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던 학교 친구네 집은 당구장 아들, 식당 아들, 노래방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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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추억여행

우리 때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던 학교 친구네 집은 당구장 아들, 식당 아들, 노래방 아들

by 깨알석사 2016.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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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당구장에 고삐리들이 참 많았다. 고삐리들이 주로 가는 당구장이 따로 있었고 대학생 정도의 젊은 청년들이 오는 번화가의 당구장 레벨과 어깨 형님들이 주로 오는 당구장, 그리고 허름하고 낙후된 손님 자체가 드문 꼬진(?) 당구장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당구 정도는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는 시절이 우리 동네에는 있었다. 남자들 대부분이 군대 경험이 있고 군대 관련 썰을 늘어놓는 것이 자연스럽던 것처럼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당구공이 보이고 선생님 뒤에 보이는 칠판도 당구대로 보인다면서 누구나 당연히 경험하는 것처럼 말하는 시기가 분명 있었다. 내가 그런 세대다. 

간혹 흡연이나 음주 같은 것도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이 있었는데 마치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는 공식처럼 고딩은 당구장 출입을 해야 고딩답다라는 우리 동네의 룰 아닌 룰이 존재했다. 일찍이 반란(?)을 꿈꾸고 중딩3년 시절에 아버지 담배를 훔쳐폈고 고딩 때는 친구 어머니가 식당을 하시는 관계로 술맛도 조금 일찍 봤다.

지금은 누구나 마시는 커피도 어른들이나 마신다는 개념이 살짝 있던지라 집에 있던 커피를 어른스럽게(?) 마신 것도 중학생 무렵이다. (쓴 커피와 매캐한 담배를 왜 마시고 피우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도전! 또 또전! ㅋ)

시대마다 다르지만 누구는 잘 나가는 친구의 기준으로 문방구집 아들, 오락실집 아들, 정육점집 아들, 분식집 아들 등을 꼽지만 우리 때는 당구장집 아들과 식당집 아들 그리고 청소년들의 탈출구였던 노래방집 아들이 짱이었다. 특히 고딩 1년 시절 같은 반은 아니지만 옆 반에 당구장집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쫙 돌면서 그 친구네 당구장 출입을 자주 했었는데 당구장 운영을 친구 아버지가 직접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구장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공식적인 "흡연장소"로 이용 되면서 꽤 인기를 끌었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인데 학생들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수컷들의 세계를 일찍이 인정하고 나쁜짓은 차라리 자기 앞에서만 하고 다른데서는 범생으로 살라는 가르침에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일탈을 즐기던 장소다. 어차피 이미 필 놈은 피고 있던 상황이라 숨어서 피지말고 어깨 피고 남자답게 여기서만 딱 피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피지 말라는 말씀인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배운 것도 아니고 이미 다들 피던 놈들이라...(요즘 같으면 난리겠지만...그래도 사춘기 발정난 남자애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친구 아버지가 고민 상담도 해주면서 다독여준 점이 더 크다)

당구비는 혁신적이었다. 10분당 2천원 수준인 요즘에는 천원만 받아도 놀라운 가격인데 친구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10분당 200원이라는 가격을 받으셨다. (1시간 신나게 쳐도 1200원, 물리기를 해도 큰 손해가 없다) 보통은 30분에 리밋을 걸어 30분 미만도 30분 가격을 일단 무조건 받고 30분 넘어가야 정상적인 카운트가 되면서 포인트 체크를 하게 되는데 아버님은 10분만 치면 딱 200원만 받았을 정도로 그런 당구비 기본 수칙조차 우리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당구대가 7개 크진 않았지만 손님은 사실상 99.99%가 우리학교 학생들, 언제부터인가 우리학교 애들이 죽돌이가 되면서 일반 손님은 아예 받지도 않았고 (못 받았다고 하는게 더 적절, 자리가 나지 않아 와도 못침, 싼맛에 우리가 장악) 다른 학교 학생은 아예 출입 불가를 해서 학생은 우리 학교만 받게 되었다. (우리학교 교복 아니면 아버님이 돌려보냄)

반이 다르고 이 집 친구를 아예 몰라도 우리 학교 교복 입은 학생이면 그냥 다 어울려 쳤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마지막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 선후배다. 그러나 다행히 아버님은 아들과 동년배인 동갑내기들만 받으셨기 때문에 선후배 걱정 없이 모두 그 친구와 동갑이자 같은 학년인 친구들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그마저도 문제가 되지 않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천국" (아버님은 처음 보거나 어딘가 눈치를 보는 출입이 익숙치 않은 학생에게는 학년을 물어 퇴실조치)

10분당 200원이라고 해도 그게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15분이면 300원? 그런거 없음, 10단위면 200원) 깍아주거나 외상도 가능했기에 속된 말로 가성비는 최고였다. 대부분 당구비 때문에 당구를 오래 치고 싶어도 못친다. 또 물리기를 해야 실력이 는다고 하는데 역시 게임비는 큰 장애물이 된다. (여기서는 물려봤자 푼돈이다) 이런 금전적 부담이 확 줄어들면 더 오래 더 많이 칠 수 있고 과감한 물리기도 시도가 가능하다. 친구 중에 누구 하나라도 5천원만 가지고 있으면 그 날 지겹게 친구들과 칠 수 있다.

