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미소 냉전시대 핵전쟁을 막은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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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소 냉전시대 핵전쟁을 막은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

by 깨알석사 2017.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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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3년 9월의 어느 날, 한 남자가 역사속의 한 페이지 안에 있게 된다. 그의 이름은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소련 방공군 소속 중령으로 미사일 관제센터에서 근무중인 관제소 책임자였다.

그가 맡은 주요 임무는 자신의 조국인 소련으로 향하는 적국의 미사일을 감지하고 소련으로 향하는 미사일이 만약 핵미사일 경우 최악의 경우 즉각적인 맞대응을 하여 적국에 핵미사일을 쏘도록 하는 주요 임무를 맡고 있다. 요즘에는 지도자라고 해도 함부로 핵미사일을 단독으로 승인하여 발사하는게 불가능하고 그 발사권한이 하급자에게 있을 수가 없지만 미소 냉전시대에서는 그런게 없었다. 

관제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페트로프 중령은 어느 날 갑자기,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단 한번의 선택으로 세계3차 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고 혹은 지구 핵전쟁을 유발해 최악의 사태를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고 소련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서프라이즈>에서 그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양면성을 띄고 있는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다.

1983년 9월 소련의 관제소에서 미국의 핵 미사일이 소련을 향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소련의 핵 미사일 감지 시스템이 미국의 핵미사일에 의해 작동 되었고 관제센터에는 요란한 경고음이 흘러 나왔다. 관제요원들은 즉각적인 방어태세에 들어가고 반격 시스템을 가동한다. 소련의 "둠스데이"라는 반격 시스템이다.

관제센터에 있는 현장 책임자만의 최종 결정만이 남은 상태에서 그는 반격 시스템 가동에 주저한다.

아무런 문제없이 조용했던 어느 날, 소련의 관제소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미국의 핵미사일이 소련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자신들이 반격 시스템을 즉각 가동해 미국에게도 핵을 날릴 경우 세계3차대전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한번의 선택과 판단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삶이 파괴될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미국의 핵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점으로 당장이라도 두 나라간에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던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미사일 침공은 예상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사전에 이걸 예측할만한 정보는 따로 없었다. 냉전 상태로 사이가 안 좋은 건 분명하지만 수집된 적국의 핵 비밀정보는 물론 언론의 뉴스에서도 딱히 당장 핵미사일을 쏘고 싸울 분위기는 감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관제소의 감지 시스템은 정확하게 핵 미사일 경로를 보여주며 경고하고 있다.

1983년 9월 26일 새벽 세르푸코프15 관제센터에 핵미사일 비상경보가 울린다

당시 소련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핵미사일을 감지하는 기술을 갖췄고 이런 핵미사일 감지 시스템을 갖춘 여러 관제센터를 각 지역에 운영중이었다. 소련을 향해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포착하는 것이 주요 임무

우리에게는 영화와 게임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최후의 날이라는 뜻의 둠스데이 프로그램이 관제센테어서 즉각 발동된다. 소련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감지했을 경우 곧바로 소련의 핵미사일들을 모두 준비시켜 반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상대 핵폭탄에 의해 먼저 전멸이 되더라도 아직 발사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우리도 핵을 쏴서 상대방도 자멸토록 하는 그야말로 가장 무서운 맞불 작전이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발사 권한은 현장 지휘관에게 있는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지고 수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상부에 보고하고 기다릴 상황이 되지 않는다. 

짧으면 몇 분, 길어야 십분 정도의 시간에서 지도자까지 올라가고 다시 지도자에서 내려오는 통보 시간 자체는 둠스데이가 작동하기 이전에 이미 원폭 피해를 입고 소멸된다. 둠스데이 프로그램 자체가 핵미사일을 감지하자마자 바로 반격해 자멸토록 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바로 대응하게 만들어진 건 당연하다.

둠스데이 프로그램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핵 감지 사실을 알리고 일정 시간안에 반격 시스템 가동 버튼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한정해 공격과 취소 단 두가지 선택권만을 부여한다. 감지했다는 사실만 시스템이 통보를 하는게 아니라 시간 타이머를 주고 일정시간 안에 공격이든 프로그램 가동 취소든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만약 최종 발사 권한이 있는 지휘관이 어떤 이유로 둠스데이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관제요원이 모두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자동으로 둠스데이를 가동하고 핵을 발사시키게 되어 있다. 일단 가동되면 취소를 사람이 직접 하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공격하게 되어 있는게 둠스데이

상황과 관점에 따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저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정해진 메뉴얼이 있고 정해진 시스템이 있다, 모든 것은 원래 정해진 규칙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라 판단 자체도 사실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어떤 면에서는 따로 판단을 할 이유조차 없다, 그냥 정해진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손가락 움직임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게 되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고민하게 된다. 잘못된 정보라고 믿고 싶지만 보여지는 결과는 실제로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고 둠스데이 프로그램마저 가동이 시작된 상태다. 실행 버튼을 누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구에 핵전쟁이 시작되는 것이고 취소 버튼을 누르면 소련만 핵에 의해 파괴 당한다. 뭘 선택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따른다.

