고 터널 구멍을 인식하게 된다면 당연히 1개만 성립된다. 반대 차로도 마찬가지. 나와 차로가 다르고 주행 방향이 달라서 마주칠 일은 없지만 터널 내부에서 중앙차로로 나뉘어 하나의 공간에서 같이 양방향 주행을 하게 된다면 터널은 각각 서로의 입장에서 1개로만 인식할 뿐 각각 내 입구와 상대 입구, 내 출구와 상대 출구로 따져 2개로 보진 않는다.
빨대를 옆으로 두고 (실제로 구멍은 보이지 않게 됨) 보면 2개라 할 수 있다. 터널도 산 옆에서 보면 2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빨대 구멍을 빨대 측면에서 보진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 본다. 터널도 우리는 터널 밖 산 옆에서 터널을 보진 않는다. 터널과 같은 방향에서 터널 구멍을 보고 달리지 터널 옆에서 터널 측면으로 다가가진 않는다. 그렇기에 빨대 구멍이 2개라고 주장하는 건 빨대 구멍 쪽이 아닌 빨대 옆면을 보면서 구멍 그 자체인 공간 개념이 아닌 하나의 구멍을 두고 다른 쪽에서 다시 그 구멍을 바라보는 시간차의 상대 개념을 넣어 공간이 아닌 시간 개념으로 봤기 때문이다. 구멍의 본질에서 벗어난 다른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두 구멍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상 그건 순간이동을 넘어 두 공간에 두 관점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현실 불가능한 논거가 된다.
누구나 구멍의 형태를 그리라고 하면 차이는 있어도 다 비슷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구멍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구멍의 형태가 고정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방향에서 보든 구멍은 다 구멍처럼 보이게 그리고 구멍처럼 생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구멍을 구멍 쪽이 아닌 옆(측면)에서 보게 되면 구멍은 절대로 구멍이 될 수 없다 "I"처럼 보일 뿐이고 일직선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빨대 구멍이 2개라고 주장한다는 건 빨대 구멍을 측면에서 바라봤다는 관점이기 때문에 논리에 맞지 않는다. 구멍이 2개라면 빨대 옆에서 구멍의 옆을 봐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면 구멍은 사라지기 때문에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코펜하겐 해석>에 나오는 전자의 움직임과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도 있고 혹은 조건이 다르지만 "하이젠베르크의 현미경"과도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수리
그러나 빨대 구멍의 개수 문제는 논리적으로만 따질 이유는 없다. 만약 정말로 이것이 논리적 관점이 아닌 수리적 관점에서 접근해 풀 수 있다면 이 문제의 답은 1개가 아닌 2개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두 공간의 위치에서 두 구멍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구멍은 1개가 아닌 2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빨대의 구멍이 2개가 맞다면 이걸 수학적으로 증명하면 된다. 논리적으로는 구멍이라는 실체로 접근해 구멍의 형태를 보고 그 구멍의 갯수 자체를 파악하는데 의미를 두었다면 빨대의 구멍이 2개라고 주장할 경우 그것 역시 논리적으로 증명되기 위해서는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여기서 수학으로 빨대의 구멍 갯수를 2개라는 수학적 정의로 내릴 수 있으면 얼마든지 답이 2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증명하지 못하거나 수학적 정의로도 1개가 나온다면 결국 이 논쟁의 답은 1개가 된다.
이때 이걸 수학적으로 접근해 증명하려고 한 사람이 있다. 이 빨대 문제에서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케빈 너드슨라는 인물인데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수학과 교수로 빨대를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1차원과 2차원 공간을 따져 결과적으로 구멍은 1개라고 증명했다. 논리가 아닌 수리로 접근해도 답은 1개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빨대의 끝인 또 다른 구멍은 구멍을 길게 늘였을 뿐 다른 구멍이 아니라고 했다. 이때 빨때가 꺾였든 휘었든 상관없이 구멍은 하나고 구멍은 길게 늘였을 뿐 다른 구멍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위상기하학, 위상수학에서 흔히 언급되는 도넛처럼 그 도넛을 길게 늘이면 빨대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때문에 도넛의 구멍이 1개인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게 된다. 논리적으로도 수리적으로도 빨대의 구멍은 1개라는 것이 확실한 것이다.