이런 친구네 집 덕분에 당시 우리 반에서는 당구를 못 치는 애들이 없었다. 훈련비(?)가 워낙 적게 들어 시간만 나면 언제든지 가서 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못 치는 속성 애들이 150수준, 반 친구 절반은 300에 접어들어 갔을 정도다. 지금도 가끔 동창회를 하면서 당구를 치면 당구 칠 맛이 안 날 정도로 무서운 녀석들로 성장했다. 3분의 1이 500, 3분의 1이 아직도 300 (올릴 놈들인데 안 올림,,,짠돌이들), 나머지 3분의 1 정도가 150에 머물고 있다.

나는 150 수준인데,,,우리 세계에서나 150이지, 다른 지역 300하고 맞다이 할 수준은 된다. (실제로 300들 하고 가끔 친다/다마수 올리는 건 쉬워도 내리는 건 어렵다 ㅋㅋ 욕 먹는 건 한순간이요 게임비는 영원하다) 엄청난 싼 과외비 덕분에 사기다마 군단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우리 반 친구들의 공통점 ㅋ

학생 때는 친구 부모님이 일반 직장 다니는 회사원보다는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이 장땡인데 이건 요즘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미용실이나 이발소같은 건 친구네라고 해도 큰 이득이 없고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딱 좋은 놀이터 같은 아지트를 가진 집이 제격인데 당구장, 노래방은 딱 그것에 맞는 장소였다. 

보통은 탈선의 장소로 오명을 쓰기도 하지만 그 곳의 업주가 친구네 부모님이라는 것이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탈선도 탈선 나름이고 친구 부모님은 내 부모님 만큼 여전히 어려운 분들이라 땡깡짓으로 일반 업주한테 함부로 하듯이 할 수도 없다. 개념을 말아먹어도 정신 차리고 적당히 놀 수 밖에 없는게 이런 친구네 유흥장소다. 그리고 의외로 가장 많이 훈계를 듣고 충고를 듣는 곳도 바로 친구네 부모님이 운영하는 업장이다.

일반 업주 신분으로 훈계를 하는게 아니라 노는 방식과 한도, 적정선에 대해 항상 주의를 주고 아들 친구면 곧 아들과 다름없다는 식의 말로 시작하는 놀거리에 대한 훈시는 탈선 기분만 내게 해주는 적정선 딱 그 자체가 대부분이다. 마음대로 놀게 풀어주되 맹목적이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되 나이와 신분에 맞게 적당하게 스스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친구 부모님들한테 자주 들었는데 본인들이 아무래도 아들 또래의 손님으로 오는 다른 일반 아이들을 보면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아서인지(너무 과하게 노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우리에게 만큼은 자유와 함께 스스로 통제하고 놀 줄 아는 가르침도 주시곤 했다. 

도심에서만 살던 나는 시골집 할머니한테 가면 날 데리고 읍내 장터로 가시곤 했다. 오로지 내가 먹을 고기를 사러 가시는 길이었는데 상설시장과 마트만 보더 나에게 시골 오일장터는 신기한 풍경, 서울과 달리 시골 장터 거기서는 고기를 살 때 신문지로 포장해 주었는데 우리 똥강아지가 먹을 고기라면서 나에게 건네줄 때의 그 부스럭 거리는 신문지의 촉감과 고기에서 전달되어 오는 차가운 냉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촌 형제들이 있어 손자가 나 혼자는 아니었지만 손자 중에는 막내이다보니 유독 귀여워 해주셨던 할머니다. 

특별한 날에만 먹던 고기가 이제는 흔한 먹거리, 랩으로 포장된 용기속의 고기가 더 익숙한 세상

요즘에는 집에서 삼겹살을 직접 해먹는 경우도 드물지도 해 먹더라도 주방에서 따로 굽고 접시에 담아 식탁에 내어 놓는 경우가 더 많다. 예전 꼬꼬마 시절에는 식탁이 아닌 밥상에 둘러 앉아 한쪽에서 어무이가 구워 주시면서 바로 바로 올려주시곤 했는데 그 때의 삼겹살이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 다 비슷할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꽁냥이양과 방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추운 날씨 창문까지 열고 상 없이 바닥에 신문지만 깔고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먹었는데 의외로 서로 대만족, 밥상도 없는 집이 많은 요즘, 원초적으로 바닥에 그릇 놓고 불판 놓고 먹으면서 알콩달콩 꽤 신난 시간을 즐겼다. (야외에서 돗자리 깔고 먹을 때의 그 기분과 비슷)

고딩 시절 친구 중에 식당을 하는 집이 있었다, 친구 어머님이 가게를 두 번 바꾸셨는데 한번은 돼지갈비집, 한번은 닭갈비집이었다. 졸업 이후에는 규모를 키워 한식으로 크게 하시고 지금은 산장 겸 가든으로 지방의 유명 산길 근처에서 아직도 식당을 하고 계신다. (음식 솜씨가 있으니 점점 확장하는게 당연)