최초 한 발을 감지했지만 이 후 추가 핵미사일이 더 감지되고, 설상가상으로 

모두 5발의 핵미사일이 소련을 향하고 있다는 시스템의 경보가 뜬다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관제요원들은 즉각적인 둠스데이 작동을 요구하지만 지휘관은 끝내 둠스데이 취소 버튼을 누른다. 자신의 조국에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데 반격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는 지휘관을 관제요원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이대로 당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소련의 15관제센터 요원들과 지휘관은 자신들의 조국에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그냥 구경만 해야 했다, 잠시 뒤 자신들의 나라 소련에는 핵미사일 5기가 떨어지게 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핵폭발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 어차피 미국에 쏜 핵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다, 이들이 가진 둠스데이 프로그램 역시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막는게 아니라 상호파괴전략에 따른 보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피해는 어차피 정해진 상황이다. 둠스데이를 가동하든 안하든 자국의 피해는 똑같다. 다만 응징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응징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감지된 핵미사일이 소련에 떨어져 폭발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관제요원들은 자괴감에 빠져 핵미사일이 터지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마이갓!!!! 핵미사일 감지 시스템이 잘못된 정보로 오류가 났던 것이다.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핵미사일로 잘못 인식해 벌어진 엄청난 해프닝이었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페트로프 중령, 그는 관제센터 안에서만 벌어진 이 상황을 100% 믿고 따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 안의 정보만으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둠스데이 프로그램이 가동된 순간에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의 내면과 싸움을 했는데 미국과 소련이 아무리 냉전시대로 일촉즉발 상태에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보여지는 공격 행태는 뭔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미국이 정말로 공격 의사를 갖고 핵을 사용했다면 소련을 완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수백개의 미사일을 모두 발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겨우 다섯발의 미사일로만 소련을 공격한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소련은 엄청난 땅 크기를 자랑하고 있고 대도시와 군사도시는 별개로 나뉘어져 있다. 핵미사일이 주요 도시를 향하는 것도 아니고 군사 요충지로 가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핵미사일이라고 하지만 소련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무너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닐 뿐더러 소련에게도 핵이 있다는 걸 미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5발로 선빵(!)을 날린다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련이 어떻게 반격하고 대응할 것이라는 걸 미국도 잘 알기 때문에 말 그대로 기습적인 초전박살을 내야 하지 않는 한 그대로 되갚음 당해 오히려 미국이 완전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거다.

핵이라 해도 겨우 다섯개의 미사일로 기습 공격을 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되고 그걸 보고 즉각적인 모든 핵미사일을 반격용으로 삼아 미국땅에 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요즘에 흔히 들을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대목과 딱 맞는 설정이다.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건 오히려 뭔가 다름을 직감했다, (설령 진짜 핵미사일이라고 해도 이건 오류나 반정부세력에 의한 오발로 볼 수도 있다)

페트로프 중령은 설령 자신이 틀렸다고 해도 100% 확신이 없으면 둠스데이를 중단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핵미사일 5개로 입는 피해보다 둠스데이를 가동해 받는 피해가 더 크고 비교불가다, 미국은 그대로 폭망이고 수 천배의 사람들이 더 많이 죽게 된다. 핵미사일 감지 당시 시스템 오류로 상부에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도 단순히 책임회피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부에서 당장 반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것을 예상해 현장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라고 하기 위한 선조치였다. 

그의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신중한 판단은 미국과 소련은 물론 세계를 구한 셈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소련의 인공위성 결함과 소련체제의 불안전성을 드러낸 결과로 이어졌다. 시스템이 정상 작동 되었다해도 최종 발사 권한은 사람에게 있고 최종 판단 후 결정하게 되어 있는 것 자체가 이런 오발/오류를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군사대국 소련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일로 관제센터는 물론 방공군에서 쫒겨났으며 군복을 벗게 된다. 이후 당시 최초 보고를 받은 그의 상관 유리이 보틴 체프의 회고록을 통해 이 일화가 알려지게 되면서 그의 존재가 처음 드러나게 되고 그의 행적은 한참 후에 UN 등을 통해 공식 인정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했던 행동이 인류 모두에게 끼친 대단한 일이었음을 나중에 알고 상을 준다

저는 다만 제 일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너무 추켜세워 마치 제가 영웅인 듯 대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전 다만 저의 임무를 완수했을 뿐 입니다. 2006년 세계시민협회에서 주는 세계 시민상 수상 당시 그가 남긴 말이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보이는 그대로 따라가는 지휘관은 아무 쓸모가 없다, 최종 발사 권한이 관제센터 지휘관에게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그 말 자체가 가장 훌륭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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