궁리
빨대 끝을 가열해 늘려보자. 그럼 장구처럼 빨대 끝은 늘어져 커지게 될 것이다. 바로 아래 모습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아래 그림을 보여주고 원래 빨대인데 끝을 늘렸다고 설명하면 별 의심없이 이를 빨대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아래 그림처럼 생긴 빨대를 보여주고 이 빨대의 구멍은 몇 개냐 묻는다면 답은 달라질까? 기존의 빨대 모습과는 약간 다르기 때문에 이 모습만 보면 구멍 개수를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빨대 이야기는 빼고 그냥 아래 그림만 보여주면서 구멍이 몇 개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빨대 문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아 구멍은 1개라고 답을 할 것이다. 빨대 문제를 몰랐어도 구멍은 1개라고 답을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입구와 출구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위 그림은 웜홀이다. 기존의 논리가 공간을 기반으로 본 근거라면 여기에 시간을 추가해 동시에 두 공간을 오갈 수 있는 가상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데 물론 이때도 0.0000000초의 차이라 해도 갭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동시에 두 공간에 있다고 규정할 순 없다. 그러나 뉴턴을 끌어내리고 왕좌의 자리에 오른 아인슈타인처럼 공간과 시간이 아닌 시공간의 개념에서 이걸 다르게 접근한다면 빨대 문제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분명 존재한다.
물리
구멍이 있다는 걸 알려면 구멍을 봐야 한다고 했다. 구멍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구멍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것은 구멍이 되지 않는다. 즉 구멍은 반드시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정확히 개수를 셀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구멍이 존재한다면 그 구멍의 수는 무한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이 논리에 어긋나고 이 논쟁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시공간의 휘어짐과 함께 등장하는 순간이동, 공간이동에 대한 부분을 대입해 보면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다.
하나의 종이를 두고 양끝을 잡아 가운데 모은 다음 연필로 하나의 구멍을 뚫으면 그 순간 분명 하나의 구멍이 생기지만 그걸 다시 펼치면 종이에는 두 개의 구멍이 생긴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도 이 장면이 나온다) 공간을 접어서 이동한다는 워프 개념인데 공간을 펼쳤을 때는 당연히 두 개의 구멍이 존재하지만 접었을 때는 구멍이 하나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시공간의 이동을 설명할 때처럼 여기서 공간을 겹쳤을 때 웜홀이 만들어지고 이때 워프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터스텔라 영화처럼 서로 다른 두 공간을 다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나아가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공간 이동을 하여 구멍을 확인한다면 구멍의 개수 문제 본질은 달라질 수 있다.
일리
클론(복제인간)처럼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명제가 분명 크지만 내가 다른 공간에 있다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떨까? 빨대의 상황을 웜홀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워프가 가능하다면 이 논쟁의 답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증명하는 건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알려져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리적인 관점에서의 증명도 사실상 1차원과 2차원으로만 접근했지 3차원과 4차원의 개념에서 계산이 들어간 건 아니기 때문에 추후 수학적 정의 역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래는 네이처의 표지인데 웜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근데 이 표지에 등장하는 웜홀과 워프의 상황이 빨대 그림, 빨대의 갯수를 묻는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빨대에서는 분명 구멍이 1개인 것이 맞는데 웜홀에서는 구멍을 1개라고 규정하지 않고 단정 짓지도 않는다. 즉 논리적 관점과 달리 이때는 시공간의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얼마든지 구멍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빨대만 갖고 따졌을 땐 답이 단순한데 시공간의 개념으로 우주 관점에서 접근하면 답이 단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리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누군가가 이 뻔한 빨대의 구멍 개수 답을 끝까지 2라고 주장하면서 그걸 수학적으로 증명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기존에 1차원과 2차원적 접근 계산이 아닌 3차원 이상의 계산법이 등장해 충분히 빨대 구멍이 다를 수 있음을 증명했으면 하는 것이고 그게 정말로 가능하고 맞다면 결국 웜홀과 워프에 대한 접근도 상당히 진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계의 또 다른 혁명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단순한 빨대 문제를 갖고 우주 탐사의 획을 그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억지스러운 상상도 큰 몫을 했다.
분명 역사에 남는 과학자들은 어느순간 어떤 주제나 문제에 꽂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했을 것이다. 순리에 따르지 않고 진리가 무엇인지 의심하며 매 순간 고비를 겪으며 비아냥과 놀림을 받았을 것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풀기 위해 매진한 결과 지금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과학의 결실이 맺어지게 된 것이라 믿고 있기에 누군가 이 뻔한 답에 반기를 들고 구멍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었으면 한다. 빨대 문제 하나로 우주 신비를 풀어 노벨상 받는 위인이 우리나라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추리
머그컵과 도넛은 위상 동형이다. 그리고 빨대도 도넛과 위상 동형이다. 그 빨대의 구멍은 블랙홀과 모양이 흡사하다. 당연히 블랙홀은 도넛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보이는 블랙홀의 구멍은 1개가 분명 하나 블랙홀이 정말 빨대와 위상 동형이라면 블랙홀의 실체도 어쩌면 빨대처럼 길게 늘어진 모습이 아닐까 하는 추리와 함께 그래서 우리는 늘 블랙홀의 한쪽 구멍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상상으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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