어머님은 주말마다 아들 친구인 우리들을 불러 모으셨다. 식당에 있는 건 음식이요, 넘쳐도 음식, 모잘라도 음식, 단체 손님을 주로 받던 친구네는 주말이 되면 음식이 많이 남아 우리가 잔반처리 요원으로 투입이 되었다. 먹던 것이 아니라 준비했던 것 중에 주방에서 나가지 않은 걸 주셨는데 단체 손님들이 값을 이미 냈지만 상에 있는 것도 다 먹지 않아 미처 손님상에 나가지 않은 음식이었다. 호텔부페나 결혼식 피로연처럼 100인, 50인, 25인 예약에 식사값도 다 미리 냈지만 손님이 2~3명 적게 오거나 실제로 25인을 준비했어도 20인 정도만 나가게 되면 남은 음식은 골치덩이가 된다.

보통은 다음 날 팔면 되지~하고 넘기지만 (먹지도 않은 생 음식이 남았다고 주변에 주는 식당은 없음) 어머님은 그 때부터 스스로 "반찬 재활용"이나 "음식물 재활용" 같은 건 담을 쌓던 분이라 그 혜택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어오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30인이 먹을 백숙을 30인 값 선불로 미리 다 받고 단체를 받았는데 25명만 와서 닭이 남았다면 (심지어 조리가 안되고 재료로 남아 다음에 충분히 팔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 5인분을 마저 다 조리해서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 날 준비한 신선한 재료는 그 날 다 소진한다는 어머님의 소신!

가끔 토요일 저녁이 되고 어머님이 슬슬 장사 마무리를 할 때가 되면 우리 멤바들(5명 내외)에게 고기파티를 가끔 해주셨는데 장사가 끝날 때 모이게 하셨다. 설겆이까지 다 마치고 우리들을 위해 식당 방에 상을 새로 다 봐주시고는 가게 문을 아예 밖에서 닫고 가셨다. 요즘에는 잘 안쓰는 샷다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인데 녹색의 그 진짜 오래된 샷다 말고 철봉 같이 생긴 쇠봉이 창문의 블라인드처럼 생긴 신식 샷다라서 내부 식당의 불빛이 그대로 나오는 건 똑같다.

다만 샷다를 내리고 가시는 이유는 불빛이 켜져있어 심야에도 장사를 하는줄 알고 일반 손님이 올까봐 내려놓고 가시는 건데 밤새 우리끼리 그 안에서 마음대로 고기를 구워먹고 놀라면서 심야 파티를 자주 마련해 주셨다.

오히려 요즘 고딩들은 잘 놀줄을 모르고 공부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노는 건 역시 예전 사람들이 화끈하게 놀았다. 남자끼리 놀면 뭔 재미냐 하면서 여자친구도 불러서 놀라며 당시에도 파격적인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남자 다섯에 여자 셋이 모여 8명이 가게 문 닫고 밤새 논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 어머님의 배려 덕분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남녀 청소년이 밀실에 모였어도 나이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은 것도 나와 내 친구들의 특징....(물론 인간적으로 뽀뽀는 했다 ㅡ.ㅡ;;)

술 먹고 담배피는 것도 (친구 중에 일부가.....물론 그게 나였지만 ㅋ) 다 아셨기 때문에 주방에는 엄청난 양의 고기와 맥주를 준비해 주시곤 했다. 단! 술은 어머님이 딱 병으로 꺼내놓고 일절 추가로 먹지 못하게 양을 정했는데 1인당 맥주 2병꼴이고 술을 못 먹는 친구들도 있어서 술은 항상 많이 남았다. 술 먹고 담배 피는 양아치가 아닌 그냥 친구들끼리 모여서 밤새 떠들고 노는게 더 좋았던 시절이다.

어떻게 보면 상식에서 어긋나는 잘못된 친구 부모님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적당히 컨트롤하고 통제와 제어를 스스로 할 수 있게 항상 가르침을 준 건 친구네 부모님들이고 청소년이면 하고 싶어지는 일종의 탈선 행위도 자기들 울타리 안에서 케어가 가능한 영역에서 하게끔 해준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본다.

이후 성인이 되어도 우리는 술을 먹어도 친구 부모님 가게서 먹었고 노래방을 가도 친구네를 갔다. 당구장은 물론이다. 어릴적에는 친구 부모님 없이 우리끼리 노는게 더 좋았지만 시집, 장가를 가면서 이제는 친구 부모님하고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당구도 치는게 더 좋다. 또래보다 삐닥한 행위를 하면 더 했어도 어디가서 친구들 모두 모난 소리는 안 듣고 자랐는데 친구 부모님들 덕분이 제일 컸다고 본다.

요즘에는 친구네 집이 뭘 하면 인기가 좋을까? 그래도 역시 유흥의 기본은 먹거리, 놀거리, 마실거리~ 중국집 아들도 여전히 괜찮아 보이고 치킨집 아들도 괜찮아 보이지만 워낙 흔하고 크게 와 닿지 않다보니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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